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교육일반문화.스포츠이진수의 이 한장의 사진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김하인 연재소설류경렬의 경전이야기가라홀시단학교탐방어린이집 탐방고성을 빛낸 호국인물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검색

전체기사

교육일반

문화.스포츠

이진수의 이 한장의 사진

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

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

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

김하인 연재소설

류경렬의 경전이야기

가라홀시단

학교탐방

어린이집 탐방

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교육/문화 > 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화진포의 성 [43]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43] / 삽화 윤광자 화가

2022년 04월 26일(화) 12:36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남대문 얼굴을 달고 발행 된 조선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제일 먼저 구입한 사람은 배제학당의 헨리 아펜젤러 목사였다. 씰 발행을 허가해 주지 않아 요양원 이름으로 제작하여 먼저 보급해 처음 고안한 씰에는 ‘해주구세요양원’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씰은 몇 장 되지 않아 나중에 우표나 씰 수집가들 사이에서 매우 비싼 가격으로 거래 되었다고 한다. 인쇄 도중에 씰 발행을 허가 한다는 통지를 받고 ‘해주구세요양원’이라는 글씨를 삭제하였다.
위원회에서는 “결핵을 어떻게 예방 할 것인가?”라는 인쇄물을 만들어 씰과 함께 전국에 배포하였다. 조선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보다 구정에 씰을 더 많이 사용했다.
글을 쓸 줄 아는 입원환자들은 전국 각지의 친지들에게 크리스마스 씰을 알리는 편지를 썼는데 다음과 같은 답신 편지를 보내 온 사람도 있었다.

“이 훌륭한 운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원하며 이글을 씁니다. 저는 미국에 유학하여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결핵에 걸렸습니다. 프린스턴 근방에 있는 어느 결핵요양원에 가서 병을 고쳤습니다. 조선에서도 결핵을 치유할 요양소가 생긴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더 많은 씰을 보내주시면 팔아 드리겠습니다.”

첫 해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은 성공을 거두었다. 결핵퇴치 교육효과도 있었고 170달러 이익금을 냈다. 선교회에서는 해주 요양원을 비롯한 결핵퇴치에 힘쓰고 있는 6개의 병원에 나누어 보냈고 그 돈은 환자 진료비에 사용되었다. 조선의 결핵 씰 보급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들이 주관하는 운동이 되었다.
처음 3년은 정물을 도안했는데 민속놀이 같은 좀 더 활동적이고 색깔 있는 도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화가들이 자청해서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나섰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케이스, 젊은 조선화가 김기창 씨, 호주선교사 에즈먼드 뉴목사가 도안을 해 주어 카드와 씰로 제작되었다. 연날리기, 제기차기, 널뛰기, 그네뛰기, 팽이돌리기 등의 민속화가 도안되었다. 조선 땅에 결핵퇴치의 목적으로 이웃사랑의 정신이 펼쳐지고 해마다 크리스마스 씰은 방방곡곡에 널리 보급되었다.

