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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불사신 김응렬 장군을 추모하며

‘호국보훈의 달’ 특별기고 / 신준수 전 육군본부 부관감실 총무과장(예비역 중령)

2024년 06월 12일(수) 07:49 [강원고성신문]

 

↑↑ 신준수 전 육군본부 부관감실 총무과장

ⓒ 강원고성신문

고성 출신 김응렬 장군은 옷깃을 여미게 하는 현충일에 새삼 생각나는 분으로 지난 3월 5일 국립대전현충원 충혼당 114실에 안치되셨다. 주요 방송과 신문에서는 “고성 출신 김응렬 전 2군단장 별세(94세), 중국(당시 중공) 민항기 춘천 미군 비행장 불시착 사건 때 단독 협상”이라고 크게 보도하였다.

대통령께서 하사한 조화 등 각계 인사들도 예의를 표했고, 장례식 추도사는 “하늘에선 큰 별 하나가 떨어지고, 땅에선 큰 사람 하나 승천하셨다”, “수려한 용모에 과묵하고 인자한 성품은 많은 이들이 우러러 칭송한다”라고 애도했다. 함께 근무했던 부하들의 말에 의하면 자신을 과시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성품이라 한다.

민항기 불시착 사건 단독 협상

일제 강점기인 1928년 금강산, 해금강 푸른 동해와 약초 해방풍이 자생하는 해변의 작은 농촌 송현리에서 태어났다. 조선왕조 사육신의 후손으로 이곳에 귀양되어 정착한 뼈대 있는 가문이다.

학력은 고성공립고등보통학교를 마친 후 일본 육군 유년학교에 합격했으나, 사촌형이 3.1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한 요시찰 가정으로 낙방되어 함경북도 아오지에 있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회사의 견습기사로 일했다. 1944년 중국에 있던 일본군 예비사관학교를 나와 몽골 부근에서 근무를 하다가 해방이 되어 38선 이북에 있던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1947년 말 노동당 간부들의 등살을 못 참고 단신 월남했다.

1948년 조선경비대(국군의 전신) 제7연대에 이등병으로 입대해 하사관 교육대를 수료한 후 이등중사로 6.25한국전쟁을 맞아 초기 지연작전인 춘천대첩에서 특공조장으로 적과 싸웠다. 충북 음성 무극리 대첩에서도 큰 전과를 올려 부대 전원이 특별 진급되어 일등중사로 승진했다. 1950년 9월17일 보병사관 1기로 육군 소위로 임관, 전투 중 2차례에 걸쳐 부상을 당하면서도 오직 말단 소총중대장으로 최초 38선을 돌파한 3사단(백골사단) 22연대 5중대장 대리로서 동해안 진격작전의 최선봉에 섰다.

포항, 강릉, 양양, 간성, 고성, 함흥, 길주, 백암산 전투에서 수많은 북한군과 중공군을 무찔렀다. 눈 내리는 함북 길주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수도사단과 3사단의 철수를 8시간 동안 엄호하라는 중대에 떨어진 죽음의 명령인데 기적같이 해냈다. 아비규환의 성진항구에서 수많은 피난민들과 미군 함정(LST)을 타고 무사히 부산에 내렸다. 그 공로가 인정되어서 1950년 12월에 4등급인 금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1952년 10월에는 최전선 강원 화천 소토구미에 있던 5군단 사령부 연병장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동해안 진격작전·백암전투·원산탈환작전 등에서의 전공으로 무공훈장 2등급인 무성을지무공훈장을 직접 달아주는 최고의 영광을 안았다. 이날 프란체스카 영부인의 격려도 받았다.

조선왕조 4대 사찰 중에 하나인 금강산 건봉사와는 어릴 적부터 인연이 깊은데 백부께서 경도불교 전문대학을 졸업해서 가끔 따라갔고, 12살 인민학교 때 건봉사에 소풍을 갔다고 한다. 또한 중대장 근무 때는 건봉사에서 1개월 간 방어전투를 하면서 주둔지로 활용하여 사찰 주변의 골짜기까지 잘 안 다고 했다. 이때부터 불교에 대한 확실한 종교관이 내면화된 것이다.


↑↑ 지난 3월 5일 국립대전현충원 충혼당 114실에 안치되신 고 김응열 장군의 생전 모습.

ⓒ 강원고성신문

휴전 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성심을 다했지만 직속상관과 악연으로 제대를 하려고 월남전에 참전했는데 채명신 주월사령관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아 마지막 차에 대령으로 승진하였다. 진인사 대천명으로 남다른 특유의 성실함과 강직한 성품을 인정받아 1974년 1월 1일 준장으로 승진되었고 욱군대학 교수부장, 육군36사단장, 육본 인사참모부장, 육군대학총장, 제2군단장, 육군교육사령관을 지낸 뒤 1986년 1월 예비역 3성 장군으로 38년간 복무를 마쳤다.

