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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29]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29] / 삽화 윤광자 화가

2021년 06월 29일(화) 09:59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셔우드 홀 부부는 미리엄 울버턴 여사의 후원으로 극적으로 조선 의료선교사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마침 그때, 조선 감리교구 감독인 하버트 웰치 목사가 뉴욕을 방문하였다. 웰치 목사는 1916년에서 1928년까지 조선과 일본의 감리교구 주재감독으로 있으며 훗날 셔우드 홀이 해주에 결핵요양원을 설립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분이다.
후원자가 감독을 만나면 조선에 관해서 좀 더 상세한 정보와 선교 후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웰치 감독에게 미리엄 울버턴 여사를 소개하였다. 그들의 만남은 은혜 가운데 이루어져 졌고 셔우드 부부가 전문성을 갖춘 훌륭한 의사가 되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다.
모든 일들이 기적 같이 이루어졌다. 셔우드 내외를 런던의 유명한 열대 약학 학교(London Shool of Tropical Mdicine)로 보내서 6개월 동안 동양 질병에 대해서 철저한 의학 연수를 시켜준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 끝나는 대로 황해도 해주의 ‘노튼 기념병원’으로 부임하라고 하였다.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는지. 은혜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금할 수 없었다. 친구와 지인들은 그들이 조선으로 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은 믿었다.
부모님이 의료선교사로 평생을 바친 조선에서 대를 이어 선교사가 된다는 사명감과 새로운 세계의 경험과 모험을 상상하며 두 사람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1925년 8월 25일, 드디어 런던의 열대 약학 학교로 출발하는 날이 다가왔다. 조직적인 성격으로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매리언은 며칠 동안 싼 짐을 마지막으로 점검하였고 일일이 품목들을 기록했다.
부두에 도착하자 전송 나온 일가친척들과 친구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 닥터 조지 히버 존스의 미망인과 후원자, 울버턴 부인도 있었다. 존스 부인은 1890년 미혼으로 어머니 로제타와 함께 선교의 길에 올랐고 조선에서 선교사와 결혼하신 분이다. 배웅하는 눈빛에 감동과 그리움이 담겨있었다. 전송객들이 가져온 꽃들로 선실은 신방처럼 화려하게 꾸며졌다. 이 꽃과 향기로 영국 글레스고(Glasgow)까지 가는 배 안에서 두 사람은 줄곧 신혼여행 중인 부부로 알려졌다.
닻이 오르고 형형색색의 리본 묶음이 두 사람에게 던져졌다. 전송 나온 사람들이 리본의 한쪽 끈을 잡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반대쪽을 잡았다. 배가 부두를 떠나면 리본이 풀리며 항해를 시작하면 끊어지게 된다.
리본의 끈이 하나둘 끊어졌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 친구, 이웃들……그 모든 사람들과 이별을 뜻하는 것이다. 떠날 때의 아픔과 설레임은 선교사의 삶에 항상 따라다니는 친구이다.
매리언에게 이별의 슬픔은 몹시 컸다. 셔우드는 ‘어린 시절 자랐던 조선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매리언은 ‘자기 집과 가족과 고향을 떠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글썽이며 헤어짐을 슬퍼하던 그녀는 런던으로 공부하러 가기 전에 고향인 ‘엡위스’에 들린다는 사실로 곧 기분이 좋아졌다.
먼저 스코틀랜드에 들려 아름다운 곳을 관광한 후 고색창연한 도시 엡위스로 갔다. 이곳은 유명한 존 웨슬리가 심금을 울리는 복음 전파로 영국을 흔들어 놓았던 곳이다. 그토록 유서 깊은 도시가 메리언의 출생지이고 고향이라는 점에서 친근감이 더했다.
일가친척과 소녀 시절의 동창들에게 신랑 셔우드를 소개하며 매리언은 행복해하였다. 고향 사람들은 매리언이 의사가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이 지방 출신의 여성은 의사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매리언은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위슬리 기념 교회당의 아름다운 잔디밭에서 두 사람을 위한 환영회가 열렸다. 그들의 모습에서 엡위스의 이웃들이 매리언의 집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런던에 도착하여 학교 근처에 하숙집을 구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동양 각지에서 모인 의사들이었다. 런던의 열대 약학학교의 교수들은 이 분야에 뛰어난 권위자들이다. 의학전문지에 여러 논문을 기고했으며 어떤 이들은 높은 직위를 받을 정도로 학문적인 공로가 컸다. 닥터 레너드 로저스는 말라리아 치료 부분의 개척자였으며 간염 치료도 성공적인 길을 열기도 했다.