요양원도 씰 캠패인에 힘입어 계속 발전하였다. 처음 8개의 침대로 시작했던 병실이 60여 명이 넘는 환자들을 수용하게 되었다. 요양원의 농장도 소규모로 현실화되었다. 전문성이 있는 북 장로교의 농업선교사 덱스터 루츠(Dexter N. Lutz) 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요양원 농장에서 토양분석, 농경지 이용, 산지개발, 과수재배, 낙농 등 현대 농업기술을 지도했다. 인근의 농부들도 희망하는 사람들은 이 강좌에 초청되어 함께 교육을 받게 하였다. 농사 이외에도 양계, 양잠, 양봉, 목공, 수공업에 대한 과학적인 교육이 필요해 졌다.
회복기에 있는 남녀 환자들이 건강이 허락하는 정도에 따라 하루에 몇 시간 일하고 임금을 받게 된다면 2년 후 완치되어 집에 돌아갈 때 필요한 영농자금을 마련해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건강을 회복하고 영농기술을 익혀 고향에 가서 선진 농업기술을 전파할 수 있으니 마을이 발전 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셔우드는 가슴이 뛰었다. YMCA에서 한국에 현대농업기술을 도입시킬 계획으로 페니에게 기술자를 요청했는데 클라크를 파견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셔우드는 YMCA와 미국의 페니에게 해주 구세요양원에 모범농장을 만들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YMCA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안해 왔다.
“당신이 충분한 땅을 구입해 시범 마을을 건립한다면 우리는 가축, 씨앗, 비료를 공급해 주겠소. 또한 두 사람의 전문가를 고용해서 우리 측에서 봉급을 지급하겠소.”
이미 3만 여 평의 땅을 확보해 농사를 짓고 있었고 인접한 곳에 있는 땅 주인이 12만 여 평의 땅을 더 팔려고 내놓아 모금운동을 하는 중이었다. 그 땅은 밭, 동산, 논으로 지형이 다양하여 회복기의 환자들이 자기 취향에 맞는 농업분야를 선택 할 수 있었다.
마침내 클라크가 도착했다. 그는 농장 설계와 건축을 도와주었다. 젖소, 염소, 토끼, 닭을 기를 축사를 짓고 농지도 선정되었다. 페니는 요양원 농장 계획이 잘 추진되자 큰 관심을 보였고 경제적인 지원까지 해 주었다.
클라크가 농장을 지도하고 모범마을은 선교사 루츠가 맡기로 했다. 이 두 전문가들의 활동으로 요양원 농장은 갱생센터, 교육실습장, 모범마을을 갖춘 현대식 규모 있는 농장으로 성장했다. 요양원에서 소비하고 남는 채소나 과일은 8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소래 해변의 가게에 팔기도 했다.

어느 날 심신이 연약한 환자들과 가족들이 모범마을에 예배당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지금까지 환자 대기실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크리스챤 환자와 직원의 수가 늘어나 모두 들어가지 못했다.
셔우드는 이런 사정을 사촌 그레이스 크레이 해스킨스 여사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안식년 휴가로 미국에 갔을 때 그녀는 코로라도 덴버에 있는 아름다운 저택에 셔우드 부부를 초대해 준 일이 있었다. 셔우드는 그 자리에서 해주 요양원에 교회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뿌린 씨앗이 싹이 트는 기쁜 소식이 왔다. 그레이스 크레이 해스킨스는 1만달러를 보내 주었다. 부유한 집안의 활동적인 그녀는 어머니 로제타를 항상 존경하고 사랑한다며 교회당 이름을 ‘로제타 교회’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편지도 보내왔다.
설계는 에드윈 캠벨이 해 주었다. 해주 근처의 해안에 많이 있는 둥근 돌을 사용하고 초록 산천과 어울릴 빨간 지붕으로 설계되었다.
몇 달 뒤 교회당이 완공 되었다. 이 건물은 주위환경과 잘 어울리는 조선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교회당이 되었고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어 절묘한 경관을 연출했다.

헌당식은 1933년 9월 2일에 있었다. 이 날 로제타는 조선에서 43년간 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은퇴하였다. 1890년 처녀의 몸으로 조선에 와서 43년간 의료선교를 하며 수많은 환자를 고치고 의료교육의 발판을 마련한 공이 인정되어 나라의 공식표창을 받았다.
로제타는 혼자 된 친정 오빠의 병환을 돌보기 위해 예정보다 2년을 앞당겨 은퇴하였다. 로제타의 얼굴에 지난 세월을 회고하는 감동의 물결이 일렁거렸고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는 눈물을 흘렸다.
새 교회는 환자와 직원들의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었다. ‘로제타교회’ 헌당식이 있던 날, 셔우드는 <서울 프레스>의 편집장을 지낸 야마가타가 보낸 한 통의 감동적인 편지를 받았다.

