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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36]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36] / 삽화 윤광자 화가

2021년 11월 15일(월) 11:27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고국에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를 읽다가 피곤하여 잠자리에 들려던 순간이었다. 병원과 숙소를 연결한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50킬로 떨어진 산골 마을에 한 남자가 장폐색증을 앓고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답니다.”
병원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셔우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매리언을 바라봤다.
“이 밤중에 그 멀리까지 가서 수술할 수 있을까? 더구나 당신은 해산이 임박한 임산부이고 한겨울이라 길도 미끄러운데…….”
메리언은 잠시 깊은 생각을 하더니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
“힘들지만 이런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죽게 내 버려두는 것과 다름이 없지요. 그런 응급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는 우리밖에 없으니까요.”
셔우드는 독신여성 기숙사에 가서 간호과장 런드 양과 간호사를 깨웠다. 그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병원에 가서 모든 기구의 소독을 확인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그날 밤은 달빛이 아름다웠다. 밤이 깊어지며 매서운 찬바람이 불더니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몸이 얼어 덜덜 떨려 고통스러웠는데 드디어 차가 마을로 들어섰다. 마중을 나온 사람을 따라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열렸는데 화로를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둘러앉은 광경이 보였다. 환자가 어디 있느냐고 했더니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조선사람 네 명을 더 태우고 차는 덜컹거리며 다시 좁은 산길을 달렸다. 마치 한밤중 어떤 공작을 꾸미러 가는 단원들과도 같았다.
차가 달릴 수 있는 막다른 길까지 가자 길이 좁아 차는 더 가지 못하고 논두렁길을 2km 남짓 걸어야 했다. 살을 에는 바람이 옷 속을 파고 들었다.
셔우드는 아내가 걱정이 되어 계속 매리언의 뒤를 따랐다. 매리언은 말없이 무거운 몸으로 논둑길을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머릿속엔 환자의 상태와 그곳에서 수술이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는 것 같았다. 참 크신 사랑이 그녀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논두렁을 한참 걸어가니 마을이 나타났고 언덕에 진흙으로 지은 낡은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높은 돌계단을 올라가니 남자들이 모여 있는 사랑방이 보였다. 천정은 낮고 벽은 흙벽이고 바닥엔 돗자리가 깔려있었다. 난방장치라고는 약하게 타고 있는 화롯불뿐이고 아주 작은 등잔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불꽃의 크기가 완두콩만 했다.
“아! 저 깜빡이는 등잔불 아래서 어떻게 수술을 하겠어요. 닥터 김이 손전등을 주머니에 넣고 와서 다행이네요.”
사람의 의술만으로는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불가능을 이기는 기적이 있질 않고는 안 될 일이었다. 겉옷을 사랑방에 벗어놓고 빈대나 이가 많이 달라붙질 않길 바라며 환자가 있다는 옆방으로 갔다. 환자가 친척들과 식구들에게 둘러싸여 누워있었다. 닥터 노튼이 조선의료 선교사로 있을 때 의술을 배워 의사면허를 따서 이 지역에서 의료업을 하고 있는 조선인 의사도 와 있었는데 그가 셔우드 내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 의사의 진단은 정확했고 수술을 해야 환자가 살 수 있었다.
사람들을 방에서 모두 나가게 하고 곧 수술을 준비했다. 너무도 불결한 옷, 이불들을 어떻게 소독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소독을 시작했다. 두 조선 남자가 거리를 두고 등잔불을 비추고 다른 한 사람은 손전등으로 수술 부위를 비추게 하였다.
어려운 수술이 밤새도록 진행되었다. 수술을 다 마치자 동이 텄다. 마지막 봉합이 끝나고서야 저렸던 다리와 무릎을 펼 수 있었다. 만삭인 매리언은 허리를 잘 펴지 못하고 진땀을 흘리면서도 의사로서의 투철한 사명감과 신앙심으로 끝까지 잘 참아 주었다.
“와, 참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등잔불을 들고 서서 수술 전 과정을 지켜보던 조선 남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수술을 마치고 사랑방으로 왔다. 담배연기로 자욱한 방에서 간호과장 런드양이 예수님을 전했다.
