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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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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45] / 삽화 윤광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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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10일(화) 16:20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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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1937년 7월 7일, 북경 외곽지대서 일본군이 중국군을 공격했다.
만주를 통과하는 지인들이 너무나 끔찍한 장면을 보았다고 소식을 전했다. 일본군들이 마적의 머리를 잘라 창끝에 꽂아 철로 변에 진열해 놓은 것을 보고 그 잔인함에 몸서리를 쳤다고 하였다. 일본군이 탄 열차를 습격하면 이런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경고였는데도 마적들은 그 후에도 철도 습격을 자주 했다고 한다.
지중해에 수뢰가 설치되었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일본 군부의 세력이 매일매일 무겁게 압박해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최근엔 일본 군부가 전쟁을 준비하려고 원산해변에 군항을 설치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 소문은 곧 사실로 확인 되었다.
1937년 가을,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는 셔우드를 놀라게 했다.
“원산 해변을 일반인의 접근 금지구역으로 포고한다!”
‘그러면 그 곳에 있는 모든 가옥들과 별장을 철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일본 군부는 선교사들에게는 관용을 베푼다며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
“원산 해변에서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160킬로미터 정도 내려가면 아주 아름다운 장소가 있는데 그곳에 선교사들의 휴식처를 제공해 주겠소!”
그 곳은 행정구역이 강원도 고성으로 금강산과 더 가까운 곳이었다. 정면은 바다, 다른 한 쪽은 호수, 남쪽은 야산과 비탈이 있는 구릉이었다. 구릉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호수가 내려다보이고 동쪽은 바다와 닿는 암벽이다. 바다, 호수, 산이 어우러진 정말 경치가 아름다운 장소였다.
일본인들은 이곳을 ‘가신호’라고 불렀다. 조선말로는 ‘화진포’라고 한다. 호수의 길이는 5킬로미터 정도인데 모양이 클로버 잎같이 생겼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일본 군부는 원산 해변에 있던 선교사들의 별장에 대해 섭섭치 않는 보상금을 주거나, 아니면 집을 뜯어 화진포의 새 장소에 옮겨주겠다고 제안했다. 선교사들은 대부분 보상금 보다는 후자를 택했다. 새 장소를 제공해 주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아쉽기도 하고 착찹한 마음이었다. 휴양지 이전 일이 진행되고 원산의 마지막 별장을 헐어 새 휴양지로 옮긴 후, 일본군은 원산 해변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나무 한 그루도 남아있지 않게 했다.
셔우드와 매리언은 새 휴양지 이전 실행위원으로 임명받고, 즉시 착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실행위원의 임무는 별장을 다시 짓기 위해 대지의 경계를 정하고 번호를 매기는 일이었다. 대지의 구획이 결정되면 번호를 써 놓은 종이를 제비 뽑아 땅주인을 정하기로 했다.
남달리 사진을 잘 찍는 매리언은 사진 찍는 공식사진사 일도 겸하게 되었다. 셔우드와 매리언은 촬영기를 준비해 화진포로 갔다. 아직 새 휴양지에 못 와 본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내주려고 주변을 촬영하느라 몹시 바빴다.
새 휴양지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 모래 바닥에 파이프만 묻으면 깨끗한 음료수를 쉽게 얻을 수 있었고 파도가 심한 날이면 뒤쪽의 화진포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높은 지대의 원산 별장에서 즐겼던 그 파도치는 해변을 잊을 수는 없었다.
화진포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바다 쪽을 향한 암벽 위에 대지가 될 만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평지 보다 높은 암벽 위에 별장을 짓기로 했다. 암벽으로 올라가는 소나무 숲 사이에 오솔길을 지그재그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일단 그 위에 올라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바다와 호수와 방풍림으로 조성한 푸른 소나무 숲이 반짝이는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셔우드와 매리언은 새 장소에 지을 작은 별장 모습을 종이 위에 그리며 행복했다.
1918년~1919년 사이에 일어났던 러시아 혁명 당시, 조선으로 피신 온 백인계 러시아인과 히틀러의 공포정치를 피해 조선으로 피난 온 독일인들이 있었다. 선교사들은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는데 베버(Herr Weber)씨는 망명 독일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건축학을 전공한 건축가였다.
어느 날, 베버 씨와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지나가는 말로 재미삼아 바닷가 암벽에 별장을 지으려고 구상 중이라고 하였더니 갑자기 베버 씨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닥터 홀, 제가 설계하고 싶으니 그 기회를 저에게 주시겠어요? 독일에서도 그와 같은 장소에 작은 성을 몇 채 지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셔우드는 그의 제안이 속으로 무척 반가웠다. 그 무렵 장티푸스 전염병이 돌고 있어서 병원을 오래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건축경비가 문제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설계는 무료로 해드리고 재료값만 주십시오. 건축과정의 일도 제가 감독하고 인부들과 일도 하겠습니다. 그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생활비만 조금 주시면 됩니다.”
