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시편으로 말미암아 삶의 터전이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기를
|
|
아야진 진경바다시의 해석과 활용 방안[1]
박봉준 시인(동해안바다연구회)
|
|
2024년 02월 07일(수) 09:19 [강원고성신문] 
|
|
|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 출신 박봉준 시인(사진)이 지난해 발표한 ‘아야진 진경바다시의 해석과 활용 방안’을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글은 지난해 11월 17일 강원학연구센터와 춘천국립박물관이 ‘강원특별자치도 시대, 로컬 리메이드와 지역화’란 주제로 공동 개최한 제6회 강원학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바다’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과 관광의 연계 가능성을 짚어보는 내용입니다. <편집자주>
| 
| | ↑↑ 그 당시 피란민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내 고향 부모들도 누구나 할 것 없이 억척스러운 삶을 사셨다.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몸으로 때우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원주민보다 피란민들이 더 많은 어촌이고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도시로 빠져나가 지금은 인구도 절반으로 줄은 고령화된 한국의 여느 농어촌과 별다름이 없다. -본문 중에서 | ⓒ 강원고성신문 | | 1.머리말=필자가 속한 동해안바다연구회에서는 <바다문학>을 운영하고 있다.
바다문학 회원들은 이제 막 시를 배우는 회원들과 등단한 시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다문학의 전제 조건은 동해안 바다에 관한 시를 써야 하고 발표해야 하는 것이다.
조금 권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면이 있으나 이는 오로지 동해안 바다를 아끼고 공부하는 취지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다만, 바다에 관한 시는 동해안의 모든 자연환경과 어촌의 모습이나 생활사 그리고 풍광에 관한 것이어서 시의 소재가 궁핍하거나 지나치게 한정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제한적인 측면에서 불편함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필자는 바다에 관한 시를 쓴 대표적인 시인으로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쓴 이생진 시인을 꼽는다. 성산포는 관광지로서도 유명하지만 어쩌면 이생진 시인의 시 때문에 더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한 시인의 힘이 위력을 발휘하는 예이지만 이런 힘은 모든 예술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위대한 작가나 예술인들의 명성이나 작품들은 관광 명소가 되고 세월이 지나도 끊임없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필자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속초의 시인들은 대부분 <청호동>이나 <아바이마을>에 관한 시를 몇 편씩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박대성 시인이나 김종헌 시인의 작품이 많다.(박대성 시집 『파도 땋는 아바이 『아사달로 가는 갯배』/ 김종헌 시인 『청호동이 지워지고 있다』)
속초의 바다보다도 청호동이나 아바이 마을에 관한 시가 많은 것은 소재의 특이성이나 그 피란민들의 애환이 절절하여 시의 소재로 다루기 좋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도 동해안바다연구회 바다문학회원으로 바다에 관한 시를 쓰고 있으며 이번 강원문인협회에서 주관한 제42회 강원문학상에 아야진에 관한 연작시로 응모하여 수상하였다.
이에 그동안 동해안바다문학에 발표한 아야진 진경바다시의 해석과 활용 방안에 대하여 미력하나마 살펴보기로 한다.
| 
| | ↑↑ 지난해 11월 17일 강원학연구센터와 춘천국립박물관이 ‘강원특별자치도 시대, 로컬 리메이드와 지역화’란 주제로 공동 개최한 제6회 강원학대회 모습. | ⓒ 강원고성신문 | | 2.진경바다시의 개념= 이는 이한길(강릉원주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특별연구원, 아시아민속학회 강원지회장)이 주창한 개념이다. 진경산수화의 개념에서 비롯한 진경바다시의 개념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한길의 진경바다시의 개념을 우선 살펴본다.
예전 중국에서 8경이 유행했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8개로 범주화한 것이지만, 어찌 주변의 경치를 8개로 한정 지을 수 있겠는지에 관한 여러 의문이 발생했다. 이에 관한 논지가 세월이 흘러갈수록 차츰 공교롭게 개념화되면서 나름 이유를 집어넣어 이데올로기화하였다.
그 근거가 3원사상과 오행사상이다. 이에 맞추어 8개를 선정하는 이유가 밝혀졌으니, 이에 따라 9경이니 10경이니 하는 용어들은 자연 용도 폐기되었다. 경치는 어디까지나 8경이어야 올바른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듯 8경의 개념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소상8경이다. 그리고 그 이상 경치를 읊고 싶을 경우에는 주자의 무이도가처럼 무이9곡으로, 또 10승지지처럼 다른 숫자를 활용하여 표현하기 시작했다.
송나라 주희는 소상팔경의 개념을 확실히 한 인물이다. 이로부터 8경의 대명사인 소상8경은 전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고려에서도 숱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들었다.