이 학교에서 닥터 셔우드와 매리언은 지구 곳곳에서 날아오는 실제적인 임상체험에 관한 의학 정보와 자료들을 접하는 소중한 행운을 누렸다.
런던항에는 각종 열대성 질병에 걸린 선원이나 선객들을 격리 수용하는 병원이 있었다. 동양 현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특수한 질병들을 런던에 앉아서 치료하는 임상경험을 할 수 있었고,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을 상황에 따라 기술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견학하였다. 이러한 경험과 의학지식은 훗날 조선에 와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양에 거의 없는 동양 질병의 치료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진단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이질에 걸린 경우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은 식이요법인데 우유가 아닌 보리죽을 먹이게 하여 조선에 돌아와 선교사의 어린 자녀의 생명을 두 명이나 구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지렁이, 개구리, 모기까지 해부하며 동양 특유의 병원체와 말라리아 원충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어느덧 런던 열대 약학 학교에서 교육받는 기간이 끝났다. 이제 조선으로 돌아가서 그동안 쌓은 의료 기술로 환자를 치료할 날만을 기다렸다. 조선으로 가기 전에 파리와 스위스 로잔에 들려 또 다른 의학 전문성을 익히기로 했다.
몇 년 전 매리언이 의과대학의 학생이었을 때 ‘퀴리 부인’이 매리언의 학교에 초청 강연을 한 일이 있었다. 그때 매리언은 학생회장이라 강연이 시작되기 전에 퀴리 부인을 청중에게 소개하는 영광을 누렸다. 라듐 발견과 이것을 암 치료에 응용할 수 있게 한 공로로 세계적인 명성이 있었던 마담 퀴리는, 파리에 오게 될 일이 있으면 자신의 연구소를 찾아오라며 따뜻하게 초대해 준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퀴리부인의 연구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아쉽게도 퀴리 부인은 외출 중이었고 과학자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딸 ‘이브’를 만날 수 있었다.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으로 의료선교의 길을 떠나는 신혼부부에게 감동을 받았다고 하며 친절하게 어머니 퀴리부인의 연구실을 보여 주었다.
퀴리부인 연구소 견학을 마치고 유명한 ‘파스퇴르연구소’도 방문하였는데 그 때 진행 중이던 광견병 연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 셔우드의 전문분야인 흉곽질환을 다루는 스위스 로잔에 있는 ‘롤리어 진료소’(Rollier Medical clinic)였다. 폐결핵으로 인한 수술 대상자들을 일광욕법으로 치료하여 놀라운 성과를 보았다는 보도를 들은 적이 있었다. 조선은 특히 폐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 반드시 그 곳을 들려 견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로잔으로 가는 길은 아슬아슬한 산길이었다. 롤리어 병원은 눈 덮인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알프스의 높은 지대에 있었다. 그곳은 먼지도 없고 바람도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었다. 환자들이 아래 옷만 입은 채 눈 위를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편안하게 자외선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닥터 롤리어는 친절하였고 치료 방법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환자들의 엑스레이 사진을 꺼내 놓고, 치료 전과 치료 후의 차이를 대조해 보여 주었다. 사진 속의 주인공들이 있는 병동으로 셔우드 부부를 안내하였다. 꼽추의 허리는 똑바로 펴져 있었고 내장결핵으로 부풀어 있던 복부가 정상이 된 모습들도 보았다. 그 당시는 신약들이 개발되기 전이었으므로 이 같은 치유 결과는 정말 기적같이 보였다.
이 치유방법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병원 장소이다. 먼지가 없고 자외선을 쬘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다. 환자들이 스스로 열과 맥박을 체크하고 열과 맥박 수가 높아지면 스스로 일광욕 시간을 줄인다고 했다. 이 견학 덕분에 셔우드는 조선에 돌아와 훗날 롤리어 진료소의 방법을 현지 실정에 맞게 고치고 규모를 축소하여 해주에 결핵 요양소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밖에 견학할 곳은 인도의 봄베이에 있는 하킨스 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인도에서 발견되는 네 가지 독사의 독에 항거하는 혈청을 만드는 곳이다. 인도에서는 독사에게 물려 죽는 사람이 일 년에 수백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연구소에서 뱀으로부터 독액을 추출하는 과정과 독액이 여러 과정을 거쳐 항독혈청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었다.
그 외의 몇 군데를 더 들려 의료 견학을 하였다. 의료선교를 위해서 경험하고 준비해야 할 소중한 일들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조선으로 가는 배를 탔다.
“아, 드디어 내가 태어난 고향, 조선으로 가는구나! 함께 의료선교를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셔우드는 청소년 시절에 떠나온 조선이 눈앞에 다가온 듯 가슴이 뛰었다.
<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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