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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30]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30] / 삽화 윤광자 화가

2021년 07월 12일(월) 10:23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벚꽃이 만발한 4월, 닥터 셔우드를 태운 배가 출항하였다. 배는 조선으로 가기 전에 일본에 들렸다. 일본은 동화 속 나라 같이 조용했다. 유명하다는 공원을 구경했는데 공원의 모든 것은 상징적인 축소판이었다. 작은 폭포수, 조그만 초원, 반달 같은 다리가 있는 호수, 낡은 벤치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놓여 있고 공원 한켠에 찻집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화로에 끓인 차를 손잡이 없는 찻잔에 받쳐 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벚꽃이 피는 계절에 많이 추는 ‘오사카 오도리’라는 민속춤도 구경하였다.
고베에서 우편물을 찾아 배의 정박시간이 길어 공원의 나무벤치에서 편지를 읽기로 하였다. 대부분의 편지는 환영과 격려를 주는 글이었으나 부담이 되는 편지도 있었다.
해주 선교병원에 있는 미국인 펄 런드(Pearl Lund) 간호 원장이 보낸 편지에는 닥터 셔우드 내외가 그곳에 얼마나 필요한 사람이고 모두가 도착할 날만 기다린다는 따뜻한 내용의 편지였다. 그러나 어떤 편지들은 혼란을 주었다. 그중 하나가 셔우드 어머니 닥터 로제타의 편지였다.
어머니는 아들 내외가 당연히 평양연합기독병원(Union Christian Hospital)에 와야 하는데 해주로 가게 된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했다. 아버지를 기념하여 지은 홀 기념병원이 1920년 평양 장로교와 통합하여 평양연합기독병원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아버지와 함께 평양 선교지를 개척하고 병원을 개원하여 많은 어려움을 딛고 섬기신 어머니의 주장은 타당했다.
그러나 임지 선택은 선교회가 한 것이다. 평양 병원은 이미 훌륭한 의료 선교사들로 인해 안정되었기에 셔우드 부부를 의료 사정이 열악한 해주로 보낸 것이다. 해주의 의료선교는 1909년부터 감리교 감독의 책임하에서 운영되었다. 그전에는 장로교 선교사들도 활동하였으니 중복을 피하기도 서로 합의를 하였다.
닥터 아더 노튼이 처음에 조그만 치료소를 개설했는데 환자들이 많아져서 1913년에 루이스 홈즈 노튼 기념병원( Louisa Holmes Norton Memorial Hospital)을 신축하여 발전시켰다. 이 병원은 해주지역 주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지어졌다. 병상이 30개 정도뿐이라 환자들을 수용하기에는 부족해서 때로는 환자들을 방바닥에 눕히기도 했다.
해주에는 의료시설 이외의 교육시설도 필요했다. 여학교 학생이 100명, 남학교 학생이 280여 명이 있었다. 셔우드도 의사와 교사들이 부족한 해주에 가는 것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께 답장을 썼다.
“어머니, 아들 내외가 의사가 되어 부모님이 개척하신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이 어머니의 큰 기쁨이 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저희 부부를 해주로 보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운한 마음을 푸시고 저희가 해주에서 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어머니는 이 편지를 받은 후 서운한 마음을 돌이키고 아들 내외가 해주에서 귀한 의료 선교사로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고 한다.
또 한 통의 편지는 해주병원의 닥터 김(김영진)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는 지금 혼자서 힘겹게 해주병원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닥터 노튼이 병원 일을 총괄하다가 세브란스로 갔고 그 후임 닥터 하이디도 2년 밖에 머물지 않았다.
닥터 김은 김창식 씨의 아들이다. 1894년 평양에서 기독교 박해가 있었을 때 그의 아버지 김창식은 초대 기독인으로 감옥에서 고문를 당하며 끝까지 믿음으로 아버지 닥터 홀을 도와 그 역경을 넘겼던 분이다.
그는 1901년 부목사가 되었다. 조선에 최초로 임명된 목사였다. 3년 후 조선인으로는 처음으로 감리교의 구역장이 되어 6년간 영변 구역에서 사역하였다. 마지막으로 맡은 교구가 해주였는데 지금은 은퇴하여 아들 닥터 김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닥터 김은 편지 말미에 이렇게 썼다.
“1890년대에 조선의 북쪽에 하나님을 전하다 순교하신 닥터 월리암 제임스 홀의 아들 셔우드와 조선 최초 김창식 목사의 아들 김영진이 의사가 되어 이제 해주에서 함께 환자들을 치료하게 해 주셔서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감히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로 조선 북쪽 지방에서 기독교를 개척한 두 사람의 2세들이 합력하여 헌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다른 편지들은 조언하거나 설득하는 내용들이었다.
“더 넓고 큰 지역을 택하지 않고 왜 조선이라는 좁고 고립된 지역을 택하셨나요?”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의학교 교수진에 합류하시면 좋았을 텐데요.”
“무슨 권한으로 젊은 아내를 그곳 벽지로 끌고 가서 ‘고독의 고통’을 받게 하려는 거요? 아내가 도중에 참지 못하면 임기도 못 채우고 돌아올지도 모르겠네…….”
“아이를 낳게 되면 함께 놀 서양인 친구도 없을 텐데 나중에 아이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 부모로서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오?”
셔우드 내외는 일본의 한적한 공원에서 여러 편지를 읽으며 마음을 정리하였다. 지인들의 조언은 이미 결정한 조선 선교사의 길을 돌이키게 할 만큼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문득 40여 년 전, 조선에 초대 의료 선교사로 와서 수많은 핍박을 받으며 믿음의 뿌리를 내린 부모님을 생각했다. 부모님의 대를 이어 조선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을 결정한 것에 대한 아무런 후회가 없었다.

