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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시대 100년의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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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발견과 상처의 역사
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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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2일(수) 07:54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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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화진포(열산호)는 예로부터 열산현(烈山縣)의 읍치가 시작된 곳으로 민간에 전승되고 있다. 고읍은 물밑에 가라앉아 달빛을 타고 그 옛 모습이 비춰진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당대의 식자나 풍류객들이 넘나들던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 이곳에는 이승만 별장을 비롯하여 소위 ‘김일성 별장’이라고도 알려진 ‘화진포의 성’(셔우드 홀의 별장)이 있다.
이처럼 남북한의 상징적인 인물들의 별장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진포는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화진포가 별장지대로 등장한 배경은 무엇인가. 또한 유한절승(幽閒絶勝)의 처녀호가 생면부지의 외인(外人)의 호화로운 별장지로 변신한 가운데 깊게 파인 상처는 무엇인가.
화진포가 별장지대로 등장한 배경은
조선에서 서양인의 별장지대가 형성된 시기는 일제강점기부터다. 1910년대 초 원산 명사십리 해변에 서양인 해수욕장이 처음 개설되었다. 당시 ‘갈마의 외인촌’ 등으로 불러진 서양인 별장지대가 형성되었고, 이후 그 일대에 일본인 해수욕장, 조선인 해수욕장이 차례로 개설, 운영되었다.
한편 1930년대 일본은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면서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조선이 일본의 대륙침략의 기지로 활용되면서 원산 갈마반도의 명사십리 일대는 군사용 비행장으로 전용되었다. 이에 따라 1937년 명사십리 별장지대는 새로운 정착지로 이동하였다. ‘화진포의 발견’은 이러한 군사적인 고려에 따른 대안적 장소의 선택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화진포의 서양인 별장지대다.
화진포 별장지대가 형성된 시기는 1938년이다. 당시 별장지로 선정된 화진포 일대는 ‘오대면 장평리’라는 작은 어촌마을이 존재하고 있었다. 화진포가 서양인 별장지로 선정되자 장평리 마을은 강제이주가 불가피했다. ‘개딱지 같은’ 마을의 평화는 갑자기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삶의 터전인 정든 고향땅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심정이며, 대대로 묻힌 조상들의 묘까지 파묘당하는 지경까지 이르니 ‘뿌리가 뽑히는’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오대면(후에 거진면으로 변경)사무소에서 마을 묘지 이전을 추진했다. 이처럼 무구한 백성의 삶을 파내고 ‘서양인의 호화로운 여름 별장’을 지었으니 개발의 폭력이 아닐 수 없었다.
당국에서는 300여 호의 별장을 건설한다는 계획까지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실제로는 70여 호의 별장을 건설하였다. 당시 이주자는 250여 명이었다고 한다. 국적별로는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으로 거의 백인들이었다. 그들의 주요 활동지는 간도를 비롯하여 함경도 회령, 함흥, 원산, 그리고 서울, 평양, 대구 등 전선각지(全鮮各地)에서 모여들었다. 그들이 조선에서 활동하는 영역을 보면 목사, 의사, 전도사, 교수 등 다양했다. 이들은 여름 한철(7, 8월) 화진포 별장에서 휴식을 즐기다 떠났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곳을 ‘서양인 별장지(촌)’, ‘화진포 외인부락’, ‘ 외국인 별장지대’ 등으로 불렀다.
이렇듯 서양인 별장지대의 화진포로의 이전은 고성지역 주민은 물론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화제의 사건이었다. 당시만 해도 서양인은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들을 지칭하는 ‘벽안고비(碧眼高鼻)’란 말이 지역에서 회자되는 등 별장지대의 풍경은 곳곳에서 큰 화젯거리로 등장했다.
70여 호 별장 … 이주자 250여 명
화진포 별장지가 결정된 직후 지역 언론인의 한탄은 이렇다. “인연 깊고 정실 두터운 우리 부형자매들은 어이없는 유력자의 점거에 패배되어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잃고 따뜻한 모태를 떠나 구슬픈 소리로 ‘花浦야 잘잇거라 나는 간다’하고 눈물겨운 노래를 남겨두고 어데론가 가지 않으면 아니 될 운명이란 말이드냐?”
이뿐인가! “양코들이 원산 명사십리에서 별장을 떠가지고 화진포 호변으로 와서 개딱지 같은 어촌을 씨러버린 후 날러갈뜻한 층층집을 짓고 히히낙낙거린다는 것이다.”
위의 문장만큼 당시 화진포 별장의 탄생을 적절히 꼬집는 말은 없을 듯하다. 관련 글은 화진포 별장이 형성된 1938년 한 언론인이 동해북부선 원산행 기차 안에서 포착한 민심을 전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화진포 별장지대는 이별과 상처의 역사와 더불어 탄생했다. ‘모든 문명은 야만의 역사를 품고 있다’는 철학자의 혜안이, ‘풍경이 기원을 지운다’는 철학적 명제가 우리 앞에 다가오는 순간이다. 모든 찬란한 문명이 그 야만을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은 풍경이 기원을 없애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오늘 화진포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 아픈 기억과 상처를 호수 아래로 깊이 묻어두고 있다. 그래서 ‘맑은 날에만 그 담장과 지붕이 살짝 드러나는’ 법이다. 그 맑은 날이 아니면 우리는 진실과 대면할 수 없다. 지금 누가 화진포의 아름다운 풍경에서 그 아픈 기억과 상처를 만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삶의 흔적은 대체로 상처로 얼룩져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삶의 풍경은 그 상처(기원)를 숨긴다. 그렇기에 우리가 상처를 기억하는 일에는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기원을 살피는 일일 것이다.
한편 우리는 대체로 기억으로 사물을 본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사물은 온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고성의 문화유산이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도 우리의 기억에 따라 다른 사물로 현현한다. 그런 점에서 공통 기억의 공유는 중요한 지역의 자산이다. 상처의 역사도 지역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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