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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32]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32] / 삽화 윤광자 화가

2021년 08월 25일(수) 10:47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조선으로 초기에 온 선교사들은 조선어를 혼자 공부해야 했다. 먼저 온 선배 선교사들에게 배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독학이 많았다. 1919년 신교복음연합회에서 단기간의 ‘조선어교육과정’을 개설하여 봄가을에 각각 2개월간 조선어 학습시간을 마련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3년 과정이었으며 선교사들은 임무를 시작하기 전에 의무적으로 첫 학기를 마쳐야 했다.
셔우드 홀은 아내 매리언과 조선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어린 시절을 조선에서 보냈으므로 조선어(한글) 배우는 일은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어렸을 때 한 말은 ‘아이들의 말’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도 어릴 적 어머니를 방문했던 점잖은 분들께 버릇없게 말해서 그들을 대경실색하게 했을 것이다.
조선말은 어른들에게 ‘앉으십시오!’ 라고 경어를 써하는데 ‘앉아라!’ 라고 말한 것이다. 중간 정도의 경칭인 ‘앉으세요!’ 라고 말했어도 좋았을 것을. 그들은 아마도 서양의 야만스런 아이들이 어찌 조선 아이들처럼 경어를 쓸 줄 알겠느냐며 눈 감아 주었을 것이다.
어릴 적 기억나는 일로 한 번은 조선의 양반이 셔우드에게 경어를 쓰지 않는다고 야단을 쳤다. 셔우드는 오히려 이렇게 항의했다.
“나에게 경어를 써주면 내가 경어를 더 잘 배울 수 있지 않겠어요?”
이미 습관으로 굳은 말투를 고치는 것은 새로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몇 주가 지나자 매리언은 한글의 자음 모음을 깨우치고 언어 구사력을 경쾌하게 하며 셔우드를 앞질러 가더니 품위 있는 말로 충고해 주기까지 했다.
그들에게는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같은 뛰어난 선생님들이 계셨다. 신중하고도 능숙하게 가르쳐주었고, 학자이며 조선말 교과서를 쓴 찰리 샤우어(Charlie Sauer) 선교사는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
“어떤 조선인 선생이 영어가 부족하여 기묘한 영어로 통역이나 번역을 하더라도 절대로 웃지 마세요. 웃게 되면 그 사람의 체면을 깎는 것이 됩니다. 체면을 손상당한다는 것은 자존심을 상하는 일이 되고 상대방이 마음을 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조선인 선생님이 강의를 하는 시간이면 웃지 않으려고 마음을 무장하고 교실에 들어갔다. 조선어학교 교장인 쿤즈(E. W. Koons) 박사는 서울 경신학교의 교장이었다. 그는 도표와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치는 재능이 있는 훌륭한 선생님이셨다.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들께 조선어를 배우고 있던 기간에 조선은 역사적인 격동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 씨 왕조의 27대 왕이자 마지막 왕인 순종황제가 1926년 4월 25일 서거했다. 국장은 조선의 관습에 따라 보름 정도의 기일이 지난 후 장례를 치른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애국자들이 이 기간에 예전 고종 승하 시 일어났던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 같은 운동을 또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고종황제는 일본인들의 압박이 심해지자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국제평화회의’에 비밀리에 세 사람의 밀사를 파견하였다. 일본이 물러가게 해달라는 청원이 거절되자 밀사 가운데 한 사람인 ‘이 준’이 세계대표들 앞에서 배를 갈라 자결을 하였다. 이에 경악한 일본 관리들은 1907년 7월 19일, 왕위를 순종에게 강제로 양위시켰다. 그리고 조선을 일본에 합병시킬 음모를 꾀하였다. 그 후 1910년 8월 22일 공식적으로 조선을 일본에 합병시켜 이 씨 왕조는 종말을 고했다.
그러나 조선의 애국자들은 오백 년 이어온 나라를 되찾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 웰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발표했다. 국가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고 경계를 재정립하여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고 평화롭고 상호적인 관계를 증진하자는 이 원칙에 조선의 애국자들은 힘을 얻었다. 이 기회에 전 세계에 일본의 조선에 대한 강압정책을 알려서 국제적인 비난 여론을 일으키게 하여 일본이 조선을 포기하게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33명의 조선 애국자들이 비밀리에 독립선언문을 만들어 서명하고 인쇄하여 조선 방방곡곡에 돌려 고종임금의 장례식 며칠 전인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민중 앞에서 낭독하였다. 그 33인은 기독교인 16명, 천도교인 15명, 불교 계통이 2명이었다. 이 선언은 전 세계를 향한 부르짖음이었다.
