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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26]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26] / 삽화 윤광자 화가

2021년 05월 06일(목) 11:58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강연이 끝나고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메리언 버텀리는 뜻밖의 말을 하였다.
“캐나다 아덴의 감리교회 벽에 걸려 있는 사진 속에 계신 분이 당신 아버님이신가요?”
셔우드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미국 시골의 작은 교회에 다니는 자매가 어떻게 캐나다 시골 교회에 걸려 있는 아버지 사진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 저는 당신 아버지 고향 마을에서 가까운 비숍 밀즈(Bishop Mills)의 중고등학교 교사로 있어요. 주일이면 당신 아버지가 다니신 교회에서 예배드리지요.”
셔우드는 의외의 만남에 깜짝 놀랐다. 메리언 모녀는 성직자 회의에서 돌아온 노리스 라인 위버 목사 부부에게 셔우드를 소개하였다. 목사 부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셔우드의 강연을 들을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음에 지역 교회의 예배시간에 셔우드를 초대하겠다고 하였다.
얼마 후, 초청 강연이 있던 날 라인 위버 목사님 댁에서 셔우드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였다. 셔우드는 내심 메리언을 또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마음이 부풀었는데 식사가 시작되어도 메리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이미 캐나다 근무하는 학교로 떠난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메리언이 부엌에서 나오며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였다. 언니의 음식 만드는 일을 돕느라 부엌에 있었다고 하였다.. 셔우드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셔우드는 자신이 메리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다.
식사가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위버 부인은 마실 우유가 없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날마다 가까운 목장에서 우유를 날라다 먹고 있었는데 그날은 바빠서 가져오지 못했다.
“언니, 제가 목장으로 가서 우유를 가져올게요.”
매리언이 우유통을 가지고 일어서자 셔우드도 엉거주춤 일어서며 말했다.
“우유가 담기면 통이 무거울 텐데 저도 함께 다녀오면 안 될까요?”
목사 부부는 웃으면서 그러라고 하였다. 두 사람은 목장을 향해 걸었다. 초저녁 바람이 홍조로 달아오른 두 사람의 볼을 시원하게 식혀 주었다.
셔우드는 메리언이 캐나다 교회의 아버지 친구들, 친척들, 친할머니까지 알고 있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학이라 미국 본가에 왔으나 그녀는 곧 캐나다 학교에 돌아간다고 하였다.
셔우드는 머뭇거리고 말했다.
“저……우리 할머니께 작은 선물을 보내려고 하는데 좀 전해 주시겠어요?”
“네 전해 드릴게요.”
메리언은 명랑하고 밝은 성격이었고 매사가 분명하였다.
셔우드는 다음 주일, 할머니께 보낼 선물을 준비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루츠타운으로 갔다. 메리언이 다니는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하였는데 뜻밖에 그날 메리언의 독창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정원에서’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전에도 여러 번 들었으나 지금처럼 아름답게 가슴에 와닿은 적은 없었다. 신선하고 황홀한 선율이 셔우드의 마음을 울렸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얼굴, 매력적인 성격의 메리언에게 셔우드는 이미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메리언의 어머니와 언니는 셔우드를 좋게 보았지만 형부인 라인 위버 목사님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메리언도 형부 라인목사가 선을 보라고 권고한 어느 청년을 보기도 전에 이미 셔우드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셔우드는 메리언에게 캐나다에 가서 편지를 자주 보내달라고 했다. 선물을 받은 할머니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도 듣고 싶다고 하였다. 처음 몇 편의 편지는 일상적인 내용이었으나 편지가 몇 차례 오고 가자 가족들의 신상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 보냈다.

메리언은 1896년 6월,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태어난 영국의 엡위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언니 엠마는 처녀 시절 고향 마을에 찾아오는 저명인사나 관광객들의 안내역을 자원했는데 이때 미국에서 방문객으로 오게 된 라인 위버 목사를 만났다. 그들의 우정은 사랑으로 발전했고 결혼하게 되었다.