“당신의 어머님은 조선 여성들을 위해 정말로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 교회당이 아무리 아름답게 지어졌다 하더라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어머님이 평생 행하신 훌륭한 일에 비하면 백분의 일도 그 업적을 상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 닥터 로제타, 그 분이 교회입니다. 이제 그 분이 은퇴하신다니 조선의 여성들은 당신의 어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 매우 섭섭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어느 날, 김영순목사가 셔우드를 찾아왔다. 요양원에 혜순이라는 소녀가 정신적으로 극히 의기소침한 상태에 있고 밥도 잘 안 먹는데 희망을 갖게 해줄 방도가 없겠느냐고 물었다. 셔우드는 문득 미국에서 도착한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상자가 생각났다. 한 번 쓴 카드이지만 꼬마 환자들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모아 놓았었다. 그 중에서 백악관에서 온 카드를 들고 혜순이를 찾아갔다.
“혜순양, 이 크리스마스카드는 저 멀리 미국에서 온 것이예요. 아픈 사람들이 미국 대통령에게 보냈는데 대통령이 이것을 받은 후 친절하게 환자들에게 답신을 보낸 것이지요. 자, 봐요. 여기에 프랭클린 루주벨트라는 이름이 있죠?”
핏기 없는 혜순이 얼굴에 엷은 미소가 스쳐갔다.
“카드 한 장 가져도 되나요?”
“그럼요. 루주벨트 대통령도 혜순이 같은 병에 걸려 위중하셨지요. 하지만 대통령은 반드시 병을 이기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의사가 시키는 대로 했고 얼마 후 건강을 회복했어요. 그리고 훗날 대통령이 되었어요.”
희미하던 혜순이의 눈동자가 밝아지고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병을 이기려고 노력하면 선생님이 미국 대통령님께 편지를 써 주시겠어요?”
“물론이지요. 하지만 대통령이 너무 바빠서 직접 답장을 쓰지 못할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대신 편지를 써 보내게 하실지도 모르죠.”
그 날 저녁부터 혜순이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얼마 후 건강이 좋아져 걷기도 하고 앉아 있을 수도 있게 되었다. 대통령께 편지를 써 보낼 정도로 병이 회복되었다. 편지를 보내려 하는데 옆에서 웰리엄이 불쑥 말을 꺼냈다.
“루주벨트 대통령이 우표수집에 열광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조선 우표와 씰을 동봉해 보내면 어떨까요?”
웰리엄 말대로 조선 우표와 씰을 동봉해서 보냈다. 답장이 오리라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혜순이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있게 되길 기도했다.
얼마가 지났는데 백악관에서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 봉투의 소인은 1934년 6월 18일로 찍혀 있었다. 편지 속에 혜순이에 대한 위로의 글이 들어있을 것 같았다.
봉투를 여는 셔우드는 손이 떨렸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 혜순이에게 희망의 길이 열리는 편지 내용이었으면…….’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버스 무료 이용 속초까지 가능..

인구 감소·경제 침체 등 구조적..

외국인 계절근로자 활성화 상생협..

고성군 인구 3년 만에 27,0..

하천·계곡 불법행위 대대적 정비..

고성군수 선거 함명준·박효동 맞..

2026년 ‘고성 DMZ 평화의..

토성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전..

금강농협 다문화가정 위한 장학금..

2026년도 정부 보급종 콩 개..

최신뉴스

체류형 관광 기반 구축·기업..  

죽왕면과 고성군의 실질적 변..  

지역구 고성군의원선거 총 1..  

함명준 군수 예비후보 선거사..  

김진 군의원 예비후보 선거사..  

강원선관위 장애인단체 업무협..  

농가에 외국인 계절근로자 1..  

금강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농관원 6월 30일까지 하계..  

치매, 함께 보듬어야 할 이..  

자원봉사센터 취약계층 장애인..  

고성소방서 현장대응능력 강화..  

토성면 의약분업 예외지역 취..  

기하의 언어로 풀어낸 감정의..  

‘2026 콩닥콩닥 탐사단’..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daum.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