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교육일반문화.스포츠이진수의 이 한장의 사진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김하인 연재소설류경렬의 경전이야기가라홀시단학교탐방어린이집 탐방고성을 빛낸 호국인물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검색

전체기사

교육일반

문화.스포츠

이진수의 이 한장의 사진

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

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

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

김하인 연재소설

류경렬의 경전이야기

가라홀시단

학교탐방

어린이집 탐방

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교육/문화 > 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숲에서 숲으로 [40]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20년 04월 23일(목) 09:35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톡톡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을 때도 가끔 있었다. 부엌을 건너 내 방까지 들리는 소리에 이따금 귀가 쏠리기도 했지만 무심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시작된 소리는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어머니께서 시장에 다녀오신 뒤면 그 소리는 며칠씩 이어지기도 했다. 어느 때는 시간차를 두고 부르는 이중창처럼 들리기도 했는데 귓가에서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처럼 귀가 솔았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방문을 열었다 닫곤 했다. 은행을 까는 소리였다. 은행은 껍데기가 딱딱해서 도구를 이용하지 않으면 쉽게 깔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 자루째 사다 놓으면 병석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일삼아 그 일을 하곤 했다.
은행나무는 2억 7천만 년 전 화석으로도 발견되어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도 하는데, 그 까닭은 이 나무는 거의 3억 년 가까이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지구에서 공룡이 사라지고, 매머드가 멸종하고 없었지만 은행나무는 끄떡없이 살아남아서 오늘도 흔하게 이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국이 원산지인 이 은행나무는 1종 1속으로 그 흔한 친척 나무조차 없었으며 저 스스로는 또 자생하지 못해서 사람이 심어야만 했고, 그렇게 생명을 이어왔으면서도 또 매우 오래도록 살아남아서 우리나라에는 나이가 천 살이 넘는 나무도 꽤 많았다.
마을 주변에서는 아직은 천 살보다는 어린 나무들을, 향교와 사찰에서는 천 살에 가까운 나무들을 볼 수 있었고, 고성군청 마당엘 가면 어디에는 칠백 살이라고도 하고, 또 어디에는 팔백 살이라고도 하는 은행나무가 옹벽 꼭대기에 동쪽을 향해 비스듬히, 그러나 매우 우람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가까이서 나무 둥치를 보면 말짱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흔히 구새먹은 자리는 흰 뱀이 산다고도 하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고성군청 은행나무는 구새먹은 곳을 수술한 자리가 매우 넓고도 커다랬다. 나무들은 속이 텅 비어도 겉만 멀쩡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고묵은 나무들은 으레 태풍에도 가지가 찢기고, 폭설과 번개에도 아귀가 너덜나기도 일쑤였고, 그렇지만 또 이 찢긴 가지들이 벌레와 곤충들을 불러모으면 그 다음에는 조류가 나무에 구멍을 내기에 이르러서 마침내 크고 작은 새들이 둥지를 틀면서 구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마련이었으나 나무는 또 나무대로 기꺼이 이들과 동거하면서 갖은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가 되었고, 인간은 또 이들의 공생이 불러일으키는 꽤 그럴 듯한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간성읍 자치 센터 쪽에서 보면 절벽에 매달려 허공에 떠 있는 듯 여겨지기도 했지만, 나무 둥치 둘레를 가만히 살펴보면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음력 정월인데도 봄까치꽃이라고 불러야만 좋을 연푸른 빛깔의 개불알꽃을 촘촘히 키우고 있는 것처럼.
식물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꽃을 피운다는 것이었고, 그 꽃의 결과가 열매로 이어졌으며 열매는 또 종자, 씨앗이 되어서 다음 세대를 잇는 것이었지만, 은행나무는 유심히 들여다보아야만 볼 수 있는 암꽃이 피는 나무와 수꽃이 피는 나무가 따로따로인 암수딴그루였다. 그러니까 암꽃이 피는 나무는 암꽃만 피고, 수꽃이 피는 나무는 수꽃만 피어 둘 가운데 하나가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나무가 은행나무였다. 이를테면 소나무는 암수한그루, 즉 자웅동주(雌雄同株)여서 한 그루 나무에 암꽃도 피고 수꽃도 피어서 솔방울을 맺었지만 은행나무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였다.
가을이면 열매가 뿜어내는 냄새로 악명을 떨치기도 하는 은행나무는 열매가 무거워 멀리 가지도 못해 대체로 밑동 주변에 떨어졌다. 그 옛날엔 은행나무 두어 그루만 있어도 톱톱한 가욋벌이가 되었고, 학자금을 보탤 수 있어 대학나무니 뭐니 하는 별칭이 따라붙었지만 근래에는 이것 또한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듯했다. 은행은 약재로서도 그 쓰임새가 유용하지만, 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했다. 밥에 안치거나 팬에 볶으면 쫄깃해서 자꾸 손이 갔지만.
