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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27]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27] / 삽화 윤광자 화가

2021년 05월 31일(월) 20:32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나무들이 연둣빛 이파리를 틔우고 아름다운 꽃들의 향기가 바람결에 풍기는 4월이다. 사랑을 나누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숲속에 가득하였다.
“메리언, 당신을 사랑해요. 나랑 같이 결혼해서 조선으로 가서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는 일을 하지 않겠어요?”
셔우드는 메리언에게 정중하게 프러포즈를 했다. 그녀는 미소지으며 셔우드가 꽂아주는 학생 클럽의 핀을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태도로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행복했고 숲속의 생물들도 자신들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얼마 후, 그들은 약혼하였다. 약혼 소식은 빠른 속도로 대학에 퍼졌다. 친구들은 의대생이 약혼하면 힘든 의대 공부를 중단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걱정을 했다. 어떤 친구는 “주변의 의대 여학생 중에서 짝을 찾지 그랬어!” 하며 심지어 어떤 여대생의 이름까지 들먹거리며 말하기도 하였다. 그 같은 말들은 셔우드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미 메리언과 사랑에 푹 빠져 있었다. 매일 구름 속에 둥실둥실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행복한 구름 위에서 오래 있지 못하고 지상으로 내려와야 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이다. 전쟁의 현실은 눈앞에 다가왔고 미국은 공식적으로 이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미국의 적령기의 남자들은 모두 징집 대상이었다. 셔우드는 조선에서 안식년 휴가를 받고 미국으로 오실 어머니(닥터 로제타)를 기다리며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여 의무 보충대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마운트 유니언 대학에서 의예과를 마쳤으므로 의무 보충대에 입대하면 원하는 의료분야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해 가을, 피츠버그 대학교의 의과대학에 있는 육군 의무훈련센터에 가서 신고하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이곳에서 입대 병사들은 특수훈련을 받아야 했다. 의과대학 가까이에 간이 훈련소가 세워졌고 훈련장은 대학 운동장이었다.
훈련, 훈련, 또 훈련,…….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는 너무나 지쳐서 옷을 벗을 기력조차 없었다. 모든 생활 리듬이 깨지고 오직 의학 공부만 일상의 생활이었다.
조선에서 어머니가 오셔서 메리언을 인사시켰다. 어머니는 메리언이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메리언은 어머니를 형부 라인 위버 목사님께 소개하여 양쪽 어른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스페인 인플루엔자’라는 유행성 독감이 발생했다. 시의 보건부에서 공동체 모임을 금지하였고 선교위원회가 계획했던 모든 모임이 취소되었다.
인플루엔자는 계속 번져 셔우드가 묵고 있는 간이건물까지도 전염되었다. 아침마다 한두 사람씩 들것에 실려 병실로 나갔다. 어떤 사람은 시체가 되어 옮겨졌다. 다음에는 누구 차례가 될지 예측할 수가 없는 공포가 가득한 상황이었다. 이곳이 전쟁터보다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 요원이 부족 하자 보건성과 필라델피아 자선기관들은 안식년 휴가로 쉬고 있는 어머니를 징용하여 환자를 치료하게 하였다. 닥터 로제타 홀은 조선에 선교사로 가서 청일전쟁(1894년), 러일전쟁(1894년)을 비롯하여 갑신정변(1984), 동학란(1894) 등 크고 작은 전쟁을 여러 번 겪었다.
아버지 닥터 홀이 전쟁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전염병으로 돌아가셔서 마음의 상처가 남아있을 텐데도 전쟁부상자를 치료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없이 평화로웠다. 하나님께서 주신 의사로서의 특별한 소명과 사명이 있는 분이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셔우드도 인플루엔자에 전염되었다. 약혼녀 메리언에게 편지로 감염 사실을 알렸더니 곧바로 훈련소로 찾아왔다. 그녀는 공동생활을 하는 훈련소에서 이 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동안 고심하더니 용감하게도 직접 셔우드의 상관을 찾아갔다.
“상관님, 저는 셔우드의 약혼녀입니다. 셔우드를 일반 주택으로 격리시켜 적절한 치료와 간호를 해서 완쾌되어 속히 부대로 복귀 할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십시오! 그것이 본인은 물론 부대와 동료들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 요청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는데도 상관은 고심 끝에 허락하였다. 고열과 두통에 시달리던 셔우드는 용기 있고 당찬 메리언의 조치 덕분에 쉽게 회복하였다.