“이 추운 겨울밤에 우리를 여기까지 불러 한 생명을 구하게 한 것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수술에 최선을 다했으니 환자의 상태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마을 사람들은 환자가 낫기만 하면 온 동네가 예수님을 믿겠다고 약속했다. 환자는 수술 경과도 좋았고 얼마 후 완쾌되었다. 그 후 두 마을에서 교회를 세워 달라고 요청해 왔다. 기독교인이 한 사람도 없는 마을에 이렇게 하여 교회가 생기고 셔우드는 그 지역에 정기적으로 의료 봉사를 시작하였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그 날 밤의 응급수술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예수님 사랑의 사건이었다.

매리언의 분만 날이 가까워오자 셔우드는 서울에 가서 아기를 낳으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말했다. 다른 환자의 아기는 받아도 자신의 아기는 왠지 주저되었다. 그러나 매리언은 해주에서 아기를 낳겠다고 하였다. 남편과 런드 간호과장을 충분히 신뢰하기에 서울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하니 셔우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당시는 ‘무통분만’이 보편화 되지 않아 산모의 고통을 줄여줄 방법이 없었다.
1927년 12월 18일 매리언은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셔우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여보, 메리언, 수고 했어요! 우리가 아들을 얻었어요!”
아기 이름을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월리엄 제임스’로 지었다. 아기는 씩씩하게 울고 우유도 잘 먹으며 건강하게 자랐다.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기 시작하자 조선은 ‘은둔왕국’에서 ‘허가왕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건축, 정지작업, 자동차의 소유나 판매, 출판과 인쇄, 공공집회까지도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러한 허가 업무는 하급 관리들이 관할했는데 반 기독교단체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병은 치료보다 예방이 우선이기에 병원에서 시간을 내어 공중 위생계몽과 교육을 위해 마을을 찾아다니며 강연회를 준비했는데 계속 방해에 부딪혔다. 선교사업에 사용하라고 고국에서 선물 받은 비싼 영사기와 환등기로 공중위생계몽 교육을 시작했는데 보이지 않은 장애와 방해가 심했다.
질병 예방접종을 할 때도 허가를 받아야 했다. 학교에 장티부스 예방접종 허가를 신청했는데 승낙하지 않아 다른 학교 학생들은 예방접종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닥터 홀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만 예방접종을 하였고 그 학교는 장티부스에 걸린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예방접종을 못한 학교는 여러 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이런 일들은 셔우드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기 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에스더 이모를 비롯해 조선에 결핵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며, 훗날 의사가 되어 조선에 돌아와 결핵 요양소를 설립하겠다는 꿈을 안고 미국으로 갔었다. 그래서 그 분야를 전공하였고 롱아일랜드 ‘홀츠빌’에 있는 결핵 요양소에서 근무하며 이 포부를 동료 의사들과 자주 거론하곤 하였다. 우직한 성격이었던 셔우드는 경제적인 현실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반드시 그 꿈을 이루려는 정열에 불타 있었다.
웰치 감독은 조선 선교사 파견이 결정되기 전에도 셔우드의 이 같은 계획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단순한 젊은 의사의 이상주의에서 나온 객기라고 웃어넘기지 않았다. 감독이 되기 전 오하이오 주 웨슬리안 대학교(Ohio Wesleyan University)에서 11년이나 총장을 지낸 그는 젊은이들의 꿈을 인정하는 안목을 가진 분이었다.
웰치 감독은 셔우드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다. 메리 버버그(Mary Verburg)가 조선에 새 병원을 짓는 데 사용해 달라고 유산을 남겼다는 유언을 선교회에서 통지받은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이 유산은 유언장의 조건에 맞는 사람과 계획이 나타나지 않아 유언의 법적 집행인이 집행을 보류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조건이란 공중위생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웰치 감독을 만났을 때 그는 격려의 미소를 지으며 셔우드에게 말했다.
“당신의 사업계획은 그 요지부동한 유언 집행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여건이 희망적이었는데 공중위생 교육을 막는 반기독교 세력들의 방해에 부딪혔으니 셔우드는 사기가 저하되고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낙심되는 마음을 기도로 달래며 고심하고 있을 때 진찰은 받으러 온 환자 중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공중집회 위생계몽을 하려고 할 때마다 허가를 내주지 않고 항상 애타게 방해했던 그 관리였다.
“이 아침에 어떻게 저희 병원에 오셨습니까?”
셔우드는 반가운 표정을 하며 부드럽게 물었다.
“기침이 심하고 가슴이 아파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무당이 하라는 대로 다 해 봤으나 더 심해지기만 합니다.”
그는 풀이 죽은 채 대답했다. 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귀를 기울였다.
“안 됐습니다만 폐병에 걸렸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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