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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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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31] / 삽화 윤광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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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05일(목) 11:02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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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로제타는 아들의 유치한 장난을 나무랐다. 셔우드는 변명할 여지가 없어 말장난한 것을 매리언에게 정중히 사과하였다. “내가 잔나비요.(Nai ga Chan nab-e-o).”라고 농담으로 한 말이 셔우드가 메리언에게 가르친 처음이자 마지막 조선말이 되고 말았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어머니는 메리언에게 사교적이고 품위 있는 조선말을 가르쳤다.
교인들은 벚꽃이 만발한 부산에서 두 신혼 의료선교사가 조선에 온 환영파티를 하겠다고 했지만 매리언은 공손하게 말했다.
“저희는 빨리 임지로 가서 일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 때 나이 드신 호주 출신의 선교사가 매리언에게 조언하였다.
“젊은 부인, 지금 당신은 시간을 따지지 않는 동양에 와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동양에서 오래 있고 싶으면 느긋하게 처신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도 제대로 못하고 귀국하게 될 수도 있어요.”
매리언은 실정을 잘 알려 준 선교사에게 감사하며 교인들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벚꽃이 만발한 공원은 환영파티 장소로 알맞은 곳이었다. 꽃향기가 가득한 공원에 미풍이 불어 벚꽃 잎이 눈송이처럼 날렸고 그 정경은 두 사람의 새로운 길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인상 깊은 아름다운 환영파티였다.
파티가 끝나자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전속력으로 달렸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보리밭 물결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셔우드는 말할 수 없는 감격으로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 내가 조선으로 다시 돌아왔구나! 의료선교사가 되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곁에 있는 아내에게도 이 벅찬 감정을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매리언은 셔우드의 표정을 보며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살며시 손을 잡았다. 1910년, 14살의 소년이 공부하러 조선을 떠났다가 16년 만에 의료선교사가 되어 아내와 함께 돌아오게 하신 주님의 섭리에 깊이 감사드렸다.
서울역에 내리자 사방에서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잠시 후 인력거를 타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인력거는 대부분 1인용이었는데 로제타는 2인 왕진용을 구입하여 사용했다. 급한 왕진을 가야 할 경우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갈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력거는 빠른 속도로 남대문은 통과하고 있었다. 메리언은 바깥 풍경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생각보다 건물이 현대식이고 도로가 큰 것에 놀랐다. 레일 위를 지나가는 전차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었고 자리가 비좁아 계단의 손잡이를 잡고 매달려 가는 승객들도 있었다.
그 예전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고 저주의 대상이던 전차를 생각하며 감회가 새로웠다. 전차가 처음 들어왔을 때 조선에 가뭄이 심했다. 점쟁이들은 비가 오지 않는 이유를 이 전차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전차를 거부하고 두려워할 즈음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1899년 안개가 자욱한 여름날 아침에 일어났던 사고를 셔우드는 목격하였고 그 끔찍한 사고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조선의 우기는 더위와 습도가 심하다. 가뭄이 끝나고 장마가 오락가락했다. 조선 사람들은 딱딱한 목침을 베고 자는 것을 좋아하였다. 사람들은 더위를 참지 못하고 비가 그친 날 밤에 밖에 나와 쉬다가 전철 레일을 베고 잠이 든 것이다.
그 날은 유난히 아침에 짙은 안개가 차창을 덮고 있어 앞이 잘 안 보였다. 첫 전차가 레일을 베고 자는 사람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레일을 베고 잠자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처참하게 머리를 잘렸다. 안개가 걷히고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분노하며 광폭해져서 전차를 전복시킨 후 불을 질렀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생각은 변하기 마련이다. ‘외국 마귀의 발명품’이라고 두려워하며 저주받던 전차는 이제 조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도심을 달리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지나는 곳이 동대문인가요? 매리언의 질문에 셔우드는 지난날의 회상에서 깨어났다. 동대문은 남대문만큼 크진 않아도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동대문 옆의 경사진 언덕에 릴리언 해리스(Lillian Harris)기념병원이 있었다. 어머니 닥터 로제타는 이 병원의 원장이었다. 매리언이 다급하게 말했다.
“셔우드, 우리 내려서 걸어가요. 인부들에게 우리를 태운 인력거를 끌고 저 급한 경사를 올라가도록 할 수는 없어요!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셔우드도 그 길을 걸어가고 싶었다. 매리언처럼 인력거꾼에 대한 동정심에서는 아니었다. 어렸을 적 그보다 더 가파른 경사진 곳도 다니는 인력거꾼은 힘이 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 건물을 멀리서 바라보며 걸어가고 싶었다.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도 하나뿐인 아들을 16년간 외국에 보내고 외로움을 달래며 사명감으로 일하신 어머니의 열정이 깃든 병원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싶었다.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니 병원과 어머니가 사는 셋집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나와서 환영해주었다. 손님들이 떠나자 어머니는 공식적으로 방문해야 할 곳을 설명해 주셨다.
