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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⑥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8년 08월 21일(화) 10:36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해 질 녘, 휘파람새가 울었다. 먼산주름에 이내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산북천과 송강천이 만나는 두물머리 물둑 꼭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갈대숲으로 바뀐 개울, 어른들이 ‘짹변’이라고 부르는 작벼리에 버드나무, 싸리나무와 생강나무 그리고 다래나무와 칡덩굴 들이 듬성드뭇 자리를 잡았고, 휘파람새는 그 사이를 낮고 짧게 헤집으며 길고도 높은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덤불숲 어딘가에 밥주발 같은 둥지를 짓고, 알을 낳는 휘파람새는 대부분 단독으로 날아다녔다. 휘파람새가 우는 사이사이, 검은등뻐꾸기가 방점을 찍듯 더 큰 목청으로 휘파람새 울음 사이를 가로질렀다. 만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새 울음소리에 이끌려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했던 내를 오래 바라봤다. 휘파람새가 당도했다는 것은 봄이 왔다는 신호였고, 검은등뻐꾸기가 울기 시작했다는 것은 여름이 왔다는 의미였지만 들과 숲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푸르디푸른 녹음으로 짙었다.
집 밖에서 휘파람새가 알을 품는 사이, 우리 집 헛간에서는 딱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었다. 어느 날 헛간 바닥이 에넘느레해진 이유를 몰랐으므로 조심조심 헛간을 살폈다. 디귿자 형태로 문이 없는 작은 헛간은 아버지가 쓰시던 농기구들로 가득했고, 자전거와 절구 심지어 어머니 유모차까지 온갖 허드레 물건들로 잡다했다. 어느 해에는 박 속에 알을 낳기도 했던 딱새가 이번에는 벽체를 가로지른 도리 틈 사이에 둥지를 틀었다. 그때부터 절구에 새끼를 낳기도 했던 도둑괭이와 함께 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딱새 암. 수컷은 새끼를 까면 새끼와 함께 헛간을 떠났으나 도둑괭이는 철에 상관없이 아무 때고 필요하면 자리를 잡고 새끼를 낳았다. 야생의 괭이는 인간이 버린 음식물 찌꺼기를 먹기도 하지만, 때때로 새도 낚아채고 쥐도 잡아먹었으므로 지켜보는 마음이 사뭇 애가 탔다. 저물녘이면 딱새 수컷과 암컷이 번갈아 헛간 주변을 맴돌았다.
들녘은 모내기로 한창 바빴다. 비닐하우스에서 모판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올해는 봄가물 없이 비가 자주 내렸으므로 날씨 걱정을 좀 덜할 줄 알았으나 모판을 만들자마자 기온은 뚝 떨어져 모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모판 사이가 움쑥움쑥 꺼졌다. 유난스레 바람이 거셌다. 한번 불기 시작하면 좀처럼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어느 때는 일주일 내내 몰아쳐 고춧대를 부러뜨리기도 했으며 비닐하우스 귀퉁이를 찢어놓기도 했다. 바람의 세기가 점점 강해졌고, 뜨겁고 건조했던 날씨는 갑자기 춥고 서늘한 바람으로 바뀌어 차마 겨울옷을 정리하지 못했다. 양간지풍(襄杆之風)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는 옛말을 떠올렸고, 바람의 세기가 강해지면 질수록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구부러진 길 끝에는 누이의 무덤 같은 찔레꽃 덤불이 꽃등처럼 환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동안에도 꽃숭어리는 가만가만 제 품을 열어 벌들을 불러 모았다. ‘찔레꽃머리’는 초여름을 달리 이르는 말이었지만, 올해는 유독 이르게 꽃들이 피고 졌다. 해당화는 찔레꽃보다 먼저 피어 어릴 때 ‘율구’라고 부르던 열매가 조롱조롱했다. 다시 말하면 한 달가량 계절의 속도가 빨라졌고 그리하여 이르게 꽃이 피었고, 그만큼 또 빠르게 열매를 맺었다. 아까시나무 꽃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숲 속에서는 진달래꽃이 하룻밤 사이에 피었다 졌고, 함박꽃이라고 부르는 철쭉도 전례 없이 이르게 피어서 몹시 어리둥절했다. 대체 내가 알고 있던 봄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눈을 비비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웃이 모내기를 하는 논배미로 향했다.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가족끼리 농사짓는 일을 호락질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이앙 기계와 단둘이 또는 많아야 셋이 모내기를 했다. 대부분 6조식 이앙기(移秧機)로 모를 심는데, 논의 상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하루 평균 2헥타르(ha)가량 심었다. 그 전에 비닐하우스에서 기른 육묘상자인 모판을 논마다 가져다 놓아야 했고, 논은 가래질 그리고 쟁기질과 써레질을 마쳐야 했다. 지금은 가래질은 물론 호리쟁기질, 겨리쟁기질 또는 써레질이란 말을 쓰지 않았고, 통으로 ‘로타리(rotary)친다’로 바뀌었으며 이는 트랙터(tractor)에 ‘로타리’라고 불리는 장비를 달아서 사용했다. 그러니까 농사에 기계가 들어오면서 영어와 국어, 한자를 혼용하게 되었으며 가래와 쟁기, 써레는 이름마저 잃어버리고, 실물은 박제된 채 유물이 되고 말았다.
