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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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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권성준 칼럼위원(강원고성갈래길본부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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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9일(월) 10:44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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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어느 일간 신문이 37개국의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 결과를 보도하면서 한국인들은 지금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65.93점으로 세계 평균(69점)에도 못 미치고, 순위는 37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28위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1인당 GDP가 한국에 뒤지는 멕시코(1위), 트리니다드토바고(5위), 콜롬비아(8위), 말레이시아(9위), 과테말라(15위), 인도네시아(19위), 베트남(22위), 폴란드(23위) 보다 행복지수가 낮았다. 특히 설문에 응한 표본 집단은 ‘나는 옛날보다 불행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
왜 그럴까. 유독 우리는 왜 경제력과 행복지수 사이의 극심한 불일치 현상을 보이는 것일까. 왜 1인당 GDP가 1천 달러였던 30년 전보다 3만 달러에 이른 지금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왜 목욕탕이 없는 집에서 살고 만원버스에 시달리던 시절보다 집에 욕탕이 두세 개씩 있고 승용차가 두 대나 있는 지금이 불행한 것일까.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가 하는 화두를 갖게 한다.
사실 그런 통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주변에서 그것을 실감한다. 학생들은 비효율적인 교육제도로 인해 매일 대여섯 개의 학원과 과외를 전전하느라 불행하고, 청년은 취직조차하기 힘들며 자신의 미래에 드리워져 있는 불확실성 때문에 불행하고, 장년은 언제 직장에서 떨려날지 모르는데다 턱없이 들어가는 자녀의 사교육비에 수입의 많은 비중을 써버려 불행하고, 노인은 대책 없이 늙어가는 불안 때문에 불행하다.
그런데 이 모든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바쁨에서 오는 경향이 대부분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현대인들은 정말 바쁘게 하루를 살고 한 달을 살고 일 년을 산다. 바빠서 자신을 성찰할 시간도 없고 내면에 한 줌 한 줌 쌓여가는 상처와 아픔도 들여다볼 새가 없다. 긴장된 생활 속에 웃음은 점차 사라지고 마음은 마른 풀처럼 메말라 가는데도 자신을 몰아세우기를 멈추지 못한다. 바쁘게 살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뒤처질까 봐,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도태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여유롭고 단순한 삶이 훨씬 좋다는 것을 알고, 또 그런 삶을 바라면서도 끊임없이 돌아가는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사치스런 생활을 쫓다보면 어느새 행복은 더욱 멀어진다. 행복한 삶은 대부분 매우 단순하다. 사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방 한 칸만 있으면 된다.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하나면 족하고,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라도 좋다. 사람됨으로는 자족할 줄 알아야 하고, 일할 때는 부족함을 알아야 하며, 학문을 익힐 때는 절대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일을 억지로 몰아가지 말고 단순할수록 좋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몇 년 전 스페인을 다녀왔다.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으로 가는 시원하게 뚫린 넓은 도로가 있었다. 도로 양옆은 꽃과 나무로 가득하고 온갖 나비가 춤을 추는 등 멋진 풍경이 장관이다. 그런데 이 도로에는 눈에 띄는 큰 표지판이 있다. ‘천천히 가면서 즐겨보세요’라고 적힌 표지판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정신없이 지나가버리면 이런 표지판이 다 등장했겠는가! 아마 모두가 목적지에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겠다는 일념으로 내달리는 모양이다. 그러느라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절경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 아닐까?
과거에는 우리도 이웃과 소소한 집안일부터 나라의 대소사까지 서로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시간적, 감정적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바쁘고, 또 바쁘고, 미치도록 바쁘다! 오죽하면 “잘 지내십니까?”라는 인사보다 “많이 바쁘시죠?”라는 말을 더 많이 하겠는가!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바쁘다’는 것을 이미 기정사실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어쩌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생각해보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하게 들어찬 스케줄을 정신없이 따라가면서 속으로는 충실하게 살고 있다고 위로하지만, 사실은 비할 데 없는 공허감에 몸부림치고 있지는 않은가?
가끔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한 신부가 천천히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바쁜 걸음으로 그의 곁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호기심이 많은 신부는 그를 불러 세웠다. “이보게 젊은이,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가?” 젊은이는 화가 난 얼굴로 짧게 내뱉었다. “나는 아주 바빠요! 삶을 따라잡아야 한단 말입니다!”
“아니, 삶이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어찌 안단 말인가?” 신부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자네는 무조건 앞으로 달려갈 줄만 알지,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볼 줄은 모르는구먼.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게나. 삶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지금 삶은 저 뒤에서 힘들게 자네를 쫓아오고 있을지도 모르네. 자네가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삶과 자네와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진다네. 삶과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멀어지고 있다는 말일세!”
인생은 편도 여행이다. 이 여행에서 어떤 사람은 비행기나 로켓을 타고 엄청난 속도로 앞만 보고 달려간다. 기나긴 여행의 과정을 순간으로 압축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잠시 쉬지도, 멈추지도 않고 달려간 여행의 끝에는 잠깐의 쾌감만 남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마차를 타고 천천히, 심지어 두 발로 걸어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 그 여정에서 꽃과 새를 보고, 곤충을 관찰하며,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한다. 이들이야말로 인생을 있는 그 자체로 즐길 줄 아는 것이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너무 바빠서 도저히 쉴 만한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의도적으로 쉴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생활에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더 멀리, 더 높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나에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나 역시 참 바쁘게도 왔다.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60 중반을 넘어 70세를 바라보는 이 지점에 서 있으니 회한처럼 이런 글을 쓴다. 내 뒤를 걸어올 후배 친구들의 행복을 위해서다.
시대가 변했다. 내가 자라온 그 시대와는 다르다. 이제 가끔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자. 봄에 피는 꽃과 가을에 지는 달, 뜨거운 여름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과 겨울을 감싸는 눈을 음미해 보자. 풀이 자라는 모습을 봐도 좋고,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봐도 좋다. 이 모든 것은 인생이 우리에게 베푸는 최고의 축복이다. 놓치기 너무 아깝지 않은가!
앞서 말했듯이 인생은 여행이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주변의 풍경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이다. 속도를 늦추고 느리게 걸으면서 주변을 돌아보자. 아마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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