고베에서 조선으로 가는 배를 탔다. 아버지 제임스 홀은 연안용 기선을 타고 조선에 왔다고 했지만, 셔우드 내외는 일본에서 출발하는 야간 연락선을 타고 조선 해협을 건넜다. 부산에 내려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기로 했다.
조선에 도착하던 날, 새벽에 일어났다. 갑판 위로 올라가니 배가 해안선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고 있었다.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먼 시야에 들어오는 당당한 조선의 해안선을 바라보았다. 셔우드는 가끔, 예로부터 수없이 전쟁에 시달린 요란한 이 땅이 어째서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리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동이 틀 무렵 갑판 위에서 장엄한 해안선을 바라보며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배는 잔잔한 바다 물결을 가르고 해안의 산들을 행해 접근하고 있었다. 솟아오르는 아침 해가 물결에 반사되어 수면 위에 황금색 넓은 길이 생겼고 마치 그 길은 자신을 위해 펼쳐 져 있는 것 같았다. 멀리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만개한 분홍빛 산 벚꽃과 어울려 정말 아름다웠다. 해안선에 가까이 가자 수면에 반사된 산 벚나무의 꽃 그림자가 바다 위의 황금색 물길과 조화되어 절묘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셔우드는 넋을 잃고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감동은 조선에서 지냈던 소년 시절 추억과 어우러져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잠에서 깬 매리언이 셔우드를 찾아 갑판 위로 올라왔는데 그 장엄한 광경이 사라진 뒤였다.
배가 해안선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자 벚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부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매리언은 감탄사를 연발하고 새로운 환경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매리언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셔우드도 기뻤다. 매리언이 말했다.
“당신은 부산에 도착하면 조선말로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나는 조선말을 하나도 할 줄 모르니 간단한 인사말 한마디만 가르쳐 주세요. 그래야 나도 조선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지요.”
나는 너무나 벅찬 마음에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준비성이 많은 매리언에게 장난기가 동해 버렸다.
“사람들이 아주 놀랄 쉬운 인사말이 있는 데 따라 해 볼래요?”
매리언은 고개를 끄떡거렸다.
“내가 잔나비요. (Nai ga Chan nab-e-o).”-(나는 원숭이입니다.)
매리언은 그 말 뜻도 모르고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이며 문장을 외웠다.

부산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어머니를 만났다. 친구분들과 함께 마중을 나오셨다. 셔우드는 16년 동안 조선을 떠나있어 조선말을 다 잊어버린 게 아닐까 걱정하였는데 사람들을 만나니 소년 시절에 하던 말투로 쉽게 말을 할 수 있었다.
매리언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외롭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그들이 “내가 잔나비요. (Nai ga Chan nab-e-o).”-하고 말하는 매리언의 말을 듣고 모두 웃음을 참느라 애쓰고 있었다.다.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한 어느 품위 있는 신사가 폭소를 터뜨리자 모두들 박장대소를 했다.
“아뿔사!”
그때서야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서 저지른 실수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당황했다. <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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