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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당정치의 이념 논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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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김정균 칼럼위원(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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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3일(수) 11:37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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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이러한 더불어민주당의 역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 1945년 건국준비위원회에 입당, 1947년에 한국민주당에 입당한 후 1954년 무소속으로 민의원에 출마함으로써 만30세에 정계에 입문하여 5번째 출마한 1961년에 민주당 후보로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5·16군사정변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고, 1963년 목포에서 민주당 후보로 두 번째로 당선되면서 그의 정치인생은 시작되었다.
1970년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5번의 죽을 고비(전쟁, 교통사고, 납치, 사형선고)를 넘겼고, 6년간 감옥에 있었고, 수십 년 동안 망명과 연금생활을 한 후 4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무려 27년이 걸렸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자랑스러운 정치인이자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쳐 투쟁한 인물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한편,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북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그 대가로서 햇볕정책을 명분으로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한 남한 내 친북 혹은 종북 세력의 대부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의 대통령에의 도전은 이승만,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독재, 또는 반정부 활동의 과정으로서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과 손을 잡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부터 시작되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 했던가. 제일 먼저 박정희 정권에 가장 적대적이었던 김일성,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사후에는 김정일이 그의 가장 큰 아군이었다. 한편, 김일성과 김정일은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인 “온 사회의 주체 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한반도의 공산화)하기 위해 ”전 조선의 각계각층 애국적 민주역량들과의 통일전선”(북한의 노동당 규약에 명시)을 구축하는데 김대중을 필요로 하였다. 그래서 “김일성의 꿈은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해방 이후 좌익 활동세력과 깊은 연계를 가지고 활동을 하였으며, 1967년 목포 국회의원 선거 때 김일성으로부터의 엄청난 정치자금을 지원받고 통혁당 창당에 깊이 관여한 3명의 남파간첩으로부터의 선거활동 지원(사무장, 홍보부장, 재정부장), 1971년 대통령 후보 때 김일성이 보내온 20만 달러를 포함하여 해외망명의 긴 세월동안 대통령이 되기까지 김일성·김정일로부터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국제저널리스트 손충무 저서 「김일성의 꿈은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인용).
그리고 그 대가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햇볕정책이라는 명분으로 평양 정상회담의 대가 4억 5천만달러(박지원 유죄 확정), 노벨평화상 로비과정에서 15억 달러, 금강산관광을 위한 10억 달러 등 2008년까지 10년간 통계에 잡히는 대북 지원만 해도 80억 달러(전 국정원 직원 김기상 저서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 인용)를 퍼부으면서 북한의 핵개발과 체제유지에 기여하였다.
북한의 최고의 주체사상 이론가이며 김일성대 총장, 최고인민회의 위원장을 지내다가 한국으로 망명했던 황장엽씨는 “지속된 식량난으로 존립위기에 몰린 북한체제를 김대중 정부가 살렸다”고 생전 증언을 한 바가 있듯이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한 북한에 보답을 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김대중은 미국과 일본에서는 반정부 단체인 한민통(한국민족회복통일촉진위원회)을 설립하고, 북한을 추종하는 해외인사와 북한 정권의 내부인사들과도 접촉하여 반정부 활동을 하였다. 국내에서는 북한의 남파간첩이 창당한 이적단체인 통일혁명당에 관여하면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설립하고, 386운동권, 주사파 등의 반독재 지지 세력을 규합하였다.
통일혁명당(統一革命黨, 약칭 통혁당)은 북한노동당의 실질적인 재남지하당(在南地下黨) 조직으로서 그 지도이념은 주체사상으로서 최고의 목적을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철폐에 둔 단체이다.
통혁당 사건은 독재정권 시대에 정권이 고문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조작사건들과는 달리 확실하게 실체가 있는 사건으로서 158명이 검거되어 50명의 구속자를 낸 60년대 최대의 공안사건이었다. 이들은 전 남로당원·혁신적 지식인·학생·청년 등을 대량 포섭하여 결정적 시기가 오면 무장봉기하여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정부전복을 기도하려다가 일망타진되었으며, 71년에는 재건운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386 운동권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정부·반독재운동을 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한 세력들을 말한다. 현재는 586세대, 즉 50대의 운동권 출신을 말한다. 이 운동권은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적 영향을 받아 남한 혁명의 주도권을 노동계급이 쥐어야 한다고 하는 민중민주파(People’s Democracy Faction; PD), 우리나라를 반봉건사회이며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간주하고 남한을 먼저 해방시켜야 한다는 민족해방파(national liberation; NL)로 크게 나누어지며, 이러한 민족해방파의 한 분파가 주사파로서 이들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과 행동지침으로 하고 북한의 남한혁명노선인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론을 추종하는 세력이다.
주체사상은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의 기초가 되는 유일한 통치이념으로서 김일성의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채택되었으며,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고 더욱 발전시켰다.
우리의 헌법격인 북한의 노동당 규약 전문을 보면 주체사상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 수 있게 한다. “…조선 노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조선 노동당은…노농동맹을 기초로 한 전조선의 각계각층 애국적 민주역량들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북한은 한반도의 주체사상화와 공산화를 최종목적으로 남한 내의 애국적 민주역량들과의 통일전선을 구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애국적 민주역량들이 바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주사파인 것이다. 그래서 김문수 위원장이 주사파출신인 윤건형 의원을 김일성주의자로서 김일성에게 충성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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