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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33]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33] / 삽화 윤광자 화가

2021년 09월 06일(월) 11:46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셔우드, 네가 태어난 집이 있던 자리에 신식 건물이 들어선다는 소문을 들었어! 다음에 가 본다고 미루다가 어쩌면 생가를 못 볼 수도 있어.”
어느 날, 어머니의 말을 듣고 셔우드는 아내와 서둘러 생가를 찾아갔다.
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오래된 한옥이었으나 편안하였고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기와지붕의 끝이 하늘을 향했는데 그 선이 고아해 보였다. 천장 가운데 커다란 나무 대들보가 있고 대들보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지붕을 받쳐주는 나무 기둥 서까래를 경사지게 눕혀서 겉으로 드러나게 했다. 집을 몸이라고 생각한다면 서까래는 척추에 붙어있는 갈비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셔우드는 자신이 태어난 방과 아버지 닥터 홀이 돌아가셨다는 방도 구경했다. 이 집은 아버지가 태어난 캐나다의 통나무집과 비슷하게 만든 동양식 가옥이다. 선교사 생활 초기에 불편을 감수하며 이 집에 살면서 조선을 위해 헌신했을 부모님의 젊은 날들이 머릿속에 그려져 셔우드는 가슴이 먹먹했다.
부모님은 신혼인 노블 목사 내외와 함께 이 집에서 살았고 노블 목사의 딸이 태어날 때도 이 집에서 어머니가 출산을 도왔다고 한다. 청일 전쟁의 발발로 평양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날 저녁에 딸이 태어난 것이다.
셔우드는 소년 시절부터 노블 목사의 부인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인은 두 아이를 아주 어릴 때 잃었는데도 슬픔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의연한 모습과 후덕한 인격에 많은 힘을 얻었던 일이 기억났다.
“해주로 가기 전에 노블 목사님 내외분을 한 번 찾아뵙시다.”
생가를 다녀오면서 두 사람은 노블 목사 댁을 방문했다. 부인은 외출 중이었고 노블 목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메리언은 선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말씀해 달라고 하였다.
“돈이란 선교사가 되기 전까지는 개인 생활에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당신들의 생활에서 선교 사업을 위한 자금 외에는 돈이 차지하는 가치는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모든 선교사들의 기본 급료는 같아요. 두 사람은 의사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교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급료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전문의로 살아간다면 호화로운 생활을 하겠지만 어쩌면 이제는 미국 친구들이 보내주는 헌 옷도 고맙게 받아야 합니다.”
노블 목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경청하는 셔우드 부부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낮은 자세로 있을 때 병든 사람들이 치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가까워지게 할 수 있습니다. 진실하고 정직한 선교사가 되는 길은 항상 기도하며 처음 마음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입니다. 선교 사업이란 하나님을 위한 일이고 봉사하는 것이며 개인의 야심을 위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런 가운데 진정한 인생의 행복과 만족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블 목사는 이 밖에도 선교사들이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토록 진지한 조언은 선교사로 첫발을 내딛는 셔우드 부부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두 사람은 담대하게 선교지로 갈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1926년 6월 29일, 제물포에서 해주행 기선을 탔다. 배는 험한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섬 사이를 들락날락하며 항해했다.
해주에 도착하자 닥터 김은 홀 내외가 이 도시의 중요한 관리들을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방문하는 분마다 환대를 해주었다. 특히 황해도 박 지사는 소년 시절의 셔우드를 알고 있다며 반가워하였다. 일본인 경찰국장 사사키는 아내가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어 외로워하는데 메리언이 자신의 아내와 좋은 친구가 되어주길 부탁하였다. 그들을 사귀며 우정을 쌓았고 이 우정은 선교 사업뿐만 아니라 셔우드가 훗날 어려움을 당했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아직 짐을 채 풀기도 전인데 산부인과 병동에서 긴급히 메리언을 찾는 기별이 왔다. 메리언은 재빨리 청진기를 들고 달려갔다. 산기가 있는 임산부가 분만을 못하고 있었다. 태아가 잘못 나오고 있었다. 아기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한 메리언은 태아를 바로잡아 무사히 분만시켰다. 사내아이였다. 그 아이가 아들인 것은 메리언의 공로가 아닌데도 마치 메리언이 아들을 만들어 낸 것처럼 가족들은 고마워했다.