1918년 11월 11일, 전쟁 휴전의 낭보가 날아왔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였다. 그러나 셔우드는 군에서 제대하려면 더 복무해야 했다. 의료 훈련은 계속되었으나 이른 아침의 군사훈련이 없어져 공부할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다. 동시에 병영 밖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어머니도 징용 의사 기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셔서 당분간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는 방을 얻었다. 집주인 캐시디 부인은 어머니 친구인 울번 여사의 자매였는데 이분은 훗날 셔우드와 메리언의 조선에서 의료선교를 할 수 있도록 중대한 영향을 주신 분이다.
메리언은 마운트 유니언 대학에서 학교생활에 충실하였고 의대에 들어갈 자격을 따기 위해 여름학기에도 수강하여 대학을 빨리 마치기로 하였다. 주말에도 학비를 벌어야 하므로 자주 못 만나 편지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미래를 설계하였다.
메리언의 대학 공부가 끝날 무렵 셔우드도 군에서 명예제대를 하였다. 의과대학 진학을 위한 상담을 하였다. 아버지 닥터 홀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오마르 킬본과 그의 아들은 레슬리 킬본은 토론토에 있는 대학에서 의학교육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하였다. 깊이 생각하던 셔우드도 그들의 생각에 동감했다.
미국 감리교회선교회와 펜실바니아 의료선교협회에서 학비를 보조해 주기로 하였다. 이 보조금과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업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받기 위해서 최소한의 체류 일자를 지키지 못해 셔우드는 다시 캐나다 시민이 되었다.

셔우드가 토론토 대학에 다녔던 그 무렵, 토론토 대학에서는 매우 획기적인 연구 활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닥터 프레드릭 그랜트 밴딩(Frederick Grant Banting)과 닥터 촬스 하버트 베스트(Charl Herbart Best)가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을 연구하고 있었다. 셔우드가 토론토 대학으로 편입하는 것을 도와준 닥터 레슬리 킬본도 이 연구팀의 한 사람이었다. 킬본은 셔우드를 실험실로 데리고 가서 연구팀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밤을 새우며 열성적으로 연구하는 모습을 본 셔우드는 큰 감동을 받았다.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헌신적인 사명감으로 연구하는 모습은, 훗날 조선에서의 결핵 퇴치를 위한 의료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그들의 훌륭한 연구 결과는 몇 년 후 세계적인 의학지에 소개되어 크게 알려졌다.
메리언은 1920년 필라델피아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녀는 정말 열심이었다. 목적을 향한 의지와 열성에 경탄할 뿐이었다. 메리언이 마운트 유니언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마치자 운이 좋게도 두 사람은 아르바이트를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유명한 ‘켈로그 결핵요양소’의 실험실에 같이 고용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얼마나 오묘하신지!……두 사람은 이곳에서 결핵에 관한 실제적인 의료경험을 접할 수 있었다. 훗날 조선에서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한 준비를 시켜주신 것이다. 두 사람은 그동안 학교 공부로 서로 떨어져 있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보고 싶은 날이 많았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정직하기로 하였다. 결혼 후에도 학업을 계속하기로 굳게 약속하고 1922년 6월, 메리언이 마운트 유니언 대학에서 이학사 학위를 받는 날, 결혼하기로 하였다. 결혼하면 학업을 중단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주위 어른들과 일가친척의 염려와 조언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셔우드는 결혼식 전날, 대학에서 마지막 중요한 시험을 치르고 야간열차를 두 번이나 바꿔 타고 일리언스로 출발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 부서진 화물 열차가 선로에 가로누워 진로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어쩌나?’ 셔우드는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 메리언의 대학졸업식에 참석해야 하고 오늘 저녁은 저희가 결혼식이 있는 날입니다. 일 분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저 고난 장 열차를 치워 주십시오!”
놀랍게도 잠시 후 장애물이 치워지고 열차는 다시 달렸다.
메리언은 대학졸업식이 시작되었는데도 신랑감이 나타나지 않아 초조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보우먼 학장은 열띤 목소리로 메리언을 칭찬하였지만, 메리언은 신랑에 대한 걱정으로 학장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셔우드가 흐트러진 머리에 숨도 가누지 못한 모습으로 강당에 들어섰을 때 졸업식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아! 매리언, 늦어 미안해요, 고장 난 화물 열차가 길을 막아서…….”
우등생으로 졸업하는 메리언은 선후배와 친구들의 축하도 뿌리치고 셔우드 품에 안겼다.
<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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