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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고(故) 함택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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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이야기 / 김영식 간성읍 주민(고성재향경우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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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23일(수) 11:59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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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의 과정에서 부모·스승·배우자 이렇게 세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부모·스승·배우자를 잘 만나야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느냐, 불행해질 수 있느냐 하는 갈림길이 될 수가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누군가 내게 가장 그립고 만나보고 싶은 스승을 꼽으라면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영원한 스승’ 고 함택열 선생님이라고 말할 것이다. 1973년 필자가 동광농업고등학교 2학년 재학 시절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키가 크시고 몸집도 건장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교 2학년 때 만난 ‘영원한 스승’
그 해 4월 초순경 부친이 병석에 눕자 장남이었던 나는 가사 일을 돕기 위해 5월 초순경 친구 편으로 선생님에게 자퇴서를 전달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이 깔린 밤에 선생님께서 친구의 안내를 받으며 예고도 없이 초라한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선생님은 나의 부모님께 “김영식 학생은 성실하고 근면하고 모범적이니, 고교 3년을 무사히 마쳐야만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간곡하게 설득하셨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등교를 시켜 주면, 나머지는 책임을 지겠다고 하셨다. 부모님은 선생님의 간곡한 말씀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셨다.
나는 이 때부터 오전에는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가사일을 돌봤다.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오징어조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가까운 연근해는 물론 멀리 울릉도까지 원정 조업(속칭 남바리)도 7회나 다녀왔다. 당연히 힘들고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나를 배려해주시는 선생님을 생각하며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문제가 생겼다. 학교장이 담임 선생님에게 수업일수가 부족하니 퇴학 조치를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은 교장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켜주셨다. 나는 이런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너무 아프고, 죄스러우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던 중 부친께서 차츰 회복이 되어 3학년부터는 열심히 학교에 다녔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중간고사에서 농촌지도과목 100점을 받기도 했다. 3학년 최종 성적이 등수 안에 들어 나중에 경찰시험을 볼 때도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고맙습니다, 그립습니다
만일 고교 2학년 시절 함택열 선생님이 안계셨다면 나는 고교를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며, 2전3기로 도전해 경찰시험에 합격한 뒤 경찰관으로 생활하다 명예롭게 퇴직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재의 나의 모든 것은 선생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과 단 둘이서 진로상담을 했었다. 찾아뵐 때마다 진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주셨다. 가정형편이 어려우니 안정된 직업을 위해서는 공무원 쪽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씀해 주셨고, 나는 언젠가 공무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선생님과의 약속대로 군대를 다녀온 뒤 경찰시험에 응시했다. 준비가 부족해 2번이나 낙방했지만, 선생님을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3번째에 합격했다.
지금은 경찰관 생활을 그만두고,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고 있지만 요즘도 힘이 들 때마다 선생님이 그립기만 하다. 그럴 때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성실히 살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함택열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말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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