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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힘, 언어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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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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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6월 04일(수) 05:41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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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4월 4일 터무니없는 ‘123계엄사태’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이제 국민은 21대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 선거 절차로 진행된 대통령후보들의 방송토론회가 3차례 있었다. 전체적으로 수준 낮은 토론회였지만, 특히 마지막 방송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는 ‘성폭력적 표현’을 거침없이 내뱉어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후보의 지위를 가진 사람이 생방송토론회라는 공적인 대화의 장에서 언어에 대한 공통감각과 윤리의식의 부재를 드러냈다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로 삼아 마땅하다. 문제의 인용 발언이 설사 상대 후보에 대한 검증의 차원에서 여성 혐오성 댓글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하였더라도 그 정도가 불필요하게 과도한 수준의 표현이었다. 적절한 수준의 표현으로도 그에 대한 후보의 검증은 가능했다고 본다. 더구나 그의 발언은 사전에 숙고의 과정을 거친 준비된 발언이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수준 낮은 토론회
민주사회에서 선거토론회는 후보들이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와 정책적 입장을 유권자인 국민에게 이해시키고 설득하면서 상대 후보는 물론 국민으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선거를 위한 국민적인 약속이고 합의된 절차다. 그래서 주권자 앞에서 치러지는 성스러운 선거 의례라 할 수 있다. 또한 방송토론회는 언어를 매개로 한 경쟁적인 상호작용이다. 따라서 일방적인 자기주장만으로는 토론이 성립될 수 없다. 상대방의 주장(내용)과 논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자기주장과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략이다. 이처럼 토론회는 대화의 형식을 따라 진행된다. 특히 대화의 과정에는 언어에 대한 공통감각과 윤리의식이 요구된다.
언어에 대한 공통감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맥락의 이해라는 점이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컨텍스트(맥락)이다. 더구나 의사소통적인 합리성을 전제로 한 토론회는 맥락에 따른 이해가 필수다. 본래 이해란 맥락을 모르면 불가능하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상대 후보의 주장에 대한 전체적인 맥락의 이해 없이 일방적인 자기결론으로 치닫는 사례가 많았다. 지젝이라는 철학자는 인간의 어리석음의 유형에서 ‘똑똑한 바보(지성적 주체)’의 유형을 말한다. 이들은 상황을 논리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숨은 맥락의 규칙은 놓치고 만다. 머리는 비상하지만 맥락에 함축된 규칙들은 어떻게 할 줄 모른다. 이들은 일상적인 삶의 지혜까지 포함해서 사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들)의 학벌에 취해 이상한 엘리트주의로 살아간다.
우리 사회가 ‘고발사회’로 변하면서 정치는 실종되었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것이 정치의 사법화다. 검찰이 권력의 사유화 문제로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정치계는 점점 법조계 출신들의 비중이 높아가고 있으며, 자본의 정점에는 대형 로펌이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국가권력의 작용에 있어 사법 카르텔의 영향력은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법의 논리란 다양한 영역에서의 삶의 갈피와 맥락들을 살피기보다는 법조문이라는 교리학적인 문자주의에 빠지기 일쑤다. 그리고 법관은 법 해석의 독점권을 가지고 때로 막강한 사법적 권위를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사법모순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지귀연 판사의 판결과 조희대 대법원의 사태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정보의 부정확성
이번 후보자 토론 과정에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점은 정보의 부정확성이다. 토론이란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공론의 장에서 필요한 정보는 자기주장의 논리적 근거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하여야 한다. 그런데 일부 후보들은 부정확한 정보 내지 왜곡된 정보를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적 수단으로 일삼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태는 사회적인 신뢰 관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가짜뉴스’를 조장하는 비윤리적인 태도이다. 가짜뉴스는 사회적인 연대의 고리를 끊어내는 혐오의 뿌리다.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는 혐오정치의 수사들이 부정확한 가짜뉴스를 기초로 양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제도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다. 본의가 깊은 이 말을 좀 더 낮게 해석한다면,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이 그 사람의 존재가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어 없이는 세계를 만날 수 없다. 언어는 존재의 빛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언어의 세계는 넓고 깊다. 침묵도 언어라 하지 않던가. 대통령후보들의 토론장에서 거짓 정보와 성폭력적인 표현들이 서슴없이 등장한다는 것은 언어에 대한, 인간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부끄럽기 그지없다.
한편 우리는 ‘언어의 감옥’에 갇혀 살아간다. 언어는 무의식으로까지 내려간다. 그래서 농담도 무의식이라 하지 않는가. 하나의 이념적 언어에 갇히면 그것이 그의 세계가 되어 상대방의 모든 언어도 자신의 이념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것이 낙인이고 혐오다. 그래서 대통령후보라는 지위를 얻고도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에서 그의 존재가치는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념적인 편향, 그리고 거짓 정보와 성폭력적인 표현(인용이라 하더라도)에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언어, 말은 참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언어로 상처받고 언어로 치유된다. 언어는 나의 존재이면서 사회적 연대의 고리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미래는 없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균열 상태다. 언어가 자기 말로 서지 못한다. 정치인의 말값이 사라졌다. 아무나 자유고 평화다. 이것은 언론의 역할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사회의 혐오정치도 언론의 책임이 매우 크다. ‘기계적인 중립’이란 모호한 가치로 기사 및 보도의 양을 맞춘다. 그러나 언론의 기사 작성과 편집은 이미 그 자체가 가치 개입의 해석이다. 따라서 순수한 중립적인 보도는 없다. 스스로 정보의 가치를 높이고 올바른 가치판단에 따른 기사 및 보도를 바란다. 이제 정상사회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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