“서양에서 온 여자 의사가 아기를 잘 받아낸대요. 받는 아이마다 거의 아들이라네요!”
이러한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메리언은 아기를 낳는 곳마다 불려 다니느라 밤잠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기들은 주로 한밤중에 태어나는 아이가 많았다.
셔우드는 학교 일로 긴급 연락을 받았다. 남학교 교장직을 맡고 있는 그에게 교무부장이 와서 무단결근을 자주 하는 근무 태만한 교사를 당장 파면시켜 달라고 하였다. 집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교사를 파면시켜야 한다는 것은 정말 꺼림칙한 일이었다. 학교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며 지혜를 주시길 기도했다. 처음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교장으로서의 역량이 평가될 것이다.
교무실에 들어서자 무거운 분위기로 꽉 차 있었다. 교무주임의 얼굴은 화가 난 표정이었고 당사자 김 교사는 침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좋은 결말을 내리기란 몹시 힘들다.
“이런 분위기에서 새 교장을 대면하는 것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네요. 우선 차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셔우드는 부드러운 이야기를 하며 교무부장의 가족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아내와 네 명의 아들이 있다고 하였다. “그렇군요. 다복하시네요.” 하고 치하를 했다. 다음은 파면 대상인 교사의 가족 상황을 물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슬픔을 억제하기가 힘들어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아내가 폐병으로 죽었습니다. 지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같은 병에 걸렸는데 아이를 간호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최근에 결근을 자주 했습니다.”
“그렇다면 교무주임에게 어째서 그런 사정을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교무부장은 얼굴색이 조금 변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고조되었던 감정들이 수그러들고 모두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김 교사가 말을 이어갔다.
“교장선생님, 남쪽 사람들이 문둥병을 수치로 생각하는 것처럼(당시 남쪽 지방에는 나병환자가 많았다.) 북쪽 사람들은 폐병에 걸린 것을 수치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이 폐병에 걸려도 비밀로 하고 남에게 말을 할 수 없답니다.”
셔우드는 닥터 김에게 직원의 자녀이니 김 교사의 아들을 특별 병동에 입원시켜 주길 부탁했다. 닥터 김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병원 방침이 폐결핵 환자를 받을 수는 없지만 그 아이를 비어 있는 격리병동에 입원시키겠다고 하였다.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김 교사의 얼굴은 기쁨과 안도감으로 빛났으며 교무부장의 체면도 살아났다. 셔우드는 힘든 학교의 첫 번째 난관을 성공적으로 잘 통과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셔우드는 석유 등잔 앞에 앉아서 몇 사람의 지인들에게 간절한 편지를 썼다. 낮에 있었던 교사의 아들 같은 폐결핵 환자들을 위한 작은 병동을 지을 수 있는 자금을 모금하는 호소의 편지였다. 첫 번째의 업무가 자신이 늘 생각하던 폐결핵 환자를 위한 결핵요양소와 연관된 일이었지만 결핵요양소를 짓는 일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날 매리언과 함께 병원으로 출근했다. 난치병 환자부터 회진을 시작하였다. 첫날의 회진에서 의사로서의 많은 역량과 전문성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셔우드 부부는 청진기를 꺼내며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주님, 환자들의 병을 오진하지 않게 해 주시고 이 청진기로 환자의 병세를 정확하게 판단하게 도와주옵소서!”
셔우드 부부는 자신들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문득 직업상의 고독함을 느꼈다. 환자의 생명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고 여기에는 물어볼 선생님도 없고 의논할 의사들도 없다. 의료 기구도 충분하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환자들의 생사 여부가 그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에 작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따뜻한 소리가 있었다.
‘너희는 지금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도와주시고 함께 계시지 않느냐. 두려워하지 말거라!’
그 순간 셔우드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마음에 평안이 오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메리언의 얼굴에도 평안이 찾아왔다. 환자가 너무나 많아 메리언은 여자 환자와 어린이들을 맡았고 셔우드는 남자 환자를 맡았다.
어느 날, 밖이 소란해서 나가보니 호랑이에게 물려 심하게 다친 응급환자가 들것에 실려 왔다.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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