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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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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48-마지막회] / 삽화 윤광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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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23일(목) 13:09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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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재판이 완전한 결말을 보지 못해 셔우드는 해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선교회 대표 영국총영사 핍스와 크리스마스씰 보급으로 도움을 준 일본인 오다와 앞으로의 거처를 상의했다.
“군부에 의한 엉터리 표적 재판인데 더 이상 법정에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상소하면 사태만 악화시킬 뿐입니다.”
오다의 말에 모두 동의했고 핍스가 결론을 내렸다.
“가능한 한 빨리 벌금을 물고 조속히 출국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일본 군부는 외국인을 조직적으로 괴롭혀 그들이 한국을 떠나도록 만드는 정책을 펴고 있었다. 11월 중순 219명의 미국인 선교사들이 조선을 떠났다. 닥터 쿤즈를 비롯한 선교사 몇 명이 잔인한 ‘물 먹이기’ 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강제로 물을 위 속으로 부어 넣는 것인데 인간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는 고문이다.
셔우드는 번민에 잠겼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 부모님의 대를 이어 55년간 의료선교사로 섬긴 조선, 눈물겨운 헌신이 이제 많은 생명을 살리는 좋은 결실로 뿌리내리는 조선을 정말 떠나야 하나?’ 매리언은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잠시 떠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오랫동안 가족같이 사랑하며 치료하던 환자들을 두고 갈 생각을 하니 몹시 괴로웠다. 깊은 생각을 하던 셔우드는 매리언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떠나기로 결단을 내렸다.
가구나 석탄, 옷, 담요까지 돈이 될 만한 물건은 모두 팔았다. 교인들은 선교사들이 떠나는 것을 너무나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교인들이 많았다. 몇 사람이 논을 팔아 벌금 내는 것을 돕겠다고 했다. 고마웠지만 벌금은 자신들이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전시라 생활용품을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었고 모자라는 돈은 친구와 친지들에게서 빌렸다.
드디어 벌금액 ‘일천 달러’가 모였다. 검사실로 가서 자유를 찾기 위해 ‘몸값’을 가지고 왔다고 하자 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이 그 많은 돈을 가져오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소. 오늘 아침 당신이 들어갈 감방을 청소했소. 쥐가 많아 쥐덫을 갖다 놓고 특별히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갖다 놓고 준비를 잘 해 놓았는데 쓸모없게 됐군요. 여하튼 당신이 우리의 ‘특별 손님’이 되지 않아 기쁩니다.”
“나도 당신들의 그런 친절을 받지 않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셔우드는 검사에게 뼈 있는 대답을 하고 얼른 돌아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매리언과 아이들을 얼싸안았다. 이제 자유를 찾았다고 하자 매리언은 떠날 짐을 싸도 좋으냐고 물었다. 셔우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국행 선편을 주선해 달라고 서울에 있는 친구 데이비스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부치러 가려고 하는데 전보가 왔다. 놀란 가슴에 또 안 좋은 소식이 온 건 아닐까 하여 전보 봉투를 열수가 없었다.
“아빠, 어서 읽어보세요! 영어 글씨가 써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재촉해서 봉투를 여니 뉴욕의 선교 위원회에서 온 전보였다.
“인도 아지메르(Ajmer)의 결핵담당 의사로 즉시 전근할 수 있는지 답신 요망.”
가족회의를 했다. 13살 된 월리암과 8살인 조도 신중하게 의견을 말했다. 평생을 선교사 헌신하기로 했는데 조선에서 선교의 길은 닫혔지만 하나님이 새 길을 열어주셨다 생각하고 인도에 의료선교사로 가기로 마음을 모았다. 선교위원회와 데이비스에게 빠른 시일 내에 인도로 가는 선편을 예약해 달라고 전보를 보냈다.
셔우드는 요양원이 잘 운영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호진재단’이라는 요양원을 후원할 재단을 설립했다. 요양원의 땅, 건물, 병원 등은 결핵을 치료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책임지기로 하고 모든 행정은 도지사가 주관하는 이사회에서 운영하기로 했다. 난관이 있었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한 도지사와 간부들의 선처로 모든 절차를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해주에서 80킬로 떨어진 송도의 남감리교 학교에서 셔우드가 교장으로 있는 ‘의창학교’와 합류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 왔다. 학교를 돌아보고 와서 두 학교를 합해서 기독교 학교로 맥을 이어가도록 이사회에 의견을 보냈다.
매리언은 수소문하여 자신의 후임으로 성실한 조선인 여의사를 찾아냈다. 아름다운 ‘화진포의 성’ 별장은 병원 직원들과 지인들의 휴양지로 쓰도록 했다.
모든 일들이 다 정리되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소박한 가구들, 소중한 물건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남아있는 것은 이웃에게 나눠 주라 하고 간단한 생활필수품만 들고 떠나기로 했다.
