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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그리고 人生

금강칼럼 / 권성준 칼럼위원(강원고성갈래길본부 대표이사)

2021년 10월 22일(금) 14:07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벌써 가을이다. 그렇게 사납던 한여름 기세도 계절의 변화는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입추와 처서를 거쳐 가을을 알리는 절기인 백로와 추분, 한로도 지났다. 예로부터 백로에는 제비가 돌아가고 기러기가 날아온다고 했으니, 개울가 바람에 나부끼는 물억새 이삭에도 가을 내음이 물씬하다.
가을 추(秋)는 따스한 햇볕(火)과 고개 숙인 벼(禾)를 생각하는 계절이다. 어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가을’을 클릭하면 대표적 연관 검색어는 ‘가을 풍경’, ‘가을 시’, ‘가을 여행’이다. 가을 창공(蒼空)은 드높고 햇볕은 따가우며 지상에서는 벼도 나뭇잎도 모두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간다. 그야말로 하늘, 산, 자연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고 싶은 마음에서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은 여행의 계절이다.

황홀함 뒤에 오는 허망함

하지만 가을 여행은 황홀함과 허망함의 두 가지 만감이 교차케 한다. 황홀한 풍경에 취해 있지만 어차피 때가 되면 사라지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것이기에 머무는 그 순간이 더 아름답고 소중할지도 모른다. 기대감에서 시작해서 황홀함 뒤에 오는 허망함 그게 바로 인생 여정이다. 그래서인지 가을 한시(漢詩)에서 가장 대표적인 소재는 ‘낙엽’과 ‘기러기’였다.
“기러기 따라 내리는 서리에 빠른 세월이 놀라운데/ 강호(江湖)에 가득한 낙엽 밟는 소리가 좋아라.” 조선 말기 우국지사 황현이 ‘매천집’에 남긴 시 ‘신축고(辛丑稿)’의 한 구절이다. 최승자 시인은 ‘가을’이란 시에서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디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라고 읊었다. 기러기와 낙엽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는 보고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겠지만, 분명 가을이라는 계절에는 인간살이의 오묘함과 심오한 자연의 순리가 녹아져 있다.
인간은 누구든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마치 봄·여름·가을·겨울을 보내듯이 유·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보낸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가을은 인생의 장년기에 해당한다. 뿌리는 시기가 봄이면 거두는 시기는 가을이다. 가을은 결국 수확의 계절이자 휴면과 영면의 세계로 가는 황혼의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다. 그러기에 수확의 계절이 주는 의미와 아름다운 풍경의 계절, 가을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고마움과 함께 영원히 같이 머무르고 싶은 간절한 심경(心境)을 일으키게 만든다. 수확 후의 허무한 여유와 다시 돌이켜 보고 싶은 그리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그래서인지 가을의 감성 코드는 ‘허무’와 ‘외로움’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기에 아까운 순간들이다.
누구나 멋진 풍경과 아름다운 순간들을 사진에 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인물 위주 인지 아니면 풍경위주 인지에 따라 렌즈 앵글(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래서인지 나이와 계절에 따라서 사진 촬영 대상도 다르다.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 갈수록 풍경 위주로 사진을 찍는 경향이 있다. 각종 SNS에 올려놓은 사진들도 봄·여름에는 자기 위주의 셀카가 많은데 반해 가을사진들은 대부분 풍경 위주에 본인을 작게 넣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을은 수확과 성찰의 계절

특히 가을 단풍은 그야말로 우리 중생들을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어 일상의 시름을 모두 잊게 만든다. 마음이 온통 한 곳에 쏠려 스스로의 존재마저 망각하게 만드는 무아지경(無我之境)을 연출케 한다. 가을은 진정한 무아(無我)의 의미를 알려주는 계절이다. 결국 무아(無我)는 하심(下心)이다. 불교에서 하심(下心)이란 나를 잊고 자신을 내려놓은 것이다. 즉 나를 낮추어 남을 배려한다는 뜻이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려는 마음이다. 자기를 너무 고집하는 아상(我相)을 버려야 하심(下心)이 생겨나는 법이다. 아상(我相)이 강하면 아집에 빠지기 쉽고 남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전형적인 아상(我相)이다.
인생은 무한한 존재가 아닌 유한한 존재이다. 중국 北宋(북송)의 문호 蘇軾(호 : 동파)의 시에서도 ‘인생은 마치 설니홍조 (雪泥鴻爪)’라고 무상(無常)함을 표현했다.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같이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야 되는 기러기처럼, 혹은 낙엽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계절이다. 인생은 참으로 덧없다. 사람도 기러기와 다를 바 없다. 부와 권력을 위해 아등바등하고 그것을 이뤘다고 해도 영원히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후세에는 명예만 남을 뿐이다.
가을은 수확과 성찰의 계절이다. 이에 삼라만상의 종말을 준비하는 가을은 우리에게 진지한 내적 깨달음과 진정한 충실을 느끼게 한다. 대자연의 법칙과 순리를 새삼 느끼게 한다. 가을은 분명 아름다운 풍경을 관조(觀照)하면서도 과거를 반추(反芻)하게 해주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계절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가을은 불현듯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허전하게 달아나면서 황량한 겨울로 이어진다. 그래서 사계절 중 가장 짧게 느껴진다. 보내고 싶지 않은 못내 아쉬운 절기이다. 인생의 장년기처럼…. 그러나 가을(秋)은 우리에게 ‘기회 있을 때 잘해’라는 가르침과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겨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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