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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44]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44] / 삽화 윤광자 화가

2022년 04월 26일(화) 13:18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혜순 양, 깜짝 놀랄 일이 있어요! 미국에서 편지가 왔어요!”
“어머나, 미국 대통령한테서 온 것인가요?”
“맞아요! 여기 대통령 친필서명까지 있어요. 프랭클린 루주벨트(Franklin D. Roosevelt)라고 써 있죠?”
“어서 읽어주세요! 의사 선생님! ”
혜순이는 상기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친애하는 닥터 홀, 보내 주신 서신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는 특별히 당신이 이야기한 소녀 혜순 양에 대해 관심을 표합니다. 그 소녀가 완쾌되길 간절히 빕니다. 그리고 당신 어린 아들 월리엄에게 우표를 보내주어 깊이 감사한다고 말해 주십시오. 그 우표들이 나의 수집에 보탬이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프랭클린 D. 루주벨트.>”

혜순이는 춤을 치며 기뻐했다.
“저는 대통령님께서 답장을 해 주실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대통령님이 보내신 편지가 내 병이 낫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 기뻐하시겠죠?”
그날 이후 혜순이의 건강은 몰라보게 좋아졌고 얼마 후 건강을 되찾은 동생을 오빠가 데리러 왔다. 혜순이는 자랑스럽게 백안관 미국대통령이 보낸 편지를 보여 주었다. 오빠도 놀라며 달라진 혜순이의 얼굴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혜순이와 루주벨트 대통령의 이야기가 전해지자 크리스마스씰에 대한 호응도가 눈에 띠게 좋아졌다. 이제는 결핵 환자들도 더 이상 자기 병을 감추지 않고 증세가 초기일 때 병원을 찾아와 진료를 받아 결핵이 전염도 막도 치료하기가 전보다 휠씬 수월해 졌다.
가을에 접어들어 병원이 조금 한산해진 어느 날 교회당 김영순 목사가 찾아 왔다. 돌아오는 휴일에 금강산구경을 가자고 했다. 모범농장도 안정 되어가고, 마침 추석 명절기간이라 병원이 조금 한산한 시기였다. 매리언은 몇 년 전 북경에서 온 친구들과 금강산을 가보았는데 꼭 한번 가 볼만한 산이라며 자신은 아이들을 돌봐야하니 두 분이 다녀오라고 했다.
셔우드는 김 목사와 서울을 경유해 원산 가는 기차를 탔다. 원산에서 남쪽으로 세 번째 정거장인 ‘안변역’에 내려 작은 버스를 갈아타고 금강산입구 등산코스 출발지점으로 갔다.
마을 촌장이 입구에서 새벽엔 추우니 이불을 사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얇은 명주이불을 사서 배낭에 넣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가지 않아 아주 생소한 외딴지역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복식이나 머리가 옛날의 조선식 그대로였다. 산마루 이름 중 ‘단발령’이라는 곳이 있었다. 승려가 되기 위해 출가하여 금강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 고개에서 삭발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 속으로 들어갈수록 지형은 온통 암석이었으며 올라갈수록 더 험해졌다. 오렌지, 연노랑, 빨강색 단풍이 계곡과 온산을 덮고 있었다.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얼마동안 산을 오르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어디서 밤을 새워야할지 알 수 없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숙소를 물었더니 첫날은 ‘장안사’에서 보내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장안사 주지는 쾌활하고 친절했다.
부르튼 발을 보고 동자스님에게 발 씻는 그릇에 물을 담아 약초를 넣어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 물에 발을 담그자 아픈 발이 씻은 듯이 나았다. 주지스님은 불교의 진리에 대하여 설명했고 셔우드는 경청했다.
“불교는 한 때 조선에서 매우 세력이 컸었지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신도들이 속세의 권력에 미혹되어 정치에 개입했답니다. 그것이 타락의 시작이었지요. 불교는 도시에서 쫓겨 났고 산 속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천국을 말하지만 우리는 ‘열반’(Nirvana)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모든 욕망이나 고뇌가 사라진, 인간이 도달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종교적 인식세계를 말합니다.”
종교를 논하는 주지승 눈에는 광채가 서려 있었다. 숙박비를 내려하자 그는 사양하며 꼭 내고 싶으면 절에 헌금하라고 하여 그렇게 했다.
우리가 신은 가죽신은 등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짚신을 주었다. 볏짚으로 만든 것인데 개울을 건너가거나 돌이 많은 오솔길을 건너는 데 휠씬 편리했다. 닳아서 못 신게 되면 암자에서 사서신고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는데 경치는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셀 수 없는 수만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다이아몬드(금강)산이라 이름을 붙일만하였다. 산봉우리의 결정 같은 암석들이 햇빛을 받아 진짜 다이아몬드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금강산이란 이름은 불교의 경전 ‘금강경’(金剛經)에서 이름을 땄다는 설도 있다. 이름의 유래야 어찌 되었든 하늘까지 닿을 듯한 장엄한 경관은 ‘금강’이라는 이름을 실감나게 하였다.
구룡폭포에 가까이 가자 경치는 더욱 가경을 이루었다. 아홉 개의 폭포들은 깊은 못에 서 흰 거품과 물보라를 뿌렸다. 마치 용들이 날아오르는 듯 했다. 힘들어 오르지 않을까하다가 그 용들이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 한 걸음씩 힘들고 가파른 바윗길을 올랐다.
마지막 아홉째 폭포에 오르는 순간 주위의 경치에 놀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안개가 산 주변을 보일 듯 말 듯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였다. 동양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엄청난 근원이 바로 여기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천국에서 다시 하계로 내려와 해주로 돌아왔다. 보배중의 보배인 금강산을 볼 수 있었던 은혜에 감사하였다.

