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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위기 느낀 주민들 소통하며 어려움 돌파 노력

고성신문 연중기획 / 마을을 찾아서① 흘리
"스키장 고집 말고 새로운 지역발전 사업 나서야"
어질고 지혜로운 지도자에 대한 그리움 '진부령유별시'

2024년 02월 05일(월) 07:32 [강원고성신문]

 

↑↑ 해발 520M 진부령 정상은 간성읍 흘3리다. 이곳에는 진부령미술관, 음식점과 편의점, 커피숍, 군부대가 있다. 또 향로봉으로 갈 수 있는 임도의 시작이기도 하다.

ⓒ 강원고성신문

이번 겨울 고성지역 평지에는 큰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지만, 진부령 정상에 위치한 흘리 마을은 많은 눈이 내려 아름다운 설국의 자태를 수시로 보여주고 있다.

해발 520m 진부령 정상에서부터 시작되는 흘3리와 동쪽 언덕 작은 고개 너머에 있는 흘1·2리는 마산봉(馬山峰) 아래 넓은 분지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하늘 아래 첫 동네다.

이 마을은 품질 좋은 피망의 산지이며, 고랭지 채소와 곤달비 재배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최근 기후 변화로 고랭지 사과 농사가 시작됐으며, 올해부터 본격적인 수확시기에 접어들며 수입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알프스스키장은 1976년 개장해 2000년 초반까지 호황을 누렸지만 2006년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다.

ⓒ 강원고성신문

흘리는 땅이 비옥해 과거부터 밭농사 부농이 많았고, 알프스스키장은 1976년 용평리조트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개장하며 2000년 초반까지 호황을 누렸지만 2006년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다.

국내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려 1958년 육군 산악스키부대 훈련장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1975~1979년까지 5회에 거쳐 전국체전 동계스키대회 등 각종 경기가 열렸다.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는 자연풍의 휴식처 알프스세븐리조트와 스키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한때 광산초교 흘리분교 졸업생이 180여명이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흘리는 스키장이 문을 닫으며 급격히 쇠락해 갔고, 마침내 흘리분교는 올해 제54회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됐다.

10년 넘게 지역의 뜨거운 감자로 이어온 알프스키장 재개장과 풍력발전 사업은 주민들의 찬반 의견이 팽팽해 서로 반목하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발등에 떨어진 지역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반성하는 자정의 목소리가 커지며, 지역 소멸의 위기의식 느낀 주민들이 모임을 자주 갖고 소통하며 어려움을 돌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한적한 진부령 정상
지난 1월 15일 흘리 마을에 가기 위해 간성읍에서 출발해 46번 국도를 따라 굽이굽이 돌아 해발 520m 진부령 정상에 도착했다.

기자는 1995년부터 27개월 동안 향로봉 대대에서 군복무하며 진부령과 향로봉을 수도 없이 다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일요일 오후가 되면 알프스스키장을 찾은 고객들로 46번 국도가 심한 교통체증을 앓곤 했었다.

간혹 여행객들이 위병 초소에 과자나 음료를 주고 간 일도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의 북적임을 잊은 지 오래다.

취재를 위해 정상에서 10여 분 머무르는 동안 큰 소나무를 싣은 대형화물차 5대가 지나갔을 뿐이다.

진부령 정상 진부령미술관 오른쪽 옆으로 가면 진부령전망대가 있다. 전방 30여m에는 ‘진부령(陳富嶺)’이라고 적힌 큰 비석이 나온다.

그 뒤로 진부령유별시(陳富嶺留別詩), 향로봉지구전투전적비(香爐峯地區戰鬪戰蹟碑), 설화희생충혼순국비(雪禍犧牲忠魂殉國碑)가 있고 비석을 뒤로 하고 구불구불한 진부령로와 산과 산을 가르는 고성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 보인다.

