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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시대 100년의 이야기(5)

-배움의 전통을 수립한 환대의 장소 : 건봉사 봉명·봉림학교, 수성학원, 선혜학원
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2024년 10월 10일(목) 08:52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전통적으로 교육은 교사와 부모가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한다. 이처럼 세대 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배움은 시작된다. 요즘 평생교육의 이념이 도입되면서 배움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속되는 인간행위로 확장되었다. 한편 근대교육이 국가의 책무로 등장하면서 ‘학교’라는 교육장소가 주목을 받아 왔다. 아동들에게 학교의 경험은 평생을 지배하기도 한다. 또한 학교는 배려나 환대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통제와 소외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럼, 우리 고성군의 역사에서 배움의 전통을 수립한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학교이면서 ‘환대의 장소’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학교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먼저 건봉사의 봉명학교(鳳鳴學校)와 봉림학교(鳳林學校)를 소개한다. 건봉사 경내에 설립된 봉명·봉림학교는 대표적인 근대 사립학교다. 특히 봉명학교는 1906년에 설립된 간성군 최초의 근대 사립보통학교다. 입학생은 사찰의 자제와 간성 등 지역의 청소년들이었다. 설립 이듬해 팔음리(해상리) 들판에서 열린 운동회 때는 모인 사람이 3천명이었다 하니 지역의 관심을 독차지했던 학교였다. 봉명학교는 설립 취지문에서 유불선(儒佛仙) 3도의 전통이 외세의 침략에는 허약하여 주권을 상실한 국민이 되었음을 한탄하며 신학문을 통한 인재양성을 목표로 하고 독립정신을 고취한다는 내용을 표방하였다. 이러한 취지를 살려 봉명학교는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는 민족교육의 산실이 되었다.
1921년에 설립된 봉림학교는 고성군에서 고등보통과(중등)를 최초로 신설한 사립학교다. 따라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상급학교였으며, 아울러 초등보통과도 함께 운영하는 혼합제 교육과정의 학교였다. 첫 해 두 과에서 200명을 모집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의 교육을 철저히 통제하였다. 총독부가 인가하는 공립보통학교는 1912년에 처음 1군(郡) 1교(校)[간성공립보통학교]로 시작하여 고성군 시대 원년(1919)부터 3면(面) 1교(校)의 정책이 실시되었고, 1930년대가 돼서야 1면(面) 1교(校)의 정책이 완료될 정도였다. 이러한 사정은 일제의 공립보통학교만으로 지역 아동들의 교육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1906년 당시 전통적인 유교의 서당이나 가숙(家塾) 교육에 의존하던 우리 지역에서 건봉사가 처음으로 신학문을 배울 수 있는 봉명학교를 설립한 것은 우리 지역 교육운동의 기원으로 기록된다. 또한 3·1독립만세운동 이후 민족의 각성과 더불어 실력양성운동이 활발해지고, 보통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지역인재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는 건봉사 스님들의 사려 깊은 배려로 설립된 학교가 봉림학교였다.

한편 3·1독립만세운동 직후인 1921년 말 간성에서는 독립운동가 박태선의 주도로 수성(䢘城)청년회가 조직되었다. 박태선은 초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간성면 하리에 수성학원(䢘城學院)을 설립(1922)하였다. 이 학교의 설립 배경은 간성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미취학아동들이 넘쳐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청년회가 학교의 설립을 주도한 것이다. 수성학원은 보통학교 4년의 과정을 2년에 수료할 수 있는 속성 교육과정을 운영하였다. 처음 입학생의 모집에 120여 명이 몰려들어 간성면장이 부속건물을 제공하였으며, 독립된 교사를 건축하기 위하여 의연금을 모집하는 등 지역 아동들을 위한 배려가 잇따랐다. 특히 교사 박태선은 학생 40명을 인솔하여 6일간 금강산 수학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당시 교통이 불편했던 점과 금강산 여행이 지역주민에게 아직 낯선 시절을 감안하면 모험적인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교사 박태선은 남다른 열정으로 작은 학원을 환대의 빛으로 물들였다.