우리집 마당에도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었으나 마을회관을 이전하면서 새로운 터전으로 함께 이사를 했다. 그러나 이사를 하기 위해 나무갓이 잘리고, 가지를 제겨내는 바람에 꽤 볼만했던 나무는 그만 주먹손이 되었는데 옮겨 심은 과정에서 또다시 굴착기에 여기저기 나무 껍데기가 까졌다. 옮겨 심은 뒤 한동안 되살이하느라고 그랬는지 이파리도 제대로 피우지 못하더니 근래에는 가을이면 샛노란 은행잎이 퍽 볼만해졌으나 이 나무는 한 그루였고, 아직 열매를 맺지 않았다. 은행나무는 심은 지 20~30년은 되어야 열매를 맺는 까닭에 ‘공손수(公孫樹)’라고도 불렸다.
고성군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한 그루는 고성군청 마당에 있었고, 또 한 그루는 간성읍 봉호리 농가 굴뚝 옆에 있었다. 농가와 농가 사이의 틈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사백 살이라고 알려져 있었고, 대나무와 음나무에 둘러싸여 있어서 한여름에는 무성한 이파리 때문에, 낙엽이 지고 없는 한겨울에는 또 한겨울이어서 존재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적시적 노량으로 걸어서 옛 동해북부선 철길을 따라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한여름에는 뙤약볕이 무심해서, 한겨울에는 미친바람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옛 동해북부선 간성역 터에서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고, 너른 동호리 뜰을 내다보기도 하면서 걷는 길이 퍽 쑬쑬했다. 어디만큼에서 동호리와 봉호리가 갈리는데, 동호리는 또 오래전 염전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한동안 옛 염전 터를 찾아 돌아다녔고, 문암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곳 동해안은 바닷물을 끓이고 졸여서 소금을 만드는 자염(煮鹽)이 흔했으나 이 또한 모두 옛일이었지만, 터무니가 사라졌다고 해서 전해오는 이야기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얼음강판 속에서도 실낱같은 물길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오래된 나무들을 기리는 것은 때때로 이 나무들이 품었을 이야기가 그립고 궁금해서이기도 했다. 오색딱따구리와 백로, 때로는 수리부엉이와 소쩍새, 거기에 떼를 지어 몰려다니곤 하는 참새떼도 잠시잠깐 나무에 의탁하여 날갯짓을 쉬었을 것이었다. 더불어 어느 해는 태풍이 심해서 곡식이 여물지 못했고, 또 어느 해는 폭설이 심해서 북쪽으로 난 나뭇가지가 꺾였을 것이었으며 또 어느 해는 볕이 좋아서 은행이 헤아릴 수 없이 수두룩하게 열려서 주인 영감의 마음이 해낙낙했을, 그 모든 일들을 일일이 나이테에 새겼을 것이나, 인간은 또 명개만큼도 헤아릴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천 년을 사는 나무는 그저 아마득하기만 할뿐.
지난해 여름 어느 날에는 장에 다녀오시던 집주인 노인을 만났으나 올해는 어디 마실을 가셨는지 구팡에는 슬리퍼만 나란히 놓여 있을 뿐 기척이 없었다. 지난해 노인께서는 속초 관광수산시장이 중앙시장으로 불리던 시절, 가을이면 은행을 팔러 다녔던 얘기를 들려주셨다. 다시금 옛날이야기나 들어볼 요량이었으나 집은 적적했고, 텃밭에는 은행들만 나뒹굴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앞집에 사냥개처럼 험상궂은 개 한 마리가 목줄을 끌며 내가 마을에 들어설 때부터 짖어대기 시작하더니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날은 또 온통 미세먼지로 뒤덮여 그렇지 않아도 텁텁하던 하늘이 아예 실루엣으로 변하고 말았다.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마을 논들 가장자리 벼 건조장 옆에 서 있는 금강소나무를 둘러보러 가는 길에 웬 노인께서 우산을 질질 끌면서 논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인사를 여쭈어도 노인은 본 척 만 척 그러면서도 서두르는 기척 없이 놀민놀민 지나가셨다. 몸을 돌려서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다봤다. 등허리부터 온통 흙투성이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벼 건조장 위로 덜름하니 솟아오른 금강소나무를 치어다보았다. 마을 하늘에는 느릿느릿 백로가 지나갔고, 좀 전까지도 요란스럽던 개 짖는 소리가 문득 사라졌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인구 감소·경제 침체 등 구조적..

버스 무료 이용 속초까지 가능..

외국인 계절근로자 활성화 상생협..

고성군 인구 3년 만에 27,0..

하천·계곡 불법행위 대대적 정비..

고성군수 선거 함명준·박효동 맞..

토성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전..

금강농협 다문화가정 위한 장학금..

2026년 ‘고성 DMZ 평화의..

2026년도 정부 보급종 콩 개..

최신뉴스

체류형 관광 기반 구축·기업..  

죽왕면과 고성군의 실질적 변..  

지역구 고성군의원선거 총 1..  

함명준 군수 예비후보 선거사..  

김진 군의원 예비후보 선거사..  

강원선관위 장애인단체 업무협..  

농가에 외국인 계절근로자 1..  

금강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농관원 6월 30일까지 하계..  

치매, 함께 보듬어야 할 이..  

자원봉사센터 취약계층 장애인..  

고성소방서 현장대응능력 강화..  

토성면 의약분업 예외지역 취..  

기하의 언어로 풀어낸 감정의..  

‘2026 콩닥콩닥 탐사단’..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daum.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