이날 전망대에서 만난 서울 주민 천명갑(65세)·박순희(63세) 부부는 “지난 1월 14일에 1박 2일 일정으로 고성군에 여행을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며 “1999년에 아들 둘과 함께 진부령스키장(알프스스키장)에서 처음으로 스키를 배웠다.

그리고 여기 진부령 비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추억이 있어서 부인과 함께 들렀다”고 말했다.

진부령 정상 국도 46호선 일원은 간성읍 흘3리다. 이곳은 진부령미술관을 중심으로 음식점과 편의점, 커피숍, 군부대가 있다. 또 향로봉으로 갈 수 있는 임도의 시작이기도 하다.

■ 폐허된 스키렌탈숍과 식당
흘1리 주민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진부령 정상부에서 ‘고성팔경 마산봉설경 입구’ 표지판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진입해 경사 큰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넘었다.

피망 재배 비닐하우스가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나 보이고 도롯가는 수북하게 쌓여 있는 눈이 그동안 내린 눈의 양을 짐작게 했다. 진부령 정상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 고성지역 전역에 눈이 내린 지난 20일 겨울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스키장 폐쇄로 운영이 중단된 흘1리 스키렌탈가게 지역을 지나고 있다.

ⓒ 강원고성신문

멀리 보이는 마산봉의 아름다운 설경에 잠시 감탄사가 나왔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도로 옆으로 폐업 후 간판이 낡고 훼손돼 눈살이 찌그러졌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방치된 스키가 널브러져 있는 등 폐허로 변한 스키렌탈숍·식당 등이 흉물스러웠다. 이런 모습은 옛 알프스스키장 입구 주변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일대가 흘1리다. 시내와 연결해 주는 10번 시내버스는 하루 5번 운행한다.

버스는 간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간성시장~군청~간성파출소를 지나 46번 국도를 따라 진부령 정상을 거쳐서 흘1리와 흘2리 종점에 다다른다.

이날 마을입구부터 알프스스키장 입구까지 가는 도중에 단 한 명의 주민도 만나지 못했다. 다만 알프스스키장 내부에 공사 소리가 들려 가보니 ‘드라마 촬영 세트장’을 만들고 있었다.


'어질고 지혜로운 지도자에 대한 그리움'
진부령 정상, 눈속에 우뚝선 택당 이식의 <진부령 유별시>

↑↑ 해발 520m 진부령 정상에 위치한 진부령유별시(陳富嶺留別詩) 비문. 여기에 향로봉지구전투전적비(香爐峯地區戰鬪戰蹟碑)와 설화희생충혼순국비(雪禍犧牲忠魂殉國碑)가 함께 있다.

ⓒ 강원고성신문

西行正値北風時(서행정치북풍시) / 雪嶺參鳥道(설령참천조도위) / 自是人情傷惜別(자시인정상석별) / 君來饑我我留詩(군래기아아유시) = 한양으로 승차되어 가는 길 북풍이 불고 / 하늘에 높이 솟은 눈 덮인 영마루 새도 넘기 험한 길 / 나는 이제 인정에 마음이 아픈 아쉬운 이별을 하며 / 그대들 배 주리며 나를 따라 왔는데 나는 이별 시를 남기네.
-택당 이식의 진부령 유별시-

조선 중기인 1631년부터 2년여 간성현감을 지낸 택당 이식(李植, 1584~1647)이 임기를 마치고 고성을 떠나는 길에 진부령을 넘으며 눈발이 날리는 추위 속에서도 자신을 배웅 나온 군민들에게 남겼다는 <진부령 유별시>이다.

그는 간성현감 재직 당시 양사제를 창건해 강학에 힘썼으며, 농민들에게 개간사업을 장려해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소로길이었던 진부령을 확장하는 등 지역 발전에 기여했다.

또 지역소식지인 ‘간성읍지’를 발간해 당시의 개간사업, 고을연혁사, 문화유적, 해안도로, 인구, 행정구역 등을 자세히 기록해 역사적인 기록보전에 중요한 사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진부령이 유실되자 승려와 군민을 동원해 우마차가 다니는 길로 확장하며 내륙지방과의 유통을 원활하게 해 산업발전에 큰 공헌했다.

