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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말을 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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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권성준 칼럼위원(강원고성갈래길본부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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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4월 23일(목) 09:17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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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필자는 늦둥이 외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나이 차이가 많은 누님 두 분에 외아들. 아버지의 자식 교육은 남과 달랐음이 기억난다. 엄한 아버지와 부드러움과 정이 넘쳤던 어머니에 숨어진 가정교육.
엄부자모(嚴父慈母)의 근간을 바탕으로 옳음과 그름을 대표하는 아버지는 엄해야 하고, 배려와 사랑을 대표하는 어머니는 자애로웠다.
이런 가정 속에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묵묵히’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으로 살아왔다고나 할까? 진중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볍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내성적인 성격과 ‘묵묵히’라는 말수 적음도 고등학교 외지에서의 생활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른이 되고 나서는 과연 묵묵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내 목소리를 내는 것에 큰 힘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이 좋은 것일까?란 생각에 의심을 품고 마음이 자주 흔들리기도 했다.
자주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행동보다 말이 앞서고, 크게 목소리를 내어 나의 존재감을 과시하고도 싶어지고.
오늘도 잠시 흔들리고 있는 나이기에 가끔은 아동문학가인 강수성님에 시를 되뇐다.
나무는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삼가는 것이다.
할 말 있으면 새를 불러
가지 끝에 앉힌다.
새가 너무 말을 많이 하면
이웃 나무의 어깨 위로
옮겨 앉힌다.
동네가 시끄러우면
건너편 산으로
휘잉 새를 날려 보내기도 한다.
-<나무는 말을 삼간다> 전문
공자의 제자인 남용(南容)은 늘 자신이 하는 말이 누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서 시경(詩經)에 나오는 다음 시를 하루 세 번 외웠다고 한다.
白圭之점 尙可磨也(백규지점 상가마야) / 斯言之점 不可爲也(사언지점 불가위야) <흰 구슬의 흠은 다시 갈아 없앨 수 있지만, 입으로 뱉은 말의 잘못됨은 다시 어찌할 수 없다.> 즉, 한번 뱉은 말은 엎질러진 물과 같아 다시 담을 수가 없기에 언어의 신중함을 가리키는 시구(詩句)다.
또 조선의 연산군은 조정 신료들에게 묵언패(절이나 글방에서 잡담을 금하도록 문 위에 걸어놓은 나무패)를 걸어주며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즉, 입을 다물고 혀를 움직이지 않아야 자신을 보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많은 고전에서 말을 조심할 것을 재차 강조하듯이 우리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한다. 입만 열었다 하면 수다로 끝이 날 줄 모르는 사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고 없으면서도 있는 체하며 갑이 하는 말을 을이 귀담아들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 수양(修養)도 못했으면서 깨달은 체 떠들고 다니는 사람의 말을 듣고 나면 시간만 낭비한 느낌이 든다.
“말하기는 쉽고 행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세상의 일이 모두 말하기는 쉬우나, 실제로 실행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말은 사상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 가장 큰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 없는 말은 거짓 없는 마음의 표현이며 믿을 수 있는 신임사회 건설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란 것은 인간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사회는 불신과 거짓된 사회로 전락해 버렸다. 그 이유는 거짓말의 난무 때문이다. 거짓말을 해야 참말처럼 믿고 따르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진실된 말 진실된 언론이 아쉬운 세상이다.
온 세상이 뒤죽박죽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아시아권을 넘어 유럽, 미국, 남미 등 전 세계로 번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뒤늦게 팬데믹을 선언했지만 전 세계 코로나19의 확산세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코로나19는 조만간 사라지거나 이제는 한 줄기 통제 가능한 빛이 보일 날이 올 가능성이 보인다. 이 와중에 치러진 4·15 총선과 고성군수 재선거는 역대 유례가 없는 깜깜이 선거가 되었다. 코로나19가 선거의 가장 큰 블랙홀로 선거 관련 공약이슈가 묻혀 유권자들은 그들의 공약이 뭔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선거철이면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장밋빛 공약들이 과연 몇 개나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하나 같이 말은 청산유수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 또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전개된 선거 과정을 보면 후보들이 모두 똑똑한데 안타깝게도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말만 남발하고 솔직하지 못한 것을 보면 정치가 퇴보함을 느낄 수 있다.
약속을 책임질 줄 아는 정치
국민이 바라는 좋은 정치란 국민에 대한 약속을 책임질 줄 아는 정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이 되고 나면 출마 할 때 쏟아놓은 공약(公約)을 휴지조각 보다 못한 공약(空約)으로 버리고 그 약속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어느 하나라도 그 약속을 저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좀 더 심하게 지적한다면 책임 정당 정책 정치가 실종된 우리의 슬픈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이 떠난 자리에 추악한 권력욕만 남아있을 뿐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사회적 규범이다. 일반의 경우 일단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아울러 기업의 경우 그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계약 위반으로 위약금을 물어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적 손실까지도 감수해야만 한다.
이렇듯, 그들이 내놓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그 누구도 국민에게 용서를 비는 사람도 없고,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묻는 국민도 없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잔치가 끝난 자리는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잔치의 주인공들은 잔치 뒷자리를 말끔하게 치워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자들은 기쁨과 설렘을 뒤로 하고 선택받은 행운을 신속하게 우리 지역의 운명을 빨리 바꿔놓아야 할 임무가 있다. 왜냐하면 코로나19의 고통을 수습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야 할 더 많은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거 때 입으로 내놓은 공약은 어떠한 여건에서도 지켜야 한다. 공약은 공적인 약속으로 공신력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밀스러운 말이 아닌 공개적인 선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약속을 듣고 믿을 수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선언하고 따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선된 자들이 행한 공약은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지키지 못할 때는 공약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을 속인 사기에 해당한다.
공적인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 정치가라면 정치가는 말을 많이 한 만큼 말실수가 많아질 수 있다. 이즈음, 당선된 자들은 생각을 더 깊이 있게 하는 ‘나무는 말을 삼간다.’ 는 시를 되뇌며 말하기 쉬운 공약을 실제로 실행하는데 온 힘을 쏟아내기를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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