영국 총영사관 하이 드레드를 만나고 영사관에 등록하는 일, 뉴욕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감리교 감독 하버트 웰치 내외를 비롯해서 윤치호 선생을 찾아뵙는 일 등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만남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선교지인 해주를 속히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로제타도 승낙하였다. 그 당시 해주까지 철도가 연결되지 않아 사리원까지 가서 9명 정도 탈 수 있는 소형버스로 갔다.
강가에 도착하여 사람들은 힘을 모아 차를 밀어 나룻배에 실었고 소 2마리도 태웠다. 소와 같이 배를 타서 불안해하는 매리언에게 뱃사공이 마음을 놓으라고 손짓했다. 오히려 배가 심하게 흔들리면 소들이 자리를 이동하여 무게의 균형을 잡아 준다고 했다. 건장하고 믿음직한 사공들이 강의 급류를 잘 이용하여 배를 목적지까지 정확하게 대었다. 배에서 내려 다시 9인승 버스를 타고 해주 병원에 무사히 도착하여 안도의 숨을 쉬었다.
첫 임지 해주 병원의 간부진과 교인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남학교의 학생들이 일렬로 서서 멋지게 경례를 했다. 환영식이 끝나자 학교 이사회에서 셔우드를 남학교 교장으로 겸직 임명을 하겠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현재의 왁스(V.H.Wacks) 교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곧 이곳을 떠나게 되는데 후임 교장직을 맡을 마땅한 분이 없다는 것이다.
매리언은 명쾌하고 사리가 분명하다.
“영광스러운 직분이지만 우리는 의료선교사로 환자들을 돌보러 이곳에 왔으니 겸직할 경우 병원 일에 지장이 없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사들은 교장을 해도 시간을 소비할 일은 별로 많지 않다며 승낙해 주길 간청했다. 교장직을 할 사람이 없다는데 환영인들 앞에서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시간과 장소가 적합하지 않았다. 셔우드는 교장직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함께 일할 사람을 소개받았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김창식 목사의 아들 닥터 김(김영진)이었다. 그는 셔우드의 두 손을 꽉 잡고 악수하며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하였다.
“당신들이 와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나는 이 병원을 혼자 힘으로 지탱할 수 없어 많은 고심 중에 있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두 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닥터 김과 함께 의료선교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행운으로 여깁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처음에는 좀 쉬운 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환자 진료가 당신들의 의술로는 쉬운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겁니다.”
두 번째로 소개받은 사람은 제인 바로우(Jane Barlow) 양이었다. 그녀는 깔끔하고 깐깐한 성격의 독신녀였다. 처음 만난 우리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두 분이 주님 사업에 더욱 열중할 수 있도록 자녀를 두지 않아 기쁩니다.”
매리언은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재치가 있다.
“미스 바로우, 그 점이라면 아마도 당신을 실망시켜 드릴지도 모르겠어요.”
뒤에 서 있던 의정 여학교 교장인 벨 오버머(Bell Ovrman) 양이 웃음을 띠고 있었다. 곧 교대할 왁스 목사 부부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왁스 목사는 조선 사람들에게 ‘모터사이클’ 선교사라고 불리고 있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선교구역을 돌아다녔는데 어린이들을 자주 태워주어 아이들이 그를 좋아했다고 한다.
왁스 목사는 언덕 위의 커다란 벽돌집을 쓰라고 했지만 셔우드 내외는 여선교사들의 집과 가까운 ‘가운데 집’ 이라 불리는 돌로 지은 오두막집을 택했다. 아름다운 노란색 장미가 집 입구에 만발해 있었다.
닥터 김과 간호원장 런드양의 안내를 받으며 병원을 둘러보았다. 작은 2층 건물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으나 의약품과 의료기구들이 많이 부족하였다. 3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입원실은 응급환자들이 많아 늘 자리가 모자란다고 한다. 매리언은 외과 닥터라 수술실에 관심이 많았다. 수술실이 어두워 세밀한 수술을 하려면 조명이 많이 미흡했다.
왜래 환자 대기실은 환자들이 도착하기 전 이른 아침에는 병원 직원들의 예배 장소로 쓰고 있었다. 환자들이 도착하면 전도사들이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마음을 위로해 주는 일을 하도록 했다. 병의 치료는 마음의 치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닥터 노튼(A. H. Norton) 의 세심한 치료방침을 알 수 있었다.
병원을 살펴보고 매리언은 조선어학교에 등록하기 위해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환자들의 아픈 부분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환자들과 의사소통이 필요했다.
병원이 낮 설고 여러모로 안정되지 않아 어려운 일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해주에서의 의료선교사의 길을 하나님께서 맡아달라고 기도하였다. 새 임지에 대한 두려움도 크고 그들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마음이 평안해지고 알 수 없는 힘과 기쁨이 밀려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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