1633년 정월 한양으로 승차돼 가는 길에 배웅하기 위해 눈 덮인 진부령 정상까지 따라온 주민들은 어질고 지혜로운 현감이 떠나는 게 아쉬웠을 것이다.

“스키장 고집 말고 새로운 지역발전 사업 나서야”
사과농사 적지, 1억원 이상 매출 기대 … 눈 많이 오는 특수지역 감안 제설차량과 기사 배치 필요

↑↑ 흘1리 마을센터에서 신동길 이장(오른쪽 두번째)과 주민이 마을발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강원고성신문

신축한 흘1리 마을센터에서 신동길 이장을 비롯해 6명의 주민을 만나 흘리의 현재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신동길 이장은 흘리 지명유래에 대해 이 지역이 산림이 울창하고 산이 높다 하여 흘리(屹里)라 불렀고 속칭 밖(外) 흘리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마을의 면적이 광활해 지역별로 구분할 때 부르던 이름으로 현재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흘1리는 4개반, 2리는 3개반, 3리 2개반으로 구성됐다.

신 이장은 “강원도가 2015년에 알프스쎄븐리조트·풍력발전소 실시계획 승인 및 고시를 하면서 스키장 재개장 작업이 추진됐다”며 “그해 겨울 두 달간 ‘간이썰매장’ 형태로 일부 재개하면서 지역주민이 큰 기대를 모았지만, 풍력 발전사업이 멈추며 모든 사업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흘1·2리 마을회는 2017년 강원도에 시행자의 사업 취소와 개발촉진지구 지정 해제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보냈다. 사유는 사업시공사가 스키장 개발에 필요한 투자 및 계획에는 관심이 없고, 돈이 되는 풍력발전소 사업에만 관심이 있어 주민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도는 사업자가 실시계획 승인 후에도 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공사에 착수하지 못하자 2018년 3월경에 알프스세븐리조트·풍력발전소 사업시행자 지정을 취소했다.

신 이장은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가 스키장 재개장만을 고집하며 다양한 발전 가능성 있는 사업을 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한다”며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지역발전 사업에 적극 나서야 지역을 살릴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에서 귀농해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꼭대기농원 김연석 대표는“2018~2019년 군의 지원으로 사과나무 1,200주를 식재했는데, 지난해 수확 2년 차로 대략 5천만원의 매출을 거뒀다”며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수확시기에 접어드는 만큼 1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는 “진부령은 고랭지 기후로 사과의 생육기간인 4월부터 10월까지 연평균 13~14℃로 사과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갖췄다”며 “여기에 풍부한 일조량과 적당한 강수량 그리고 단맛을 강하게 하는 일교차도 커 양질의 사과를 키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진부령 사과농원 정형근 대표는 “내가 8살에 부모님을 따라 흘리로 이사해 지금까지 60여년을 이 마을에서 컸고, 지금까지 농사일을 하고 있다”며 “1970~80년대에는 배추·무·감자를 심어만 놓으면 최고 상품으로 컸다. 그때가 가장 호황기가 아니었나 싶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1970년 흘리분교를 졸업할 당시 졸업생이 1백80여명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학교가 없어졌다는 것은 우리 미래도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우리 주민들은 위기라는 생각으로 마을의 발전을 위해 한마음으로 뭉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 대표는 최근 고라니가 떼가 돌아다녀 사과 농사를 망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또 “예년에는 2월경에 눈이 가장 많이 내렸는데, 올해는 두 달 먼저 눈이 내려 얼어 붙었다”며 “마을길 제설을 신동길 이장과 반반 나눠 트랙터로 하고 있는데, 아직도 다 치우지 못한 곳이 있다”며 “흘리는 눈이 많이 오는 특수지역임을 감안해 고성군에서 제설차량과 경험있는 기사를 배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낙규 기자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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