어느 날, 아이들을 돌보는 최 씨 아줌마가 마치 비밀을 털어놓듯 주저하며 셔우드에게 이야기 했다.
“선생님이 병원에 나가고 안계시면 사모님이 힘들어 하시며 자주 의자에 앉아 쉬곤 하셔요!”
“아, 알고 있어요. 셋째 아이를 임신했어요.”
최 씨 아줌마는 기뻐하며 다행이라는 듯 얼굴을 활짝 폈다.
얼마 후 아내를 진찰하는데 매리언은 남편의 얼굴이 이상해지는 것을 보고 재빨리 물었다.
“왜 그래요? 이상이 있나요?”
“두 군데서 심장 소리가 들려와요. 아, 쌍동이를 임신했어요!”
매리언은 어쩐지 태동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지고 이번은 전에 두 아이보다 많이 힘들다고 하였다. 위로 두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계속 환자진료를 보았는데 이번에는 힘들어하였고 심장의 압박감이 심해져서 위험할 정도였다.
서울이나 평양의 큰 병원에 가서 출산하자고 해도 매리언은 긴 여행이 오히려 좋지 않다고 했다. 셔우드가 오래 전 필라델피아 스테트슨 병원에 근무할 때 세 쌍둥이를 거뜬하게 받아낸 경험이 있으니 남편한테 해산하겠다고 했다.
1934년 9월 12일 매리언은 쌍둥이를 낳았다. 시작은 모든 게 순조로웠다. 첫째 아이는 여자였는데 아이가 건강한 울음을 터뜨리자 안심했다. 그런데 한참 후 두 번째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아이가 울지 않았고 산모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간호사가 절망적인 말을 했다.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아요!”
닥터 김이 달려와 인공호흡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산고로 지친 산모에게 사산 소식을 전한다는 게 얼마나 가혹한 일이던지…….
태아일 때 프랭크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던 아기는 세상의 빛 한번 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간호사는 죽은 프랭크를 목욕시키고 세례 때 입히려고 준비해 둔 수놓은 옷을 입혔다. 아기는 마치 살아서 잠을 자는 듯 했다.
요양 병원의 목수가 조그만 관을 짰고 간호사들은 명주 천으로 아기를 감쌌다. 셔우드는 아기를 양화진의 아버지 닥터 홀과 누이동생 에디스 옆에 묻어주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프랭크는 할아버지와 고모 곁으로 갔다.
비슷한 슬픈 경험을 한 노블 목사가 따뜻한 위로와 동정심으로 장례예배를 드려주었다. 매리언은 프랭크의 사산으로 인한 충격으로 몸을 회복하지 못했다. 딸 필리스가 유아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언더우드 목사가 서울 자신의 집에서 세례를 주겠다고 초대하였다. 세례식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매리언에게 예쁜 딸을 낳았다고 축하했다. 필리스의 유아세례를 겸한 서울 방문으로 매리언은 비로소 예전의 명랑함을 되찾았다.

하루는 아이들과 집 뒤의 언덕을 산책하고 있었다. 묘지 사이에서 일본 군인들이 포복훈련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많이 놀랐고 군인들도 놀란 모양이다.
당시 선교사들 사이에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일본이 아시아와 중국북방을 지배하려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그 일들은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에도 지장을 준다는 소식이었다. 해주에서도 일본군인의 군사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선교사들이 어디를 가든 거취는 낱낱이 보고되었다. 어떤 여행계획이든 일본 형사들에게 조사를 받아야 했다. 선교사들은 처음에는 일본군의 야욕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몇 개월 지나 그들의 야욕은 낱낱이 드러났다.
중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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