어릴 적 집에서 모내기를 할 때를 떠올렸다. 우리 집은 식구가 많았지만, 그래서라도 모내기를 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모내기에 참여했다. 보통 2~30명이 모꾼으로 동참했는데, 논바닥 모판에서 모를 찌고, 이를 져 나르는 모쫑 그리고 모꾼들은 줄꾼이 옮기는 줄에 맞춰 모를 심으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집 안에서는 또 며칠 전부터 막걸리를 담가야 했고, 모내기 당일에는 ‘잿놀이’ 즉 새참과 ‘기승밥’이라고도 불리는 점심밥을 준비해야 했으므로 종일 부엌이 후끈후끈했다. 어린 우리들은 가마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얻어먹을 요량으로 마당을 떠나지 못하고 부엌 안을 기웃기웃했다. 새참에는 칼국수가 나갔고, 점심밥은 무엇보다 중요해서 팥밥을 하고, 고등어나 꽁치를 쪄서 양념장을 올려 한두 토막씩 일꾼들 앞에 몫몫으로 나눠주었다. 밥을 이고 나가는 할머니, 어머니 뒤를 따라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가면서 몰래몰래 한 모금씩 마신 술로 술맛을 익혔다.
그 시절 못밥에 육미(肉味)는 없었지만 마련할 수 있는 생선으로 꽁치와 자반고등어가 최선이었고, 이때 가랑잎에 싸서 몫몫으로 나눠준 생선은 오로지 일꾼들 각자 몫이었다. 아이가 따라온 경우에는 아이에게 먹였고, 집 안에 늙은 부모가 있으면 집으로 가져갔다. 요즘은 모내기를 할 때든, 벼 베기를 할 때든 집에서 음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새참으로는 짜장면과 빵이 등장했고, 점심은 읍내 음식점에서 배달을 시키든가 아니면 직접 읍내에 나가 삼계탕이든, 보신탕이든 내키는 대로 먹었으며 농주(農酒) 대신 캔 맥주와 커피가 흔했다. 작업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3헥타르 정도 벼농사를 짓는 내 이웃은 3천만 원가량 하는 이앙기를 사는 대신 이앙기를 가진 이웃에게 평당 백 원에서 백이십 원을 주고 모내기를 맡기곤 했다.
영농 기계화가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으나 이에 따른 병충해 또한 만만치 않았다. 농사꾼은 죽어도 씨오쟁이를 베고 죽는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 볍씨부터 모판에 까는 모판흙까지, 거기에 살균제, 살충제와 제초제를 비롯하여 ‘영양제’라고 불리는 성장촉진제까지 한 단계 한 단계 거칠 때마다 농약을 필요로 했고, 이 또한 죄다 농협이든, 농사원이든 어디서든 구매해야 했다. 내 이웃은 농약 없이는 농사도 없다고, 말말이 나를 윽박았다. 그리하여 농약(農藥)과 화학비료는 곧, 신화(神話)였다. 그렇더라도 모내기를 하는 들판만큼은 흥겨움과 고단함, 설렘으로 마음이 바스대며 묘하게 어우러져 지나가는 이도 불러들여 커피도 나누고 맥주도 노나 먹었다.
고단함이 술을 부르고, 술에 감긴 일꾼이 모는 이앙기의 못줄이 갈지자를 그리는 가운데, 논들 끝에 하얗게 백로 떼가 날아 내렸다. 트랙터, 트럭, 이앙기 등의 기계 소리는 마을 어디서든 들려왔다. 다시 방향을 틀어 숲 기스락 그늘로 접어들었다. 잣나무 그늘 아래 애기나리가 떼판으로 피었다. 암수한그루로 홍송으로도 불리는 잣나무도 꽃을 피웠다. 지난겨울산책길에서는 길바닥에 떨어져 흩어진 잣송이들을 발로 비벼 잣알을 주워 주머니를 채우곤 했다. 청설모가 먹지 않는 잣송이는 사람도 먹을 수 없었다. 대부분 도사리이거나 굴퉁이였기 때문이었다.
산등성이, 숲을 밀어내고 뜬 수만 평에 이르는 논들이 주인이 바뀌고 태양광발전소 건설 예정지가 되면서 올해는 묵고 있었다. 다시,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가 논들을 가로질렀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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