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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스쳐 지나는 전장속의 시간들[1]

참전수기 / 최형윤 시인(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고성군지회 회원)

2022년 12월 09일(금) 14:20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비상! 비상!
“전 대원은 완전무장을 하고 자신의 벙커에서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라.”
때는 1966년 10월19일 깊은 잠에 빠져 고향 꿈을 꾸고 있는 새벽 2시경이었다.
적막을 깨드리는 불침번의 조용하고 긴장된 목소리에 어떤 상황임을 직감하고 방탄조끼를 입고 자동소총(SMG)과 수류탄을 휴대하고 벙커 정위치에 들어갔을 때는 밤하늘은 조명탄 불빛으로 한 낮같이 밝아 있었다.
우리 부대에서 약 300m 인근에 주둔한 아군부대에 베트콩의 기습으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야간경계 근무자가 어둠을 틈타 외곽에서 기습하는 베트콩을 먼저 발견하여 별다른 피해 없이 격퇴하였으나, 나의 월남 파병생활은 처음부터 이렇게 공포와 긴장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필자는 1965년 11월 17일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제2 훈련소에 입소하였다. 그 당시 훈련소는 열악한 환경, 엄격한 규율, 고된 훈련과 얼차려의 연속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젊음을 상징하는 인생여정의 멋진 한 과정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훈련을 마치고 서울 외곽 건설공병단에 배속되어 근무하던 중 베트남 참전 병으로 차출되었다. 파병요원으로 차출된 후 일주일 동안은 불침번 열외는 물론 식사도 선임자와 함께하는 등 일병계급으론 처음 받는 대우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초창기 파월을 기피하였으므로 혹 명예롭지 못한 상황이 발생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 부대장이 지시하였다고 한다.
강원도 화천군 오움리에 소재한 베트남파병 훈련소에 전속된 것은 1966년 6월 중순 경이였다. 훈련소에서는 실전에 대응하기 위해 야간사격, 독도법, 유격, 담력 키우기 등 주야간 고된 훈련이 계속되었다. 훈련기간 중 중대교육훈련담당 사병으로 보직을 받았다.
어느 날 중대장으로부터 전 중대원을 지정된 장소에 이동시키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독도법미숙으로 지정된 장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부대를 이동시켰다. 한 사병의 업무미숙이 전 중대원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중대장의 호된 질책은 지금도 생생하게 귓전을 때린다.

↑↑ 월남전 당시 현장에서 동료들과 찍은 사진. 사진 왼쪽이 필자.

ⓒ 강원고성신문

3일을 앞두고 아버지께서 면회를 오셨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심정에서 자식 놈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려고 오셨다고 한다. 부대 앞 민가에서 외박을 하며 부자지간에 처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온 밤을 지새웠다.
당시 지천명이신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온갖 수난을 당하셨으며, 일본의 패망과 동시 광복은 맞이하였으나 거주지(강원도 고성군)가 38도선 이북으로 공산치하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공산치하의 5년 동안은 공출(현물로 납부하는 세금)을 일제시대보다 더 가혹하게 거두어 들여 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또한 6.25전쟁이 발발하던 그 해 추석 전 날밤 퇴각하는 인민군에게 피랍돼 3일 동안 원산까지 갔으나 다시 북으로 퇴각하던 중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 탈출하여 2일 만에 귀가하였다.
그 후 단신 남으로 피난길을 떠나 강릉 정동진까지 내려갔으나 그 곳에서 북진하는 국군에게 징용되어 노역에 종사하게 되었다. 아군을 따라 대관령에서 향로봉까지 북진하는 3개월 동안은 빗발치는 듯한 총탄 속에 아군진지(계곡, 때론 능선꼭대기)까지 식사(주먹밥)와 실탄 등 무기를 등에 지고 운반하다보면 현역보다 더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겼다. 설악산 대청봉과 향로봉 부근에서는 시체를 밟고 넘어갈 정도로 피아간 전투가 치열하고 처절하게 전개되는 장면도 목격하였단다.
전장(戰場)의 처절함을 이미 목격한 아버지께서는 풍족하지 않아도 부모형제와 모두 오손도손 정답게 사는 것이 우리의 소박한 꿈이 아니겠느냐며 말씀하셨다.
마땅히 명령에 따르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기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외국의 문물을 접하는 기회가 흔치 않았으므로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파병하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근심어린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무언가 복받치는 듯한 가슴을 안고 무거운 발길을 부대로 옮겼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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