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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부설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2023년 09월 25일(월) 09:22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8월 끝자락에 문화재단의 수강생들과 함께 ‘기억으로의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지역의 문화유산들을 탐방하는 형식이었다. 역사적인 장소나 기념물에는 이야기와 함께 묵은 시간의 지속적인 향기가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역사탐방은 무엇보다 그 향기와 만나는 일이어서 즐겁다.
우리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먼저 꼽을 수 있는 장소는 간성읍성이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읍성의 축성은 고려 덕종 2년(1033)으로 벌써 천년에 이른다. 읍성의 출입은 두 개의 문, 동서문(東·西門)으로만 가능했다. 서문은 지금의 7번 국도 상리 고개에, 동문은 하리 7번지 인근 도로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동서문은 1910년대 후반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현재 읍성은 대부분 훼손되고 멸실되어 일부 잔존물로 그 축성의 형태를 유추할 수 있는 정도다. 따라서 읍성의 온전한 복원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다만 일부 구간만 읍성길을 조성하여 이용하고 있다. 일행은 읍성에서 서남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 고성산(古城山)이 읍성을 향해 다가왔다. 일행이 고성산(古城山)을 주목한 것은 ‘남산(南山)’이란 별칭 때문이었다. 간성의 남산! 읍성보다 먼저 축성된 옛 성이 존재하는 요새의 땅이었다. 와우산(臥牛山)의 읍성길을 따라 걷다 보면, 추모공원과 함께 반공의거순국비(전쟁 이전 희생자)와 충혼탑(전쟁 희생자)을 만날 수 있고, 그 아래 18개의 선정비로 조성된 정원에 이른다. 이들 선정비는 주로 건봉사와 읍내에서 옮겨온 것들로 역대 군수들이 대부분이다. 문화유적은 그 사적의 기원과 더불어 장소적인 가치가 함께 평가받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전된 선정비는 기원을 상실한 채 빛바랜 비문만 희미하게 다가온다.

다시 탐방 일행이 옛 해상면 팔음리(해상리)와 육송정(六松亭) 터를 지나 탑고개(탑현리)를 넘어가니 천년고찰 금강산건봉사였다. 초입에 들풀과 자작나무숲을 돌보며 앉아 있는 사명대사의 동상은 외딴 부처 같다. 건봉사는 기록상(520)으로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최초에는 원각사(圓覺寺)에서 출발하여 서봉사(西鳳寺), 건봉사(乾鳳寺)로 이어졌다. 건봉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낙서암, 명부전, 극락전, 팔상전(적멸보궁), 보안원, 만일원, 등공대, 진영각, 어실각, 부도전과 사적비 등 여러 사적 및 전각들이 수천 칸(間) 규모로 공존하던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사명(송운)대사의 사적을 중심으로 탐방하였다. 가장 먼저 일행의 발길이 닿은 곳은 부도전이었다. 그곳은 수많은 고승들의 영혼이 깃든 장소다. 들꽃과 잡초가 무성한 만큼 처처에 다채로운 깨달음의 영혼들이 깨어나 일행을 반긴다. 특별히 고승들의 비가 좌우 감싸고 있는 건봉사사적비(1906) 앞에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옛길로 남아 있는 문수교를 지나 문수고개를 넘어 사명당의승병기념관, 사명대사기적비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췄다. 이곳에서 일행은 과연 건봉사에서 사명대사 사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함께 물었다. 그 물음은 ‘사명당의승병기념관’에서 시작되었다. 사명대사의 사적이 축소된 듯한 기념관의 이름은 마치 밀양 표충사의 부속관을 연상케 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기도 해서 마치 돌아앉은 돌부처 같은 인상을 준다. 한편 사명대사기적비(1800)는 본래 백화암 앞뜰에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 관료들에 의한 민족문화 지우기 정책으로 파손된 채 한동안 그 뜰에 방치되어 있었다. 새로 복원된 기적비(2017)라도 사람들의 눈길로부터 멀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백화암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산내암자로 사명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근처 장군샘은 대사의 향기가 흐르는 듯 여전히 물맛이 좋다.

이어 일행은 진신치아사리를 친견할 수 있는 보안원을 지나 적멸보궁으로 향했다. 친신치아사리는 사명대사의 건봉사사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건봉사의 12과 치아사리는 대사께서 임진왜란 직후 일본에서 되찾아온 것을 낙서암에 두었다가 팔상전 사리탑에 보관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1986년 건봉사가 군작전 통제구역인 상황에서 도굴단에 의하여 모두 도난당하였다. 지금은 8과만 회수되어 보관되고 있는 상태다.

한때 불이문 어귀에는 세조 임금을 비롯한 빈객들이 타고 온 말들이 말뚝에 매어있었을 풍경을 떠올리며 사하촌이었던 냉천마을을 빠져나와 노루목고개(獐項里)를 돌아 고읍 열산현(烈山縣)으로 향했다. 이 길은 명파 조제암(鳥啼庵)과 금강산, 또는 북고성으로 이어지는 샛길이었다.

열산현(산학리를 중심으로 현내면 일대)은 고구려 시대부터 승산현(僧山縣), 또는 소물달(所勿達)이란 고유지명을 얻었고 이어 신라에서 동산(童山)으로 일컫던 곳이다. 고려 초에 다시 열산으로 개칭한 이후 조선의 세종 이후 간성군에 병합되기까지 토착문화를 유지하던 지역이다. 전설에 따르면 열산현 원고을은 화진포 호수에 가라앉았다고 전한다. 그만큼 화진포와 열산현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공통유산이다. 열산현에도 옛 성터(古城山과 산학리 일대)가 남아 있다. 그곳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장소는 1708년 간성군수를 지낸 권익륭(權益隆)의 선정비였다. 그의 선정비는 왜 폐현(廢縣) 고을에 건립된 것일까. 아마도 폐현 이후의 열산관(烈山館)이 매개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볼 뿐이다.

마지막 일정은 화진포 일대의 고인돌(지석묘)과 별장지대의 흔적들을 살폈다. 화진포와 죽정리 일대는 고인돌이 산재해 있는 고대 유적지다. 그런데 여러 고인돌이 어떠한 안내 표지석 하나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고대 유적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에 스스로 부끄러웠다. 일행 모두가 탄식했다. 고성군의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 및 관리가 절실한 시점이다.

한편 별장지대로 알려진 화진포는 ‘김일성-이승만’이란 두 권력자의 이름으로 표상되기도 한다. 이처럼 화진포가 정치적인 색깔로 덧칠된 것은 1937년 일제(日帝)의 군사적인 결정에 따른 선교사들의 별장 이주로 시작되었다. 당시 조상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평온히 살아온 주민과 마을은 자기 터전을 잃고 떠나야만 했다. 유럽의 성을 재현했다는 ‘화진포의 성’도 결국 개인 별장이었다. 화진포의 별장지대는 장평리 원주민들의 고통을 머금고 있는 장소란 사실, 그 기원은 그동안 화진포의 아름다운 풍경에 묻히고 있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을 다시 소환하면서 여행은 마침표를 찍었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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