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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내역은 고성역-간성역 구간의 역원 배치 간이정거장으로 개통

김담 작가의 ‘옛 동해북부선 철길을 걷다’ <6> 현내역

2025년 07월 16일(수) 10:56 [강원고성신문]

 

↑↑ ◇ 화포리노인복지회관부터 옛 7번국도인 봉정로를 만나기 전까지 화포길로 바뀐 기찻길은 곧게 아무런 걸림 없이 길게 이어졌다.

ⓒ 강원고성신문

지명으로만 남은 거진역 철도 ‘관사께’를 둘러본 뒤 걸음을 옮겼다. ‘관사께’ 그러니까 어른들만 쓰는 은어 같은 거진역 철도 관사가 있던 곳은 지금의 원흥여관 주변으로 산천이 의구(依舊)할 리 없으니 관사 터는 흔적 없었다. 거진 읍내에 극장이 있었고, 정어리 공장이 있던 시절을 모르는 것처럼 거진역에서 현내역으로 향하던 기찻길은 거진역 터 앞 신복상회에서 벌평로로 이어지다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끊겼고, 거진시장뒷길이 되었다 태봉길로, 다시 벌평로가 되었다 화포리노인복지회관 앞에서는 화포길이라는 도로명으로 바뀌었다. 거진 읍내 기찻길은 주택과 골목길, 밭과 주택으로 뒤덮여서 나이든 어른들 기억 속에서만 가까스로 붙견디고 있었다.

화포리노인복지회관부터 옛 7번국도인 봉정로를 만나기 전까지 화포길로 바뀐 기찻길은 곧게 아무런 걸림 없이 길게 이어졌다. 때때로 두발 오토바이, 자전거, 네발 오토바이, 1톤 트럭들이 오가는 가운데 산책하는 이들도 있었고, 길가 비탈엔 떼판을 이룬 기름나물, 전호는 하얗게 꽃을 피웠으며 길섶에 우뚝한 뽕나무에는 오디가 검붉게 익어가고, 엄지손톱만한 부전나비가 날았으며 눈앞에는 노인산(老人山)과 고성산(古城山)이 어른거렸으나 길은 봉정로와 찻골길로 나뉘었고, 기찻길 흔적도 사라졌다. 동해대로 아래 봉정로 굴다리를 건너기 전 화포습지를 둘러볼 수도 있겠으나 습지를 조성했던 처음과 달리 심어 놓았던 식물들은 팻말만 남은 채 갈대에 잠식당한 뒤였으므로 안타까운 마음만 품고서는 굴다리를 통과했다.

기찻길 옆 네 개의 습지 관리는 퍽 미흡하다

↑↑ ◇ 봉정로를 따라 걷다 다시 동해대로 「평화의길」 스티커가 붙어 있는 굴다리를 지나 화진포 둘레길을 걷는 것도 잠시 「DMZ평화의길 33코스」로 접어들었고, 기찻길 흔적을 다시 만났다.

ⓒ 강원고성신문

봉정로를 따라 걷다 다시 동해대로 「평화의길」 스티커가 붙어 있는 굴다리를 지나 화진포 둘레길을 걷는 것도 잠시 「DMZ평화의길 33코스」로 접어들었고, 기찻길 흔적을 다시 만났다. 아름드리 은사시나무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봉정로 옆 야산을 헐어 붉은 흙을 실어 나르는 덤프트럭의 굉음이 멀어진 것만으로도 반갑다. 처음부터 평지인 곳은 없을 것이고 숲이 헐리는 것을 마주하는 일은 즐겁지 않았지만 지금 걷고 있는 도로 또는 길은 산을 헐고 땅을 돋우면서 갖은 식물과 숨탄것들 그리고 묘지와 집들, 사람들을 밀어내고 덮으며 지운 곳이었다. 대진중·고 앞까지 이어진 기찻길 옆에는 화포습지를 포함 세 개의 습지 모두 화진포 가장자리에 만들어졌다. 금강습지까지 네 개이고, 관리는 퍽 미흡하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사촌의 외가가 있는 속칭 월안리이기도 했던 원당리에 갔다가 처음, 바다와 이어진 넓고 넓은 석호, 화진포(花津浦)를 만났다. 재첩을 줍고 빙어, 황어, 숭어 등을 낚고, 겨울이면 꽝꽝 언 얼음판에서 오리숨구멍을 들여다봤다. 어느 시절엔 굴 양식도 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웃집 어르신은 자연산 굴, 벚굴이 있었다고 말씀하시고, 나는 본 적 없을뿐더러 봄이면 숭어뜀을 하는 숭어만 보았을 뿐 지금 화진포는 낚시 금지구역이다. 귀향 초기엔 겨울이면 이따금 혹고니, 큰고니, 고니를 보려고 시내버스를 탔으나 화진포길이 생긴 뒤 고니떼들은 더 이상 호수에 머물지 않았고, 다만 흰꼬리수리와 참매를 구석진 곳에서 가까스로 만나곤 했다. 김일성별장, 이승만별장, 이기붕별장은 설명이 미흡하거나 오류가 있어서 그곳에 들르는 대신 새들이 떠난 광막한 겨울 호숫가를 삥삥맸다.

