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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스쳐 지나는 전장속의 시간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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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수기 / 최형윤 시인(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고성군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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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3월 10일(금) 08:18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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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베트남 근대역사는 우리와 아주 유사하다. 우리의 근대역사는 순조(조선 제23대 왕) 이후 심약한 군주가 연이어 등극하여 국력을 결집하지 못한 관계로 운양호사건(병자수호조약 1876년) 이후 세계열강에 대한 문호개방 등으로 왕권이 극도로 쇠약하여 을사늑약(1905년 11월 27일)으로 일본의 보호정치가 시작되었다. 급기야 한일합방조약공포(1910년 8월 29일)로 주권을 빼앗기고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36년 동안 치욕의 역사를 안고 있다.
베트남도 1884년 5월부터 1941년 9월까지 프랑스의 식민지 생활을 하였으며 그 후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세계 제2차대전의 종결로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국론분열로 17도선 북쪽은 호지명이 이끄는 공산주의와 남쪽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고딘디엠에 의거 베트남정부가 수립(1955년 10월 26일)되었다.
베트남 근대역사는 우리와 유사
불행하게도 베트남의 정치지도자는 자신의 정권유지와 영욕에 급급하다 보니 국력을 결집하지 못한 관계로 외국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멸망의 나락 속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우리와 베트남의 역사에서 보듯이 국가의 지도자가 자신의 영욕과 당리당약에 얽매어 국론을 결집하지 못하고 국태민안을 소홀히 한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와 현실 속에서 뼈저리게 보고 있지 않는가?
이면우 교수는 라는 저서에서 우리의 지도자 상을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를 보더라도 격동과 변혁의 시대, 나라와 겨레의 위기상황에서 걸출한 지도자를 배출하였으며, 이들은 자기를 잊는 희생정신과 솔선수범으로 존경을 받았고 그 시기 마다 밝은 전망과 포부를 국민들에게 제시함으로서 험난한 역경을 극복하였다.’
퀴논시 외곽에 주둔한 십자성부대 보충대로 이동하는 동안 야자수와 이름 모른 열대식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이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거리의 행인은 체구가 왜소하였으며,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무표정한 것은 아마도 전쟁 중이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머리에는 삿갓( 갈대 등으로 엮은 햇빛을 가리기 위한 모자)을 쓰고 있었으며 옷은 대부분 검정색으로 폭이 넓고 품이 넉넉한 중국풍의 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미혼 여성은 흰색 아오자이(월남고유 의상)를 많이 입었는데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이국 하늘아래서의 첫 날 밤은 보충대 천막 침대였다. 고국의 보충대와 달리 침구도 깨끗하고 분위기도 아주 좋았다. 보충대에서 청용을 지원하고 있는 츄라이 소재 100군수지원단 11대대 공정대로 배속명령을 받았다.
약간의 보급품을 지급 받은 후 군용기로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인 츄라이(퀴논에서 북쪽에 위치) 로 이동하게 되었다. 미군용 수송기이지만 이동수단이 비행기인 현실을 볼 때 외국 전쟁터에 온 것을 실감케 하였다. 생전 처음으로 탑승한 군용 수송기는 자동차 등 중장비를 운반할 수 있을 정도의 중량급 비행기였으나 흔들림이 배보다 더 심하여 어지러움을 느꼈다. 열대의 나라를 증명이나 하듯이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지상은 정글로 뒤덮인 푸름뿐 이였다.
츄라이 미 공군 기지에 안착할 무렵 인솔 장교의 “전임 파월장병들을 태운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하여 하강하는 도중 베트콩이 쏜 총탄이 비행기를 관통하면서 사병 한 사람이 이에 맞아 사망하였다”는 말이 첫 비행기 탑승의 호기심을 공포분위기로 확 바꾸어 놓았다.
밀림속으로 들어가니 부대가 있었다
미군용 비행장에는 우리를 수송할 차량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인원 점검을 마친 후 호송차량에 승차하였다. 우리를 이동시킬 차량은 중화기(LMG)로 무장하고 1개 분대병력이 앞뒤에서 호송하였다. 차량으로 한 시간정도 밀림 속으로 들어가니 우리들이 근무하게 될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고국에서의 병력이동은 주로 야간이었는데 이곳은 베트콩의 기습이 빈번하여 주간에만 실시한다고 한다.
부대에 도착하니 선임전우들이 우리 일행(10명)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들은 모두 얼굴이 구리 빛이었고 체구는 우람하며 광채가 나는 눈빛을 볼 때 전쟁터의 살벌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선임 전우들은 대부분 군 복무기간이 경과되어 귀국과 동시 전역한다고 하였다.
사실 베트남전은 게릴라전인 관계로 전후방이 없다고 하나 지역적인 여건으로 볼 때 우리 청용이 주둔하고 있는 이곳 츄라이 지역이 한국군 중에서 위험성이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하였다.
전입 신고식은 석식 후 개최하였는데 캔 맥주와 육회를 놓고 노래로 대신하였다. 고국에서의 얼차려 신고식 분위기와는 별 천지였다. 선임 전우들은 향수에 젖어 고국의 소식을 꼬치꼬치 물으며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명년 이때가 되면 나도 이러려니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우리부대는 한 가운데 우리들이 기거할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고 이곳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사무실이 있고, 콘센트에서 약 100m 외곽에는 높이 2m 정도로 둑을 쌓아 토치카를 설치하고 참호로 연결시켰으며 이곳에서 다시 100여 m 외곽에 3중 철조망을 설치하여 부대를 경비하고 있었다.
식사는 그 당시 고국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육류와 채소, 김치 등이 뷔페식으로 풍부하게 제공되었다. 특히 한달에 한번씩 교체되는 선후배의 송별과 환영식 때는 맥주와 푸짐한 안주가 제공되었다. 식수는 미군이 정수한 물을 운반 공급되고 제반 보급품이 여유 있게 지급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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