또한 간성지역에서 수성학원의 설립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우선 ‘수성(䢘城)’이란 교명과 청년회의 명칭이 간성의 고구려 지명이란 점이다. 또한 청년회의 창립과 학원의 설립의 시기가 간성군이 고성군으로 개칭되고 군청마저 (북)고성으로 이전한 직후란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간성군에서 고성군 시대로 전환되는 시점에 간성의 청년들은 고구려의 역사성(민족성)과 수성인(䢘城人)으로서의 정체성을 깊게 고민했다는 것이다. 이후 수성학원이 폐교(1924)되자 교사 박태선은 독립운동의 길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또 하나의 환대의 장소는 어딜까. 고성지역은 전쟁이 남긴 상처가 더없이 깊은 곳이다. 그야말로 폐허 그 자체였다. 특히 인민공화국에서 대한민국으로 통치권이 교체되면서 인구이동이 극심한 편차를 보였던 지역이다. 북으로 넘어간 사람들도 많았고, 남으로 피난해 온 사람들도 많았다. 이렇듯 상처받은 자들이 넘쳐났고, 특히 어린이들은 학교가 유일한 환대의 장소였기에 무작정 학교를 찾았다. 그래서 피난시기와 이후, 학교는 늘 만원이었다.
‘수복된’ 고성지역의 주요 시설은 모두 국군의 도움으로 복구되었다. 학교는 우선적인 배려의 장소였다. 곳곳에 학교가 복구되었지만, 산간벽지에는 교육의 손길이 닿지 못했다. 학교가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가족 생존의 현장에 매몰되었다. 그렇게 배려 받지 못한 소외의 땅에서 탄생한 학교가 선혜학원이었다.
선혜학원은 1962년 2월 1일 고성군 간성면 탑동리(2리) ‘선유실(소천동, 쇠종골, 소정골 등으로도 명명됨)’ 5가구가 모여 사는 산밑 동네의 작은 공부방이었다. 학생들은 5리, 10리씩 떨어져 산다. 이 학교는 이화여자대학교의 농촌계몽대 소속 이혜숙이라는 졸업생이 교사로 자원하면서 그 역사가 개시되었다. 선혜학원(仙惠學院)의 작명도 선유실(仙遊室) 마을과 이혜숙(李惠淑)의 이름에서 나왔다. 개교 당시 학생은 25명, 교실은 마을 사람이 내준 지붕과 처마가 머리에 닿는 초가집의 방 한 칸, 운동장이라야 ‘개와 닭이 함께 뛰노는 손바닥만 한 마당’이 전부였다. 해방 이전까지 작은 마을의 서당이나 학원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선혜학원은 설립 직후 신문에 보도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미국공보원에서는 ‘두메의 등불’이란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했다. 고성군청은 물론 각지의 의연금이 답지하면서 설립의 해 10월에 교사를 신축하여 800평의 마을 기부의 땅과 6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실 하나와 부속실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화여대에서는 개교 이듬해에 재학생 및 졸업생이 중심이 되어 ‘횃불회’라는 후원회를 조직하여 선혜학원의 재정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어 1970년 고성군교육청에서 학교를 인수하여 ‘간성초등학교 선혜분교’로 전환하여 운영하였다. 이제 선혜학원은 한 농촌계몽대원의 열정으로 꽃핀 배움의 전설, 환대의 장소에서 국가의 공식적인 교육체계로 편입되었다. 선혜분교는 이후 꾸준히 양적 발전을 도모하기도 하였으나 1990년에 아동수의 감소로 폐교되어 흔적조차 없는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건봉사 봉명·봉림학교, 수성학원, 선혜학원! 고성지역에서 배움의 전통을 수립하고 이어온 학교들이다. 세 학교의 공통점은 사립학교란 점이다. 시대를 각성한 스님들, 독립운동에 뜻을 둔 청년들, 농촌계몽대에 몸담은 여대 졸업생이 설립한 학교다. 그래서 이들 학교는 설립배경에 얽힌 이야기가 특별하다. 학교마다 자기만의 서사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환대의 장소로 꼽아도 좋은 학교들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학교는 어떤 모습인가. 최근 교사의 자살사태로 학교가 뒤숭숭했다. 학교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도 상당하다. 교사의 권위는 바닥으로 기운 것 같고, 학교 밖 정보는 넘쳐난다. ‘교육을 환대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냉소하지 말자. 배움은 지속된다. 어디든 배움의 장소는 환대의 장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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