2군단장이던 1983년 5월 5일 납치범 6명이 중국 민항기를 납치해 대만으로 비행을 요구하였다. 춘천 미군기지인 캠프페이지에 불시착했을 때 비무장 상태로 통역관 1명, 연합사 작전참모 1명과 함께 비행기 안에 들어가 3차례 협상을 벌인 끝에 탑승객 105명 전원을 무사히 경찰에 인계, 돌려보냈다. 이에 대한 답례로 중화인민공화국은 사건 다음 해(1984년) 공산국가로는 처음으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참가를 선언했다.

6.25 때 38선 최초 돌파

이처럼 군복무를 다양한 신분으로 경험하였고 지뢰밭인 전쟁터를 누비면서 기적같이 살아남은 불사신이다. 제대 후 1989년도에 6.25참전 수기 ‘소총중대장’ 책자를 냈는데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에서 전 부대에 배포했다. 필자도 밑줄을 그어가면서 감명 깊게 읽었다.

먼저 가신 전우들에게는 참회록으로, 후배들에게는 참혹한 전장터의 실상을 교훈으로 남겼고 남다른 겸양과 자기 절제를 하면서도 부정부패와 불의에는 결연히 맞서는 청렴결백함과 강직함은 조상 사육신의 DNA를 이어받았다. 남다른 충성심과 전투 지휘를 하다 보니 적진에 먼저 들어갔고, 통신 두절로 독단전투를 주로 하였으며 엄호부대로서 맨 나중에 나올 때가 많았다. 그 시대 군인으로서는 드물게 ‘지휘심리와 통솔’, ‘군대와 윤리’ 등 7권의 저서를 남길 정도로 학구파이며 근검, 절약과 술·담배는 하지 않는 등 몸에 밴 구도자의 생활을 실천했다.

대한민국은 6.25한국전쟁 이후 잿더미 상태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 및 군사 강국이 되어 세계가 부러워하는 K-르네상스(문예부흥) 전성시대를 맞았다.
세계는 몹시 위태롭고 동북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정세가 매우 불안하다. 북한은 여전히 핵을 포기하지 않고 미사일 발사와 오물풍선 투기 등 적화 야욕은 변함이 없으니 결국 9.19 남북협의서도 폐기되었다. 국내 문제도 당파 싸움, 분열과 갈등으로 내전에 가까운 총체적 난국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생·화합으로 뭉쳐야 산다.

요즘 어른다운 어른이 없고 큰 바위 같은 롤-모델이 부재한 실정에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고 있다. 장군이 남기신 6.25참전 수기 ‘소총중대장’은 통수권자인 대통령부터 이등병은 물론 자영업자 등 전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명작이라 생각하면서 국가보훈부와 지자체에 청원한다.

↑↑ 김응열 장군은 제대 후 1989년도에 6.25참전 수기 ‘소총중대장’ 책자를 냈는데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에서 전 부대에 배포했다.

ⓒ 강원고성신문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을지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호국영웅을 319명이 안치된 국립대전현충원 납골당에 모실 게 아니다. 앞으로는 후배 군인들이 현장을 찾아 가슴에 깊게 새기게 하기 위해서는 무공훈장 수훈자의 안장 문제를 개선하여 비석이 새겨진 자연장에 모셔야겠다.

호국의 성지 고성통일전망대 부근에 김응렬 장군의 태 버린 고향 마을에 불굴의 투철한 정신과 혼백이 서린 유품, 저서, 사진 등을 모셔 오자. 38선을 최초로 돌파하여 7번 국도와 동해북부선이 놓인 간성을 회복했을 때 고향 친구들의 환대와 부모님과 짧은 상봉을 뒤로하고 함경도 원산, 함흥, 길주, 무산까지 북진 공격한 3사단 22연대 5중대장대리 김응렬 중위의 위대한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특히나 눈 내리는 함경북도 성진부두에서 미군 LST를 타고 부산항에 오신 피난민 1세대와 후손들께서도 고성 출신 불사신의 숭고한 정신만이라도 고향땅에 모셔 와 관광객들에게 알려야겠다. 이것이 진정한 강원특별자치도민으로서의 위상과 자부심 그리고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관광객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슴에 남게 한다면 ‘인간성 회복’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많은 관광객이 북한 땅과 금강산만 볼 게 아니라 한(恨) 많은 수복지역 고성을 율곡부대와 함께 지킬 『호국의 불사신 김응렬 기념실』 조성을 청원 드린다. 금번 김장군님의 저서와 병적기록 확인을 적극 도와주신 육본 인사사령부 인사행정처와 육군교육사령부 지휘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전국 제일의 행복한 강원특별자치도와 고성특별자치군이 되길 소망하면서 호국의 불사신 김응렬 장군님 등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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