그는 극히 검소하게 살고 있었다. 망명 중이긴 해도 돈보다는 자신의 건축 재능을 예술적으로 발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보였다. 셔우드는 베버를 데리고 가서 별장을 짓기로 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암벽의 대지를 보여주었다. 원산에서 뜯어온 별장을 다시 맞추는 조선인 건축업자도 소개해 주었다. 베버는 건물이 다 지어질 때까지 선금을 받지 않고 최소한의 경비를 줄이는 선에서 건축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바쁘면 현장에 오지 않아도 된다며 자신을 믿으라고 했다.
요양원 공사를 할 때는 입찰을 통해 합법적인 계약을 했지만 이번 경우는 작은 공사이고 베버 씨와 조선 업자가 믿을 만한 분들이라 그들의 재량에 맡기기로 했다.
“원산의 별장처럼 작고 아담하며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들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해주로 왔다. 공사 중에 한번 쯤 화진포에 다녀왔어야 했는데 병원일이 바빠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베버 씨한테서 연락이 왔다. 별장이 다 완성 되었으니 보러 오라는 소식이었다.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강원도 고성의 화진포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한 셔우드는 적잖이 놀랐다. 입을 벌린 채 벙어리처럼 말을 한마디도 못했다.
별장은 셔우드가 생각한 것처럼 암벽 위의 작은 집이 아니라 그야말로 크고 아름다운 성이었다. 회색 돌로 지은 성은 푸른 소나무 숲과 잘 어울렸다. 마치 라인강 가의 작은 성을 화진포 암벽 위에 재현해 놓은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별장이 맘에 드시는지요? 최선을 다해 지었습니다.”
베버 씨와 조선인 건축업자는 자신들의 건축창작물에 대해 만족해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생각보다 너무 크게 지었다 하면 상처를 줄 것 같아서 셔우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훌륭한 건축물이라고 칭찬하였다.
성 지붕을 평평하게 하여 그 위에 올라 사방의 절경을 감상하게 하였다. 이곳에서 보름 날 달빛을 받으며 가족파티를 연다면 환상적일 것 같았다. 둥글고 큰 탑에는 들창이 달려 있었는데 베버 씨는 특히 이 부분의 설계를 자랑스러워했다. 탑은 바로 암벽 옆에 세워져 있어서 바다의 절경이 눈앞에 들어 왔다.
“부인께서 손님을 초대해 파티를 열 때는 이 넓은 리빙 룸을 쓰시면 됩니다.”
베버 씨는 한쪽에는 들창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큰 벽난로가 있는 방으로 셔우드를 안내하며 말했다. 벽난로 속에는 동굴 속에서 채취해온 수정 암석이 벽에 가득 붙어있었다. 그는 벽난로가 얼마나 불을 잘 빨아들이는지 보여 주려고 불을 붙였다. 춤추는 듯한 블꽃이 벽난로에 붙어 있는 수정에 현란하게 반사되었다.
베버 씨는 자신의 건축 작품에 스스로 감탄하고 있었다. 셔우드도 두 사람의 뛰어난 건축 솜씨에 탄복했다. 베버 씨와 조선인 건축업자가 자부심과 기쁨에 차 있을 때 셔우드는 건축비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이 어두웠다.
‘저들이 내게 청구할 엄청난 건축비를 도대체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따지고 보면 명확하게 공사비를 계약서에 제시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기가 질려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다가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말했다.
“공사비가 모두 얼마입니까?”
그들이 청구한 액수는 생각보다 너무나 적었다. 적은 액수이긴 해도 근검절약하며 살아가는 선교사의 경제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훌륭한 별장을 지어주어 감사하다고 대답하고 그들에게 건축비를 마련해 올 시간을 좀 달라고 한 뒤 서둘러 별장을 떠났다.
해주로 가려다가 갑자기 소년시절의 친구였던 수잔 로(Susan Rou)의 얼굴이 떠올라 평양으로 차를 돌렸다. 평양에 도착하자 수잔은 반색을 하며 반가워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에게 전보를 치려했는데 이렇게 오시다니요! 이제 그 일을 결정할 수 있겠네요.”
“아니, 무슨 일인데요?”
“평양에 당신 소유로 된 작은 땅이 있잖아요. 내 동생 루시가 광산회사에서 광산물을 보관하는 땅이 필요한데 그 땅을 사고 싶어 했어요. 값만 적당하면 즉시 현금지불이 가능하대요,”
“아, 이렇게 해결해 주실 수가……. ”
그 땅은 아주 오래 전, 아버지 닥터 홀이 소천하자 생명보험금이 나온 것을 어머니가 셔우드의 교육비로 쓰려고 싼 가격에 구입해 놓은 것이었다. 땅을 팔아 화진포의 성 건축비로 베버 씨에게 드릴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궁지에서 건져 주심에 또 감사드렸다. 셔우드 가족들은 주말에 화진포 성에서 예배도 드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훗날 이 곳에서 일본 헌병에게 잡혀가는 힘든 일을 겪었고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 군부는 ‘화진포의 성 ’마저 빼앗아 버렸다.
남은 것은 사진 몇 장과 매리언이 해변에서 성을 바라보며 그린 유화 한 점뿐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화진포의 성에서 간직한 추억들은 빼앗아 갈 수 없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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