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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와 호랑굴 지역 전면 개방, 해수욕장과 삼각 연계

아야진 진경바다시의 해석과 활용 방안 ②
박 봉 준 시인(동해안바다연구회)

2024년 03월 20일(수) 08:42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 출신 박봉준 시인(사진)이 지난해 발표한 ‘아야진 진경바다시의 해석과 활용 방안’을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글은 지난해 11월 17일 강원학연구센터와 춘천국립박물관이 ‘강원특별자치도 시대, 로컬 리메이드와 지역화’란 주제로 공동 개최한 제6회 강원학대회에서 발표한 것으로, ‘바다’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과 관광의 연계 가능성을 짚어보는 내용입니다.

바닷가 사람들은 대부분 거칠고 투박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바다에 나가 파도를 상대로 조업하고 육지에서도 거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그런 말을 듣는 건 예삿일일 것이다. 하물며 기댈 곳 하나 없던 바닷가 피란민들은 오죽하였으랴. 주렁주렁 새끼를 거닐고 하루하루 사는 게 여간 고통스러운 일상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속초시와 고성군은 인접해 있고 원주민보다 많은 구성비를 차지하고 있는 피란민들로 급성장한 도시다. 물론 두 지역에 친인척들도 많다. 육이오 전쟁 중에 주로 함경도 지역과 북 고성 피란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함경도와 고성 사람들의 말투는 전혀 달라도 피란민들이라 억척스럽기는 필자가 생각할 때 도토리 키재기다. 그런데도 서로 드세다고 말한다. 지피지기라 자녀들의 혼사도 되도록 피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맹모삼천지교’라 했듯이 자식을 위해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를 하지 못하면 결국 한 우물물을 마시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서로가 흉을 보고 비방을 해도 뿌리가 엉킬 수밖에 없는 것을. 그래서 아내와 나도 그런 허물을 무시하고 결혼하였다.

↑↑ 아야진 본 등대는 조망이 아주 뛰어나지만, 그동안 군 경계시설이 들어서고 출입이 제한되었다. 현재 시설을 사용하지 않고 폐쇄하고 있다. 아야진 본 등대의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그 주변을 관광사업에 중점을 두면 단순하게 여름철 피서에만 몰리던 아야진해수욕장은 연중 피서객으로 주변 상권과 주민 소득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 -본문 중에서

ⓒ 강원고성신문

사람들은 자기 똥 구린 줄 모르고 산다고 했지만, 그래도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 없다. 고향 아야진에 가면 아직도 그 간수가 빠지지 않은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만난다. 이 약은 세상에서 약아빠지지 못하고 제 생각대로 거침없이 사는 순수한 사람들일지도 모를 아야진 사람들. 아내와 나는 30여 년 객짓밥을 먹다가 귀향했다. 간수가 쏙 빠진 다시 바닷가 사람이 되었다.

‘온통 날 것이었다 / 사람도 포구도 바다도 / 비릿했다 // 그때는 몰개 바람이 자주 짐승 울음소리를 냈다. // 죽음을 품에 넣고 바다에 나가던 뱃사람들, 육이오 전장에 나가 전사한 / 우리 삼촌도 그랬다. // 고깃배라도 한 척 장만하여 / 식구들 굶주리지 않고 등 따습게 사는 것 / 자식들 공부시키는 것 // 꿈은 선명하고 간단했다. // 오늘 아야진에 와서 / 며칠 몸져누웠다 나온 바다를 만났다. // 바다가 우리 아버지 같아서 /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 눈물이 난다.’ -박봉준 <아야진 5> 전문

전쟁을 치른 탓도 있겠지만, 질서가 잡히지 않은 세상은 온통 날 것이었다. 몰개바람*이 칠 때마다 동네에는 줄초상이 났고 배를 타지 않으면 살길이 막막하던 시절. 그래도 자식들은 어떡하든 도회지로 내보내 지긋지긋한 뱃놈 소릴 듣지 않게 하는 것이 부모의 바람이었다. 언젠가 큰 해일이 나고 동네의 목선들은 하루아침에 일엽편주처럼 바다에 널브러졌다. 정부에서 그때 발동기 엔진을 단 배를 만들어 어민들에게 공급했는데 (일명 발동기라 부름) 자식에게도 연대보증을 서게 하는 바람에 결국 정부 돈을 갚지 못한 어민들은 그 발동기를 처분하게 되었다. 배를 한 척 장만한다는 것은 곧 신분 상승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며 자식을 도시로 보낼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여간 노력하지 않고는 장만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술과 노름이 만연된 어부들이 저축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과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희비가 갈렸는데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울음이 한층 더 서럽게 들렸다. 가끔 고향 바다 아야진에 가서 파도가 그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면 이미 작고한 어른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살거나 저렇게 살아도 세월이 가면 모두 이승을 떠나는 인생인데 왜 그렇게 천 년 만년 살 것 같이 억척스럽게 살았을까? 부모들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다 ‘자식들을 위해서’라고.(*몰개 바람: 모래 바람의 사투리)