출국 전날은 바쁘고 마음이 힘들었지만 병원과, 학교, 요양원에 헌신적인 좋은 이사회 멤버들이 있기에 위로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해주를 떠날 수 있었다. 떠나기 전에 작별 인사를 하려고 검찰청에 들렸는데 매리언은 셔우드가 또 잡혀간 줄 알고 울다가 셔우드가 무사히 집에 오자 와락 끌어안았다. 인도로 가는 선편 자리가 없어 일본 고베를 경유해 가기로 했다.
공식적인 환송회는 요양원의 ‘로제타예배당’에서 있었다. 김영순 목사는 사태가 호전되면 꼭 다시 돌아오라고 부탁했다. 송사 끝부분에서 김목사는 울음을 터뜨렸고 셔우드도 답사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해주를 떠나 서울로 왔다. 쓸쓸해진 서울의 거리를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복 입은 경찰관이 나타났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혹시 보안지역에 잘못 들어왔나?’
불안한 눈빛으로 경찰관을 바라보니 그는 웃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동안 당신을 미행했었는데 당신은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규칙을 잘 지켰으므로 압수했던 영사기 필름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나와 같이 경찰서로 가면 돌려드리겠습니다.”
셔우드는 또 자신을 가두려는 함정이 아닐까 두려웠지만 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그는 친절하게 압수한 필름을 주었다.
“법정에서 당신이 풀려났을 때 육군 담당관들은 펄펄 뛰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달라요. 당신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도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생각이 달라진 것이지요. 우리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을 계획하고 인도도 포함될 것입니다. 인도로 진주할 때 당신이 영접위원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고 당신한테 진료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셔우드는 씁쓸해진 마음으로 서울을 떠났다. 부산에 도착해보니 일본행 연락선이 떠나려면 시간이 남아있었다. 1926년 4월 신혼부부로 부산에 도착하여 환영을 받던 벚꽃이 만발했던 공원으로 세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11월의 공원은 쓸쓸했다. 그때의 찬란한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와 필리스는 즐겁게 뛰어놀았으나 철이 든 월리엄은 아빠 엄마 곁에 앉았다.
셔우드와 매리언의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고요한 아침의 땅’ 조선에서 의료선교사로서 꿈을 향해 달려온 지 24년, 파란만장했지만 언제나 감격의 연속이었다. 아버지 닥터 월리엄 홀이 전쟁 부상병을 치료하다가 전염병에 걸려 34살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셨고, 어머니가 닥터 로제타 선교사가 의료선교를 하며 의과 대학을 세우고 많은 헌신을 한 조선, 자신이 태어났고 부모님과 여동생 엘리스, 넷째 아이가 양화진에 잠들어 있다. 그 모두를 뒤로하고 조선을 떠나려 하니 가슴이 아팠다. 이제 새로운 나라 인도에서 선교사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그 곳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줄 믿으며 눈물을 흘리던 셔우드 내외는 기도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 아이들을 불렀다.
셔우드는 주머니에서 아름답게 수놓은 조선국기, 태극기를 꺼냈다. 해주에서 조선 친구들이 기념품으로 준 것이다. 태극기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가족들은 태극기 주위에 모여서 “만세!”를 외쳤다.
셔우드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종이에는 루이스 해스킨스(Mlnnie L. Haskins)의 시 “새해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시가 적혀있었다. 셔우드가 시를 선창하고 가족들은 따라 읊었다.
나는 새해의 문을 지키고 선 사내에게 말했다 / 내게 등불을 주시오 // 그러면 내가 모르는 길도 안전하게 갈 수 있으리다/ 사내가 말했다 // 어둠 속으로 들어가시오/ 그리고 하나님 손을 잡으시오 // 등불보다 그 편이 나을 것이요 // 아는 길을 걷는 것보다 그 편이 안전하오.
조촐한 작별 행사를 마치고 가족들은 배를 타고 조선을 떠났다.
어두워져 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품속같이 따뜻한 그 바닷가, 맑은 모래밭과 ‘화진포 성’ 불빛이 그리워졌다. 물살을 거스르며 나가는 뱃전에서 셔우드는 눈물을 흘리며 북쪽을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나의 고향, 그리운 조선이여, 안녕!”
<끝 >
닥터 셔우드홀 부부는 1940년 조선을 떠나 인도 아지메르(Ajmer)에서 22년간 결핵 담당 의료선교사로 헌신하였으며 은퇴 후 미국 고향 마을에서 여생을 보냈다. 1991년 셔우드는 98세, 매리언은 95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갔다. 부모님인 닥터 월리엄 홀과 로제타, 셔우드, 매리언, 여동생 엘리스, 사산된 아들이 서울 외국인 선교사묘역 양화진에 잠들어 있다.
-그동안 『화진포의 성』을 읽고 성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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