오늘날 개념으로 풀이하자면 문화관광상품 히트작이다. 이렇듯 제대로 만든 문화관광상품은 지역의 경제적 가치 추구는 당연하거니와 문화적 자긍심마저 불러일으켜 애향심, 애국심 등 다양하게 그 파장을 넓힐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 추구하는 진경바다문학도 이 개념으로부터 유래한다. 무의미하게 그냥 바다를 읊는 것보다는 진경바다, 실재하는 바다를 읊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정동진의 바다를 읊었다. 그러면 그냥 바다가 아닌 정동진의 바다를 보려고 누군가는 와 볼 것이다. 그게 바로 문화관광상품이 추구하는 목적이다. 이렇게 지역적으로 고향 바다의 관광상품을 홍보하고, 더불어 시인의 시작품마저도 애송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정지상의 송인(送人), 송군남포동비가(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수하시진(大同江水何時盡)의 시편을 대부분 들어보았을 것이다. 대표적인 문화관광상품으로 히트했다. 그러니 우리들 교과서에도 실리게 되었다.
서정주의 〈질마재신화〉 등등 우리 귀에 익숙한 시편들은 대부분 향토애를 자극하는 고향 산천과 관련이 있다.
우리 강릉사람들도, 아니 강원도 사람들도 이처럼 우리의 고향 산천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바다문학을 하는 우리들은 우리의 바다를, 어촌을 읊어야 한다. 우리의 어촌과 바다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들 바다문학을 하는 이들이 될 것이다.
우리의 시편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의 터전이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어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더불어 우리들이 창작한 시편들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할 날을 기다린다.
3. 아야진 진경바다시편의 해석= 이 개념에 근거하여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아야진의 바다를 새롭게 그려보았는데, 이 자리에서 필자의 연작시 아야진을 소개한다.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 입술에 먼저 붙는 말 // 아야 아야 / 늙은 부모는 / 아프시지 않은지 / 눈물이 난다’ -박봉준 <아야진 1> 전문
진경바다시라고 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아야진’의 유래와 환경을 소개하려는 의도와 연작시의 첫 번째 글이므로 부득이 올리기로 했다. <아야진 1>은 아야진이라는 말의 첫 발음을 아픔에 비유하여 지은 시다.
고향은 누구나 그리움의 대상이고 생의 마지막 종착역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듯하다. 인간들뿐만 아니라 연어나 송어 등 회귀성 어류들의 목숨을 건 여정을 보면 숙연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요즘 명소로 자주 떠오르는 동해안 영북지역의 아야진은 내가 태어나서 장가를 가고 객지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자란 고향이다.
아름다운 풍광도 좋지만, 그곳에서 자란 내 또래의 친구들은 변화무쌍한 바다만큼 사연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중에 부모님이 북에서 피란을 나와 식솔들을 거닐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주저앉아 나를 낳은 곳이다.
그 당시 피란민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내 고향 부모들도 누구나 할 것 없이 억척스러운 삶을 사셨다.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몸으로 때우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원주민보다 피란민들이 더 많은 어촌이고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도시로 빠져나가 지금은 인구도 절반으로 줄은 고령화된 한국의 여느 농어촌과 별다름이 없다.
『수성지』에 의하면 마을을 구암리(龜巖里)라 하였는데 이는 아야진 등대가 위치한 바위가 거북처럼 생겼다고 하여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야진(我也津)이라는 이름은 일제 강점기에 아야진에서 교암리로 넘어가는 산(山) 형태가 잇기 ‘야(也)자’ 형국이어서 아야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문헌에는 아야진의 두 개의 항구가 야(也)자 모양이어서 아야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구암리라고 불리다가 그 후에는 작은 항구라는 의미의 ‘애기미’로 애칭 하기도 했다. (이한길, 바다인문학 제3집 15쪽 <고성군 아야진리> 마을 소개)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죽음과 고독과 노인성 질환에 시달리는 부모님들이 내 부모 같다는 생각에 늘 가슴이 저리다.
가정을 지키고 자식들을 키우려고 치열하게 사셨던 고향의 부모님들, 그래서인지 고향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그 이름만큼이나 아픔과 그리움이 배가 되어 눈물이 난다.
‘아침 뱃머리에 나가 / 삼마이 그물에 걸린 생선을 샀다고 / 셋째 누나가 전화를 했다 / 바다에 괴기가 씨가 마르는지 / 갈수록 잡히질 않아 / 예전 같으면 그냥 갖다 먹으라고 / 이웃 사람들에게 / 선선히 건네주던 잡어들도 /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는 세상 / 가자미 쥐치 도치 장치 삼세기 횟대기 물곰 / 사실 못생긴 생선이 더 맛있다는 걸 / 도시 사람들은 잘 몰라도 / 여기 사람들은 그냥 다 안다 / 그 싱싱한 맛을 보려고 / 식전 댓바람부터 걸려 온 전화에 / 투덜거리다가도 부리나케 달려가는 / 내 고향 아야진 / 늘 가슴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는 / 생각만 해도 아야 아야 / 눈물이 나는’ -박봉준 <아야진 2> 전문
동해안에서는 요즘 명태는 전혀 잡히질 않고 대부분 수입 냉동 명태를 해동하여 사용한다.
