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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스쳐 지나는 전장속의 시간들 [2]

참전수기 / 최형윤 시인(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고성군지회 회원)

2023년 01월 19일(목) 10:34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고된 훈련을 무사히 마쳤으나 충원 주특기가 없어 보충대생활을 하게 되였다. 하루 일과는 외곽 무기고 경계업무가 고작이었으므로 자유로운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
이와 같은 병영생활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전우들 간에 곧 바로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서울토박이 강기배 전우와 많은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20년 이상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그 동안 살아온 과정,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근심스런 얘기를 나누곤 하였다.
때론 막사 뒤 한 편에서 막걸리 한 병을 가운데 놓고 쇼펜하워의 염세주의와 니체의 허무주의가 어떠하다는 등을 논하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젊은 우리들의 혼돈된 순간순간을 메워나갔다.
다른 전우들 보다 더 각별히 마음을 터놓고 지낸 그 전우는 “Think Twice(다시 한 번 더 생각하자)”란 말을 즐겨하였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만나보고 싶다.

이렇게 파병 명령을 기다리던 중 월남전이 확전되어 비둘기, 청룡, 맹호, 백마부대에 이어 새로 창설되는 십자성부대 요원으로 1966년10월9일 출병 명을 받았다.
훈련소를 출발하여 춘천에서 20시경 군용열차로 갈아탔다. 열차는 청량리에서 잠시 정차하였는데 참모총장 등 고위관계자들이 우리 객실에 올라와 격려 환송해 주었다.
환송식을 마친 열차는 기적을 울리며 남으로 남쪽으로 밤새 달려 내려와 이튼 날 오전 8시경 부산항 제3부두에 도착하였다.
파병 부대별 인원점검 등 승선절차를 모두 마치자 부산시민과 학생들의 열렬한 환송행사가 2시간정도 거행되었다. 환송행사를 뒤로 한 채 이역만리 전쟁터로 출항한 것은 오후 2시경이었다.
우리들이 승선한 이 수송선은 3만 톤급으로 2만 여명의 전우들이 타고 있다고 한다. 내부는 요즘 아파트 7~8층높이로 방마다 침대와 화장실이 있고, 식당, 영화관, 수영장 등은 일류호텔처럼 편의시설이 완벽하였다.
그 당시 처음으로 접한 화장실 좌변기는 너무 깨끗하고 이상하게 생긴 모양이어서 변기위에 쪼그리고 앉아 볼 일을 보았다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우리에게 제공되는 식사는 모두 양식이어서 식성에 맞지 않아 식사를 거르는 전우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말씀하시던 고향의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대한해협을 지나면서 파도가 높아지자 일부 전우들은 뱃멀미로 어려움을 격고 있었다. 이와 같은 망망대해 속의 높은 파도와 뱃전을 세차게 스치는 물결은 앞으로 전장에서 펼쳐질 많은 상황들을 예고하는듯하여 착잡한 심경을 가누기 어려웠다.
휴식시간 갑판에 올라서서 만경창파 속으로 뱃길 따라 피어나는 물보라와 무지개를 바라보니 문득 부산항을 떠나기 전 성대하게 치러 진 환송식장에서 꽃다발을 걸어 주면서 맑고 밝은 미소를 보내준 데레샤여고에 다닌다던 예쁘고 앳된 여학생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이곳 병영생활 기간 중 수차례 편지가 오고 갔으나 삶과 죽음의 교차선상인 전장에서 화염과 함께 기억 속에 멀어져 갔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의연한 대한민국 군인인지 자문해 보면서 결코 평탄치만 않았던 지나온 나날이 떠올랐다.
여섯 살 때인 어느 봄날 일곱 살 터울인 누나를 따라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뒷동산으로 가던 중 여우 한 마리를 만났다.
여우는 우리일행 앞을 지나가다가 “획” 돌아보고 몇 발자국 가다가 다시 “획” 돌아보는 것이 어떻게나 무서웠던지? 여우는 개를 무서워한다고 하여 “워리”, “워리” 하고 개를 부르며 여우를 쫓았던 일.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던 그해 가을 어느 날 하루 온 종일 계속되는 함포사격(후에 안 일이지만 서울 탈환을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전후하여 유엔군의 대대적인 작전 이었다고 함)으로 밥을 지을 수 없어 방공호 속에서 마른명태 몇 마리로 온 가족이 허기를 면하였던 전시상황.
1ㆍ4후퇴 당시 피난대열에 끼어 피난도중 잠자리가 없어 주인집 마구간(주택 본채 부엌 쪽에 붙어 있는 소 키우는 곳)위 다락에서 잠을 자다가 바닥에 떨어진 여동생.
피난생활 중 아홉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산수시간에 “2”자를 쓰지 못하여 옆 친구에게 써달라고 하던 어린시절.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수복되어 고향에 돌아 왔으나 불 타버린 집과 황폐한 마을.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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