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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스쳐 지나는 전장속의 시간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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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수기 / 최형윤 시인(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고성군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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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4월 19일(수) 10:02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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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파월 후 첫 성탄절에는 전 부대원이 산타 할아버지의 모형과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고 외로움을 달랬지만, 이국 하늘아래서의 허전함은 메우지 못하였다.
휘영청 달 밝은 밤의 야간 경계근무는 20대 초반의 젊은이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밀림의 토치카 안에서 중화기(LMG)를 앞에 놓고 이름모를 풀벌레 울음소리와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잎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눈동자를 할 수 있는 대로 크게 하여 사주경계를 하다보면 어느새 어린시설을 보냈던 고향마을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사주경계 하다보면 고향 그리워
겨울철에는 마을 앞 얼음판에서 썰매와 팽이치기를 하고, 눈이 내릴 땐 뒷동산 할미봉에서 눈썰매를 타고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새 바지가랑이와 신발이 젖어 발이 시려 울 때면 누가 먼저라고 말할 것 없이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뛰어 내려오던 철없던 시절들.
여름이면 시냇가에서 벌거벗고 물장구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뛰어놀던 천진스러운 악동의 친구들 모습이 희미한 그림자처럼 나타났다가 지워지곤 한다.
수복 후 초등학교시절 이웃집 희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여 경쟁의식을 가졌으면서도 어느 봄날 우리 둘은 손잡고 뒷동산에 올라가 진달래를 한 아름 꺾어주며 애틋한 마음을 키웠었는데 어엿한 처녀가 되어 고향소식을 듬뿍 담아 보내준 수차례의 위문편지는 향수에 젖은 나를 달래주곤 하였다.
누구나 꿈 많은 어린 시절 한번쯤은 지워지지 않은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속 깊이 머금은 채 성숙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곳 병영생활에서 하루도 빠질 수 없는 것은 일과를 마무리할 무렵인 오후6시경 부대상공을 선회하는 정찰기로부터 애국가를 듣는 일이었다. 애국가를 듣고 있노라면 뭔가 마음이 뭉클하고 목 밑까지 치밀어 오르는 벅찬 가슴을 안고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숙연해지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끼곤 하였다.
어떠한 경우이든 누구나 고국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듣는 애국가는 막연하나마 나라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해본다.
약 3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 이곳에서 가장 많은 위문편지를 받았다. 그중에도 지금까지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어느 초등학생의 사연이었다.
충북 괴산군 증평읍 초등학교 5학년생 주인공은 소녀가장으로 생활수기가 지방지에 게재된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는 몸이 편치 않은 아버지와 어린 동생의 가장으로 생활이 아주 어려운 가운데서도 밝고 명랑하게 지내는 마음씨가 너무나 곱고 대견스러워 귀국할 때까지 작은 성원을 보내면서 서신 왕래가 있었다.
귀국 후 여유롭지 못한 나의 마음이 서로의 소식을 이어나가지 못하게 한 것 같아 못내 아쉽게 생각된다. 지금은 지천명의 나이로 우리사회의 중추적인 중년여인으로 소녀시설 슬프고 어려웠었던 환경을 극복하고 주어진 역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그녀의 앞날에 큰 영광이 있길 빌어본다.
베트콩과 월맹군은 이름 있는 날을 디데이(D-day)로 기습공격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연말연시, 구정 등이 그 한 예라하겠다.
파병생활 3개월이 경과되어 이곳 환경에 적응해 갈 무렵인 1967년 2월14일은 구정을 지난 6일째로 우리부대가 지원하고 있는 청룡 제11중대원이 월맹군 정예부대 1개 연대 병력을 무찌른 “짜빈동 전투”의 혁혁한 승전보가 언론매체를 타고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짜빈동 전투 한국군 명성 알려
우리부대에서 약 3㎞ 떨어진 짜빈동에 청룡 제11중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2월14일 새벽어둠을 틈타 월맹정규군 1개연대병력이 기습공격을 감행하였으나 중대장의 지혜로운 판단과 용맹스러운 중대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08시까지 근 5시간동안 용전분투한 결과 적 사살 200여명과 각종 병기노획 등 베트남 전사(戰史)상 가장 혁혁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 전투로 청룡 제11중대원 전원이 일 계급 특진하고 미대통령으로부터 부대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짜빈동 전투의 승리”는 우리 해병대의 용맹과 한국군 전체의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우기인 5월에 접어들면서 오후가 되면 매일 스콜이라 불리는 열대성 소나기가 한두 차례씩 쏟아져 어느 정도 더위가 가시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지만 7~8월이 되면서 한기를 느낄 정도의 장대 같은 소나기가 20여 일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져 온대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이 시기를 틈타 베트콩과 월맹군은 매년 대공세를 취해 왔음으로 공세기간 중 일주일에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근 1개월 동안 군화를 신은 채 새우잠으로 밤을 지새우곤 하였다. 이로 인해 양발에 악성무좀이 발병되어 40년이 다 되어가도록 치유되지 않아 지금도 여름철이 되면 상당한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늘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베트콩의 총알보다 더 진저리나는 모기, 졸음과 함께 벌이는 칠흑속의 전쟁인 경계근무는 우리를 더 어렵게 하였다. 우리가 왜 이곳에서 누구를 위해 싸우며 피를 흘려야 하는지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경계근무 중 가끔 밀려오는 상상의 나래가 자신뿐만 아니라 전우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다는 전장의 현실을 인식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 하여금 긴장과 혼 돈 속에 밤을 보내곤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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