명태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다. 명태는 고성군이 어획량이 제일 많았으며 그중에서도 거진, 대진, 아야진에서 많이 잡았다. 명태를 복원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한때 무분별한 노가리의 남획과 바다 환경의 변화로 명태는 지금 아주 귀하신 몸이 되었다. 오징어도 명태와 마찬가지로 어획량이 적어 금값이다. 여름밤이면 동해안 수평선에 화려한 조명처럼 밤을 밝히던 모습은 보기 어렵다.
동해안 어류의 주종이던 명태와 오징어가 집히질 않으니 당연히 전에는 잡어라고 취급당하던 어종들의 몸값도 뛰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그 잡어들이 더 맛이 있다는 걸 이곳 어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 대표적인 어종이 ‘물곰’(꼼치과(Liparidae)에 속하는 꼼치(Liparis tanakai), 미거지(Liparis ochotensis), 물메기(Liparis tessellatus)를 지역에 따라 ‘물곰’이라고 부른다.
이름 그대로 물에서 사는 곰, 즉 못생긴 생선들이라 이렇게 부르는데 예전에는 명태나 오징어 등을 조업하다 딸려 나오면 먹지 않던 생선이라 도로 바다에 던져버리다 보니 물텀벙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이다.
잡어들은 입찰하지 않고 부둣가에서 그냥 살 수가 있는데 관광객들은 싱싱한 생선을 저렴하게 사려고 이른 아침부터 부두에 오는 경우도 많다. 잡어 중에 어획량이 제일 많은 어종은 가자미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가 배[船]를 타지 않아 이웃에서 생선을 자주 주었다. 아야진에 사는 누나들도 가끔 뱃머리에 나가 생선을 사는데 꼭두새벽부터 전화한다.
그때마다 나는 투덜거린다. 비린내 나는 생선을 손질하는 것도 그렇지만 잠이 덜 깨거나 늦잠을 자지 못한 불만으로 매번 투덜거린다. 그래도 신선한 생선 맛은 바닷가에 살지 않은 사람들은 맛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내 어릴 적 아야진 구회 사택 언덕배기에 가면 뒷간에 쭈그려 앉아 두꺼비를 바라보는 겁먹은 일곱 살 술래잡기를 하다가 술래가 된 아이들 꾀꼬리를 찾다가 꾀꼬리가 된 목이 쉰 골목이 있고 / 비석치기 딱지치기 사방치기 메뚜기치기 구슬치기 땅따먹기 콧수염이 난 만만한 육손이 형과 동네 아이들이 있고 저녁때면 허기진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들 고함 소리 키만큼 큰 항아리에서 감자 삭는 지독한 냄새가 있고 / 아침 댓바람부터 악쓰는 소리와 월선 조업으로 납북된 사람들 근심거리가 있고 바람 부는 밤 옥시기 서리하러 간 재열이네 사랑방 무용담이 있고 긴 사선을 그으며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별똥별 그 별똥별에 새순 같은 소원을 비는 아이들이 있다’ -박봉준 <아야진 3> 전문
노인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이 나이가 들수록 옛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갈 때가 많고 불쑥 어릴 적에 살던 그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옛날의 일반적인 세시풍속은 도회지나 시골이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 아이들의 놀이는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은 사라지고 대부분 일제에 의하여 기획 교육된 것이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전동화나 동요 또한 알고 보면 마찬가지로 대부분 일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6년 동안 일제는 황국 시민을 만들기 위해 문화 말살 정책을 강행하였던 사실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래도 어쩌랴, 필자의 세대도 어릴 적 그 풍속에 살며 때가 묻어 모천의 냄새를 기억하고 찾아오는 회귀성 어류처럼 그 기억을 지울 수 없는 것을.
내 고향 아야진의 아이들 놀이는 위 시에 열거한 놀이 외에도 정월 대보름날에 너른 갯바위에서 쥐불놀이한다든가 여름철 가까운 작은 섬에서 하는 섭죽 천렵과 미역, 오징어, 명태, 양미리가 잡히는 제철 풍속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일반적인 세시풍속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는 면도 있다.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의 시구처럼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는 법“이라서 누구나 고향을 생각하면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까지 감성을 자극하고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가 보다.
‘내가 속초 아바이 동네로 / 장가간다니까 / 왜 하필이면 그 하와이 동네냐고 /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 아내도 아야진으로 시집간다고 하니 / 왜 그 드세빠진 어촌으로 / 시집가느냐고 동네 사람들이 / 쑥덕거리더라고 했다 // 육이오 전쟁 중에 북에서 애기미*로 피난 온 사람들은 아야진 사람이 되고 속초 개 건너로 피난 온 사람들은 아바이마을 사람이 되었다 // 전쟁 중에 어느 피난민인들 제정신으로 살았을까 / 아내와 나는 수십 년 / 타향에서 객짓밥을 먹다가 귀향했다 // 간수가 쏙 빠진 / 다시 바닷가 사람이 되었다’(* 아야진의 옛 지명) -박봉준 <아야진 4> 전문
<계속>
|
|
|
|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