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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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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47] / 삽화 윤광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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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7일(금) 15:58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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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나는 스파이가 아닙니다. 아무리 조사를 해도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 건방진 대답이 어디 있어? 따귀를 맞아야겠구먼.”
일본 헌병은 앞에 있는 서류 뭉치를 흔들며 손으로 책상을 쳤다.
“영국 스파이, 캐럴 신부를 잘 알고 있지? 너의 별장에서 얼마 전 체포 했단 말이야. 그 스파이와 함께 있었잖아. 그건 바로 네가 스파이라는 걸 말해 주는 명확한 증거야.”
셔우드는 화가 나서 다소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캐럴 신부는 친구이고 휴가를 함께 갔을 뿐이요. 나는 스파이와 접촉하지 않았소!”
헌병은 험상궂은 얼굴로 셔우드를 쏘아 보더니 말했다.
“우린 자백을 받아내는 여러 방법이 있단 말이야. 미리 말하지만 고생하지 않으려면 지금 자백하는 게 좋아. 우리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 당신 아내가 화진포 해안선을 촬영했어. 20미터 높이 이상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어있는데도 말이야. 해주의 해안선도 촬영했어.”
“예 맞습니다! 화진포는 해안 담당관 요청으로 촬영했습니다. 육군담당관 참석 아래 촬영한 것입니다. 해주의 경우는 전쟁이 나기 전에 찍은 것이고 그때는 사진 찍는 데 제한이 없었습니다.”
셔우드의 조리 있는 답변에 그가 할 말을 잃었는지 갑자기 의자를 박차고 나갔다. 혼자 있는 시간에 불안하고 초조하여 가지고 온 성경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시 후 다른 장교가 나타났다. 그는 태도를 부드럽게 바꾸어 음식을 주문해 주겠으며 셔우드만 특별히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나는 음식 대접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소. 내가 원해서 여기에 온 손님도 아니지요.”
그는 못 들은 척하고 음식을 주문했다. 그때 비로소 세실 쿠퍼 감독도 갇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식배달 소년이 셔우드와 세실 쿠퍼 감독의 음식을 바꾸어 가져 왔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초하려고 들어온 장교는 셔우드를 협박하지는 않았다. 그는 부드러웠고 주로 경리문제를 물었다.
“어느 정부에서 당신들에게 봉급을 지불합니까?”
“나는 정부로부터 봉급을 받지 않습니다. 감리교 선교위원회서 받습니다.”
그가 이상하게 생각 한 점은 ‘어째서 의사부부가 그토록 적은 봉급을 받으며 조선에서 일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스파이 자금이라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셔우드는 신앙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아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군인이지요. 당신이 받는 봉급이 적든 많든 당신네 왕에게 충성합니다. 전쟁터에서 생명을 잃는 일이 있다 해도 말입니다.”
그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였다.
“우리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지요.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께 충성하지요. 봉급이 적어도 또는 선교지에서 생명을 잃게 되는 일이 있다 해도 말입니다.”
그는 이해가 되었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당신은 닥터 더글러스 에비슨을 알지요?”
“네 압니다. 우리는 토론토 의과대학을 함께 졸업한 친구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닥터 에비슨이 왜 북경여행을 했는지 알겠군요.”
셔우드는 그가 함정을 만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딱 잘라 대답했다.
“같은 의사이긴 하지만 그의 개인 활동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내가 관여할 바도 아닙니다.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시지 그랬습니까?”
그는 첫 번째 심문자보다는 지성인이었고 셔우드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셔우드는 그에게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을 했다.
“우리 가족에게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전보로 알려 줄 수 있겠습니까?”
놀랍게도 그는 쉽게 승낙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전보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어 초조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전보를 보냈다. 일본어로 전보가 와서 매리언은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석방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항상 감시병이 곁에 있어서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했다. 심문실에서 감방으로 보내졌다. 어둡긴 해도 기도할 수 있고 성경도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불안하게 감방에서 첫 번째 밤을 보냈다.
다음날 오후였다. 투박한 발자국소리가 감방 앞에서 멈추었다. 감방문이 열리고 장교 한 사람이 부하 한 명을 데리고 들어 왔다.
“닥터 홀, 당신을 석방하라는 명령을 받았소. 이곳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는 조건이요.”
“아내에게는 말해도 됩니까?”
“아내에게는 말해도 무방할 거요. 그러나 아이들이나 직원들 그 누구도 안 됩니다. 만일 발설했다는 사실이 우리 귀에 들리게 되면, 당신은 즉시 체포되어 이곳으로 다시 오게 되고 그 죄목만으로도 크게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요.”