“조선은 독립국가로서 자유권이 있으며 일본에 부당하게 합병되었다.”라는 사실을 알리는 부르짖음이었다. 이 선언서는 주요 열강의 정부들에게 발송되었고 조선의 각 지방에서도 그 지역 지도자들에 의해 낭송되었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남녀노소, 아이 어른 모두 거리에 나와 독립만세를 불렀다. 만세 소리가 거리에 진동하고 일본에 의해 금지되었던 태극기가 거리에 나부꼈다.
이에 경악한 일본 관리들은 33인을 체포하라고 통고하였고 비폭력 평화적인 시위였음에도 일본은 무자비한 보복을 하여 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죽였다. 이 때 많은 기독교인들이 체포되고 죽임을 당했다. 조선 민중들은 처음으로 기독교인들도 조선의 애국자라는 것을 인식했다.
이 독립 시위는 비록 완전한 자유를 찾지는 못했지만 조선에 대한 일본의 정책을 바꾸게 했다. 사이토 마토코가 조선 총독에 임명되었는데 그의 정책은 전임자들보다 부드럽고 회유적이었으며 주 관심사가 교육이었다. 그가 처음에 조선으로 올 때는 학교가 250개 정도였는데, 다섯 배 정도가 늘어났고 신학문의 열기가 조선에 퍼지게 되었다.

순종황제 장례식 날 일본은 지난번 같은 시위가 일어날까 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중에 듣게 되었지만 실제로 1919년 고종 승하 시 만세운동과 비슷하게 학생들이 배일선언 인쇄물을 준비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준비했었는데 일본 경찰들이 사전에 철저하게 제압하여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순종 왕의 장례행렬은 웅장했다. 일본 경찰은 장례행렬이 지나가는 동안에 거리에 나오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시위가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셔우드 부부는 어머니가 근무하는 동대문 부근의 높은 병원 마당에서 동대문을 지나 왕가의 묘지 금곡으로 가는 긴 장례행렬을 모두 구경할 수 있었다.
맨 앞에 기마 경찰이 나타났다. 검은 정복을 입고 칼을 들고 줄을 서서 걸어갔다. 그 뒤로 군경들이 말을 타고 따르고 만장을 든 많은 사람들이 따라갔다. 악귀를 쫓아낸다는 무시무시한 가면을 쓴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순종황제의 시신을 실은 거대한 붉은 상여가 지나갔다. 맨 앞에서 베로 만든 뾰족한 모자를 쓰고 곡을 선창하는 사람이 있고 호곡하는 사람들이 상여 양편에 늘어서서 ‘아이고, 아이고’를 연방하며 울면서 걸어갔다.
관은 서로 교차하는 나무 장대들 위에 안치되어 있었고 장대에 연결된 끈들을 어깨에 걸치고 190여 명의 사람들이 무겁고 큰 왕의 상여를 질서 정연하게 운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상여의 전면과 후면에 올라가서 종을 흔들며 운구하는 사람들의 걸음에 박자를 맞춰 주었다. 그 다음으로 왕가의 여자들이 가마를 타고 따르고 가마 뒤를 왕실의 친척들, 정부 요인들이 인력거를 타고 따르고 있었다. 이 장례의 행렬은 무려 2킬로미터나 되었다.
셔우드 부부는 조선어학교를 다니느라 임지 해주에 가기 전에 조선 왕조 마지막 왕의 장례식을 볼 수있는 특별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매리언에게 많은 소재를 제공해 주었다. 왕가의 거창한 장례식, 옛 전통의 화려함의 마지막을 눈으로 확인하고 자료를 남길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드디어 조선어학교의 첫 학기가 끝났다. 공부는 힘들었으나 오랫동안 우정과 의료선교정보를 나눌 수 있었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서 기뻤다. 임지로 떠나기 전, 셔우드 내외는 어머니를 모시고 미국영사관 뜰에서 열린 서울 여성클럽의 연례파티에 참석하였다.
여름철이 시작되는 계절이었으므로 대화는 자연히 여름 휴가지를 정하는 일에 집중되었다. 사람들은 셔우드에게도 휴가장소를 추천해 주었는데 서쪽 ‘소래해변’과 동해안 ‘원산해변’을 추천했다.
그러나 아직 휴가를 즐길만한 여유는 없었다. 어서 해주로 가서 병원의 상황을 파악하고 힘겹게 준비한 의료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고 싶었다. 그러나 셔우드는 해주에 가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아내 매리언에게 자신이 태어난 서울의 집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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