‘꼿꼿한 노인이다 // 평생 허리 한 번 구부리지 않았다니 / 참, 대쪽 같은 어르신이다 // 밤새도록 눈 부릅뜨고 안광을 발사하는 그는 어느 별나라에서 온 가문이 아닐까 // 옛사람 다 떠나도 / 아야진 어촌의 역사를 기억하는 / 산증인이다 // 열흘 붉은 꽃 없듯 열흘 가는 파도 없어 // 햇볕 좋은 날 스스로 풍경이 되어 셀카를 찍거나 연인들의 원초적 배경이 되기도 한다 // 멀리 동구 밖 바다에서 뒤뚱거리며 달려오는 손주를 맞이하는 외할아버지 같은 // 아야진 등대는 천리안을 가졌으나 / 걷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 // 발이 없는 등대는 눈빛으로 / 바다를 걷는다’ -박봉준 <아야진 6·등대> 전문

항구에는 등대가 있다. 요즘은 방파제 등대를 붉은색과 흰색으로 구분하여 설치하였는데 미관상 보기도 아름답지만, 사실은 항구로 진입하는 배의 안정성을 고려하여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진입하라는 표시라 한다. 쉽게 말하자면 교통신호다. 동해안의 등대는 대부분 육이오 전쟁이 끝나는 무렵에 세워진 등대가 많다. 아야진에도 흰 등대가 있는데 어릴 적부터 있던 터라 그 등대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대략 70년 정도 되었다. 등대의 위치는 그 기능과 목적상 그 마을에서 바다가 쉽게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세웠다. 아야진 등대도 전망이 좋은 곳에 세웠으나 오랫동안 그 주변에는 해안을 경비하는 군인들이 거주하여 주민들이 접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객지에 살면서 고향에 올 때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등대다. 내가 어릴 적부터 꿋꿋하게 뱃사람들과 애환을 함께하며 밤마다 항로를 인도해 주는 마을의 수호신 같은 등대. 멀리 동구 밖 바다에서 뒤뚱거리며 달려오는 손주를 맞이하는 것 같은 늙은 아야진 등대를 바라보면 걷지 못하는 아픔에 숙연해질 때가 있다.

‘아야진 해수욕장은 본래 / 무명씨였다 // 마을과 백사장 사이 갯가에는 길이 없어 / 봉이재 비탈길을 넘었다 // 여름이면 갈매기 떼처럼 사람들이 아야진해변을 찾는데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봉이재라고 부른다 // 진달래 갯메꽃 해당화 / 모래 속 땅강아지 숨소리 들리고 / 사월과 오월 사이에 검은 미역밭이 들어섰다 // 그 시절 걸어도 끝이 없는 백사장은 어린 내 눈에는 사막이었다 // 끝없이 파도의 구애를 거부하는 것 같아도 / 모래는 제 몸 안에 울음을 / 가두고 산다 // 생태 교란종 같은 / 카페 모텔 음식점 주차장 캠핑카 // 이제 그 아득한 봉이재는 이름만 남고 // 머리숱 다 빠진 백사장이 / 반토막 난 몸으로 / 누웠다’ -박봉준 <아야진 7·봉이재> 전문