그 장교는 부하에게 셔우드를 데리고 역으로 가라고 말했다. 화진포로 가는 밤 열차를 바로 타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지켜보라고 넌지시 말했다. 돌아오는 열차 속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다시 가족이 있는 따뜻한 화진포의 성으로 돌아왔다.
매리언은 죽을 사람이 돌아온 것처럼 기뻐했다. 여자의 영감으로 뭔가 어려운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 모양이었다.
헌병대에서 매리언에게 작성해 보내라고 질문서를 주었다. 이 질문서에 답을 써서 곧 보냈고 더 소식이 없어서 무사히 넘어간 것으로 알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뜻밖에도 매리언을 소환한다는 전보가 헌병대에서 왔다. 이 같은 일이 없길 바랐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매리언은 심문에 대답할 여러 가지 답변을 준비하여 서울로 떠났다. 매리언은 말을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재주가 있기에 대답을 잘 할 것이라 믿으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매리언은 그들의 유도신문에 말려 들어가지 않았고 결코 냉정을 잃지 않았다. 온종일 심문을 받은 매리언을 저녁 무렵 내보내 주었다.
매리언은 화진포 행 밤 기차를 타고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못 돌아오면 어쩌나 하여 눈물이 났다고 하였다.
화진포 성의 불빛, 밤하늘의 별빛, 부드럽게 찰싹이는 파도소리, 모두가 정겨웠고 따뜻한 어머니 품속 같았다.
화진포에서 다시 해주로 돌아온 다음 날이었다.
필리스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달려왔다.
“아빠, 큰 칼 찬 사람들이 언덕으로 올라오고 있어요!”
밖을 내다보니 긴 칼을 찬 다섯 명의 경찰들이 집을 향해 오고 있었다. 셔우드는 얼른 해주 해변의 사진을 스토브에 태워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없앴다.
“세 가지 물건을 찾겠소. 20미터 이상 높이에서 해안선을 찍은 것, 영사필름, 다른 나라 정부와 관련된 메모나 노트, 당신에게 지불된 돈의 출처를 말해주는 통장이나 은행 거래장이요.”
그들은 집안을 샅샅이 뒤져서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는 것을 다 찾아냈다. 매리언이 취미로 찍은 풍경 사진, 대학에서 인턴교육을 받을 때 기록한 의료 메모장, 호놀롤루 교인들이 보내준 기부금 입금통장도 압수했다. 결핵요양원 운영비에 사용하라고 교인들이 보내 준 순수한 기부금이라고 해도 하와이는 독립운동가가 많은데 그들과의 관련성을 조사한다는 것이었다.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을 챙겨 떠난 자리는 회오리바람이 강타한 것 같았다. 그날 오후 사사키로부터 연락이 왔다.
“가택수사는 제가 명령한 것입니다. 곧 육군에서 가택수사를 한다고 해서 증거가 될 만한 것은 미리 찾아냈습니다. 이 문제가 지나갈 때까지 극비에 붙여두겠습니다.”
그제서야 경찰이 가택수사를 하며 “우리는 당신을 도우러 왔소.”하던 말이 생각났다.
셔우드는 사사키의 우정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에 다시 일본 육군에게 가택수사를 받았고 셔우드 부부는 재판을 받게 되었다. 두 번이나 검사에게 불려갔고 일주일이 지나자 법정에 출두하라는 호출장이 왔다.
변호사를 쓰기로 했다. 40대 후반의 정평이 난 조선인 변호사였다. 그는 정말 멋지게 변호했다.
“닥터 셔우드 홀의 부친 제임스 닥터 홀은 청일전쟁 후 일본군을 치료하다가 돌아가셨고, 어머니 닥터 로제타도 수많은 병원과 맹아학교, 농아학교를 설립하고 의학교를 창립한 분입니다. 매리언은 만삭임에도 추운 겨울밤 외진 산골 마을에 왕진 가서 환자를 수술하며 생명을 살렸고, 셔우드는 결핵퇴치 의사로 이국땅에서 죽음을 각오하며 2대에 걸쳐 수많은 생명을 살린 찾아볼 수 없는 의사선교사 가정인데, 이들이 어찌 스파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박변호사의 명 변호에도 셔우드 부부는 징역 3개월이나 1천 달러의 벌금형을 선택하라는 억울한 언도를 받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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