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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富)와 사랑의 분배를 위한 희생

금강칼럼 / 김향숙 칼럼위원(시인)

2021년 09월 28일(화) 10:06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몇 년 전, 미국여행에서 돌아올 때 지인들을 위한 작은 선물로 고디바(GODIVA) 쵸콜릿을 사 온 적이 있었다. 고급진 달콤함과 화려한 금장 포장은 지금도 특별한 날이나 선물이 필요할 때마다 생각날 만큼 사랑스럽고 마음이 간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것은 우유가 들어가지 않고 코코아 가루, 카카오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다른 초콜릿들보다 비교적 쓴맛이 강한 다크 초콜릿(dark chocolate)이다.
고디바는 요셉 드랍스라는 사람이 1926년 벨기에에서 설립한 세계적인 명품 초콜릿 브랜드인데 지금은 전 세계에 많은 매장을 두고 있고 우리나라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손쉽게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로고에는 긴 웨이브의 머리카락으로 벌거벗은 몸을 겨우 가리고 말을 탄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그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알기 전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좀 선정적인 이미지가 아닌가 의아해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고디바

전해지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고디바, 혹은 고다이버(Godiva)라고 불리는 이 여성은 11세기 영국 코번트리 영주인 백작 리어프릭(Leofric)의 아내였다고 한다. 리어프릭은 환갑을 한참이나 넘긴 노인이었고, 후처로 들어온 고다이버는 그 당시 16세 정도였다. 리어프릭은 자신의 영지 안에 있는 농민들에게 가혹하고 부당한 세금을 착취했으므로 농민들은 병들고 가난하여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신앙심이 깊은 고디바는 남편의 혹독한 정책에 괴로워하며 농민들의 무거운 세금 부담을 줄여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지만 완악한 리어프릭은 그녀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다이버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청을 했고 결국 견디다 못한 리어프릭은 결코 아내가 실행하지 못할 것 같은 어려운 조건을 제시한다.
그것은 그녀가 완전 나체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돈다면 세금 감면을 고려해 보겠다는 제안이었다. 16세 어린 나이의 귀족부인 고다이버는 고통받는 농민들을 구하기 위해 수치와 모욕을 감수하고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돌기로 결심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농민들은 영주의 부인이 자신들을 위해 끔찍한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감동했고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커튼을 가리고 아무도 그 모습을 보지 않기로 약속했다.
날이 밝자 고다이버의 행진이 시작되었고 농민들은 어서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톰이라는 길가의 양복점 직원이 벌거벗은 고다이버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것을 몰래 커튼을 열고 훔쳐보는 순간 갑자기 강한 햇빛이 그의 눈을 강타했고 그는 그 후로 장님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영국에서는 다른 사람을 몰래 엿보는 습관을 가진 호색한을 ‘피핑 톰’(Peeping Tom, 엿보는 톰)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관음증’ 혹은 ‘관음증 환자’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말을 탄 여인의 모습으로

고통당하는 불쌍한 농민들을 위한 아내의 희생적인 선택에 감동된 리어프릭은 농민들에게 세금 감액과 함께 오히려 너그러운 선정을 베풀며 아내와 함께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고다이버는 재물뿐만이 아니라 가난한 농민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분배를 통한 숭고한 정신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리어프릭 영지 내의 농민들은 과중한 세금징수로 개인적 쾌락을 향유하는 남편을 힐책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했던 고다이버의 희생정신에 감동하여 그녀를 추앙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코번트리 마을의 상징은 말을 탄 여인의 모습으로 이어져 오고 그녀에 관한 그림들과 관련 상품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고다이버의 일화를 다룬 그림 중에서는 1897년 영국의 화가 존 콜리어(John Maler Collier)가 그린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고다이버가 행한 대담한 나체 시위는 악법에 대항하며 관행이나 부정에 맞서 대담한 논리로 관철시키는 정치를 빗댄 말로 ‘고다이버즘(godivaism)’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 대부분은 누군가를 위한 작은 고다이버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물질이든 마음이든 아름다운 사랑의 분배로 세상은 살아있고 소망이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수치와 손해를 감수하고 비장하게 거리를 지나고 있는 크고 작은 고다이버들에게 간절한 기도와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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