예전에는 지금의 아야진해수욕장으로 진입하는 길은 마을에서 작은 봉이재(보잇재)를 넘어가는 길이 유일했다. 항구에서 백사장으로 가는 길은 갯바위로 막히고 다른 곳은 가파른 해안단구로 진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백사장은 달리 이름이 없고 그냥 봉이재 또는 보잇재라고 하면 그 일대 백사장을 지칭하는 것이다. 요즘 아야진이 명소로 떠오르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아야진해수욕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맑은 물과 고운 모래 그리고 갯바위가 평탄하게 깔려 있어 어린아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해수욕장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낚시꾼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인터넷의 발달로 일약 명소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커피숍이며 펜션 음식점이 줄줄이 들어서고 그 많던 해당화며 갯메꽃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모래사장도 면적이 점점 줄어들고 마치 머리숱이 빠진 늙은이처럼 필자가 한 번씩 지날 때마다 숨소리가 거칠게 들린다. 단구의 위쪽에는 거대한 자본들이 숲을 파괴하고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내 눈에는 모든 게 생태 교란종 같이 느껴진다. 세상에서 인간들보다 무서운 생태 교란종은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 텅 빈 동네는 누렁이들이 차지했다 // 우리 마을 미역바위가 있던 보이재 앞바다 오리 길 백사장 그 끝에는 전설의 호랑굴이 있다 // 뻐꾸기 소리도 허기진 늦은 봄 검정 고무신을 벗어 들고 걸어가는 사막 같은 모래 벌 선홍색 울음을 토해내는 해당화가 어린 내 발길을 잡았다 // 무릎 깊이까지 목선이 들어오면 소쿠리 지게로 물미역을 나르던 틈바구니에서 아이들은 잽싸게 지스러기 미역을 주워 풀빵 장수나 엿장수에게 달려갔다 // 수천 필 암갈색 광목을 펼쳐놓은 백사장에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때는 몸에서 미역 냄새가 났다 // 늦은 봄, 물미역을 말리던 / 아야진 보이재 너머 백사장 그 끝자락에 / 어릴 적 놀던 호랑굴이 있다’ -박봉준 <호랑굴 가는 길> 전문

↑↑ 호랑굴 지역의 개방은 아야진 본 등대의 개방과 같은 취지다. 호랑굴 지역 상부에 군사 시설이 있으나 주간에는 근무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군 전략에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나 주간에라도 개방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추진해야 한다.

ⓒ 강원고성신문

아야진해수욕장이 북쪽으로 끝나는 지점에 호랑굴이 있다. 너울성 파도나 해일 등 침식에 의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군사지역이라 오랜 세월 동안 방치하여 지금은 원형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었다. 거대한 바위들이 모여 있는 지형인데 옛날옛적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해서 바위 이름이 ‘호랑굴’이다. 정말 호랑이가 출몰할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라 주민들은 저물녘이면 가까이 가기를 꺼렸다.

아야진에도 여느 어촌처럼 미역바위가 있는데 4월과 5월 사이가 미역 채취 기간이다. 미역을 채취하는 첫날에는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 저도 어장처럼 정해진 날에 동시에 출항하고 그 후로는 자유롭게 채취한다. 춘궁기를 날 수 있어 미역 채취는 한 해 농사 중의 중요한 시기였다. 미역을 말릴 공간이 없어 아야진 사람들은 봉이재 모래사장에서 건조하였는데 밑에 쌀가마니를 펴서 깔거나 없으면 그냥 모래밭에 말리기도 했다. 그때는 백사장 전체가 수천수만 필 암갈색 광목을 펼쳐놓은 듯한 미역밭이 되었다. 사람들 몸에서는 물미역 냄새가 났다. 리(里)마다 미역을 건조하는 구획이 정해져 있는데 (그때는 신작로도 폭우나 폭설이 내리면 도로를 메우거나 제설작업을 하는 구간이 리마다 정해져 있었다) 우리 구간은 호랑굴이 있는 제일 끝머리라 학교에서 돌아와 어른들이 미역을 건조하는 장소까지 모래사장을 걸어가야 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백사장은 고행이었다. 가다 보면 갯메꽃이며 해당화가 붉게 피어 향기에 취했다. 지금은 바다에 백화현상이 심하고 생태계가 오염이 되었는지 미역이 잘 자라지 않아 그런 채취 풍경은 사라졌다. 겨울철 파도에 밀려오는 절각 미역도 찾기 어렵다.

호랑굴 지역은 현재 해안초소가 있는 민간인 출입 제한구역으로 출입 허가를 받아야 갈 수 있으나 소문에 의하면 해일에 의하여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바위들도 거의 부서져 원형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도 세월 앞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4. 진경바다시 아야진의 활용 방안=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다. 고향에 대한 원망과 미움과 애증을 품고 있는 사람도 고향에 대한 향수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이 아닐지 생각이 든다. 특히 과거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은 더욱 특별하다. 고향은 고향인 사람들에게만 특별할지라도 누군가 기록은 남겨야 할 의무가 있다.