메리언의 부모는 웨슬리 기념 교회에서 첫 번째로 결혼 한 부부였다. 어머니는 교회 오르간 반주자였고 아버지는 평신도 설교자로 봉사하였으며 직업은 사진사였다. 그런데 자매가 고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메리언의 어머니는 두 딸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온타리오 주 아덴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이 셔우드의 아버지 닥터 홀의 고향 마을이었으니 셔우드와 메리언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버텀리 여사는 사진관을 개업하였고 메리언은 어머니의 일을 도우며 사진 찍는 일은 메리언의 취미가 되었고 후에 선교사 활동을 하면서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진 찍는 일로 그는 훗날 일본군부에게 스파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결국 조선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메리언은 1917년 가을, 미국의 루수타운 학교에 교사로 부임하게 되어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돌아왔다.
메리언은 더 공부하고 싶어 학비를 벌기 위해 방학 동안에 모직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공장 여공들은 안타까운 동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
“딱하군, 잘못 들어왔어. 이 기계 일은 복잡하고 감독은 지독하고, 이제 곧 눈물을 흘리고 도망갈 거야. 여긴 여선생님이 일할 만한 데가 아닌걸!”
메리언에게 방적 기계가 맡겨졌다. 감독은 사용법도 자세히 설명도 해 주지 않고 일을 시켰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기계가 고장이 났다. 메리언은 감독을 찾아가 기계 도면과 사용 설명서를 달라고 했다. 처음엔 거절하던 감독이 그녀가 끈질기게 요청하자 도면과 지침서를 주었다.
메리언은 도면과 설명서를 숙지하여 기계 사용법을 터득하고 기계를 고쳐서 다시 능숙하게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녀의 당찬 성품과 솜씨에 모두 놀랐고 감독은 후에 더 복잡한 기계를 그녀에게 맡겼다. 개학하여 메리언이 공장을 떠날 때 감독은 아쉬워하며 방학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거리상으로 가까운 곳으로 왔는데도 셔우드와 메리언은 자주 만날 수 없었다. 평일에는 학교생활로 바빴고 주말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을 내어 ‘학생 자원부’에서는 꾸준히 활동하였다.
메리언도 이 ‘학생 자원부’활동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1918년 3월, 오하이오주 베레아의 볼드윈 윌러스 대학에서 학생자원봉사회 총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셔우드는 마운트 유니언 대학의 대표로 참석하게 되어 메리언에게 함께 가자고 청했다. 메리언이 승낙하여 그 행사에 함께 참가하였다.
그날 총회에 참석한 메리언은 설교를 들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 이른 새벽에 기차 시간이 남아서 크리블렌드 기차역의 식당에서 두 사람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메리언은 자신도 의과 대학에 다시 진학하여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의료선교사가 되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나라에 가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셔우드는 마음이 뜨거워져서 메리언 곁으로 다가앉으며 말했다.
“메리언, 의사가 되어 나와 같이 조선에 가지 않겠어요?”
메리언은 직답을 피하고 익살스럽게 말하였다.
“같이 가는 건 무리일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우린 서로 남남인 남녀 사이인데.”
셔우드는 당황해서 메리언의 부드러운 눈웃음은 보지 못하였다. 신중하게 말했는데 묵살을 당한 터라 몹시 무안했다. 뒤늦게 자신의 풋내기 같은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다. 기차역 같은 공공장소에서 그것도 해뜨기 전의 새벽에 프러포즈를 한 것은 적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생 클럽의 친구가 귀띔해 주었다. 프러포즈를 하려면 클럽의 상징인 글자 장식 핀을 준비했다가 여자가 사랑의 고백을 받아주었을 때 재빨리 핀을 꽂아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메리언은 야생 동물을 무척 사랑하였다. 셔우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루츠타운 숲속에 사는 새들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 날, 메리언이 셔우드에게 이번 주말에 숲속으로 야생동물을 보러 가자고 하였다. 셔우드는 프러포즈를 할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지난번 같은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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