1) 역사관 건립과 관광 콘텐츠의 개발 및 다양화= 첫째 아야진에 대한 과거의 흔적은 고성문화원의 『高城郡誌』 자료집에 일부 찾아볼 수 있을 뿐 한정적이다. 지금이라도 주민들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이나 자료를 확보하여 더 이상의 자료 훼손을 막고 보존하며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
둘째 현재는 아야진해수욕장 부근에 7~8장의 대형 사진을 게시하여 노천이나 다름없는 휴식 공간에서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부실할 뿐 아니라 태풍이나 폭우에 언제라도 훼손될 우려가 크다. 물론 예산 확보의 어려움이 있겠으나 그냥 보여주기식 홍보물이나 다름이 없다.
셋째 역사관의 건립은 예산이 많이 드는 사업이지만 마을 규모에 맞게 내실 있게 하면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넷째 동해안 자연환경이 대동소이하지만 지역 특성에 맞는 체험학습장을 개설하여 프로그램이나 요즘 관심을 많이 받는 ‘디지털스토리텔링’ 같은 것을 제작하여 체험학습의 질과 효과를 배가한다.
다섯째 각종 바윗돌에 대한 이름이나 유래 등을 발굴 조사하여 푯말을 세우거나 부착하여 관광 콘텐츠를 개발한다.

2) 아야진 본 등대의 개방= 본 등대는 방파제 등대와 구별하여 본 등대라고 지칭하기로 한다. 아야진 본 등대는 조망이 아주 뛰어나지만, 그동안 군 경계시설이 들어서고 출입이 제한되었다. 지금은 동해안 바닷가 철조망도 많이 철거하여 실효적인 경계 임무에 임하고 있으며 더구나 아야진 본 등대는 현재 시설을 사용하지 않고 폐쇄하고 있다. 필자가 군사 정보나 작전계획은 알 수 없으나 되도록 지역주민에게 피해를 줄이고자 점차 제한을 해제하겠다는 신임 국방부장관의 청문회 의견도 시청한바 아야진 본 등대의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그 주변을 관광사업에 중점을 두면 단순하게 여름철 피서에만 몰리던 아야진해수욕장은 연중 피서객으로 주변 상권과 주민 소득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

3) 호랑굴 지역의 개방= 호랑굴 지역의 개방은 아야진 본 등대의 개방과 같은 취지다. 호랑굴 지역도 일부 바위만 남고 모두 파괴되고 잔해만 남았다. 남은 바위를 살리고 주변을 정화하여 민속자료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피서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연계한 갯바위서 낚시꾼들의 호응도 좋을 것이다. 더구나 아야진해수욕장은 사진 자료에도 보듯이 평편한 갯바위가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데 호랑굴까지 그 범위를 연장한다면 금상첨화다. 호랑굴 지역 상부에 군사 시설이 있으나 주간에는 근무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군 전략에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나 주간에라도 개방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추진해야 한다.

5. 맺음말= 아야진은 과거 방파제 조성과 항구 정비사업으로 거북바위, 삼층바위, 기차바위, 말뚝바위 등 포구의 많은 바위들과 주변 환경을 훼손하여 지금은 그 자취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밖에도 숱한 과거의 자산들이 멸실, 파괴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물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런 자료들을 수집하여 규모가 작은 역사관이라도 남겨야 할 것이다. 또한, 동해안 어촌이 대개 비슷한 환경이지만 그동안 군사시설로 많은 지역이 출입 제한되어 방치되고 훼손되었다. 이로 인한 주민들의 경제적인 손실이 크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바다 철조망도 매년 철거하는 범위를 확대하는 추세인데 이에 아야진 본 등대와 호랑굴 지역의 전면 개방을 적극 추진하여 아야진 본 등대, 해수욕장, 호랑굴 지역을 삼각으로 연계하여 개발하고 홍보하면 매년 여름 한 철에만 찾는 피서객과 관광객을 연중 찾아오는 손님으로 맞을 수 있으며 또한 외국 관광객도 염두에 둘 수 있어 지역 경제에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끝>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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