↑↑ ◇ 기찻길은 월안길로 바뀌었다. 잎은 피어 청산이 되고, 꽃은 피어 화산이 된다’는 민요처럼, 아니 어느 기행문의 ‘푸른 물, 푸른 산, 푸른 하늘, 푸른 바다, 푸른 솔’이라는 글귀처럼 어쩌면 거진역과 현내역 구간은 화진포가 그 역할을 다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강원고성신문

기찻길은 월안길로 바뀌었다.‘잎은 피어 청산이 되고, 꽃은 피어 화산이 된다’는 민요처럼, 아니 어느 기행문의 ‘푸른 물, 푸른 산, 푸른 하늘, 푸른 바다, 푸른 솔’이라는 글귀처럼 어쩌면 거진역과 현내역 구간은 화진포가 그 역할을 다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화진포는 여느 호수처럼 장자못 전설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재첩을 만날 수도, 거진 읍내 우두머리 성황당이라고 불리던 고청(고총) 성황당, 당제를 지내는 모습을 볼 수도 없었지만 원당천과 중뜰천은 모두 화진포로 흘러들었고, 죽정 1리에서 만난 철다리가 있던 시절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죽정리에서는 예전처럼 돼지를 잡지는 않지만 음력 정월이면 십일 전, 정(丁)자가 든 날 여전히 마을제사를 지낸다고 알려주었다.

죽정교차로에서 잠시잠깐 왼쪽으로 노인산과 고성산 사이에 고성산성 터가 있는 산학리로 꺾어 들어 봄을 알리는 전령사인 얼음새꽃, 복수초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나곤 하던 권익룡 불망비와 같이 있는 외솔배기 소나무를, 아니 오른쪽으로 돌아 고성군 보호수로 지정된 가지가 굽고 상처 많은 소나무를 만날까 망설망설하다, 오른쪽으로 꺾었다. 보는 순간 말로 다할 수 없는 소나무는 고묵었고, 상처도 많은, 그리하여 경이로움에 휩싸이고 마는. 한국전쟁 때 가지가 부러졌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웅혼하면서도 길차고 또 한편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를 지지대가 떠받치고 있기는 했지만, 소나무의 기품까지 앗지는 못하였다. 제사를 받던 시절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저 보호수로써 화진포와 고성산을 기꺼이 품고 있었다.

대진중·고 앞에는 철교 다리받침이 한쪽만 남아

↑↑ ◇ 기찻길은 느티나무상점 앞에서 모정길로 바뀌었고, 이어서 이승만별장길에서 다시 화진포둘레길로 달라지면서 대진중·고 앞, 초도리까지 내내 호수를 옆에 끼고 내달렸다.

ⓒ 강원고성신문

↑↑ ◇ 큰뜰천 다리를 만나기 전, 초도습지엔 하얗고 붉은 수련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이따금 자전거를 탄 이들이 지나가는 길섶에는 식재한 매실이 익어가고 있었다.

ⓒ 강원고성신문

죽정습지 언저리는 공사 중이었고, 죽정리는 이승만별장까지 이어지는 화진포를 절반쯤 품고 있어서인지 선사시대 유적은 물론 용과 백마와 청마, 충신에 대한 전설이 지명으로 남았다. 기찻길은 느티나무상점 앞에서 모정길로 바뀌었고, 이어서 이승만별장길에서 다시 화진포둘레길로 달라지면서 대진중·고 앞, 초도리까지 내내 호수를 옆에 끼고 내달렸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맡긴 새끼는 까맣게 잊은 채 깨나른하게, 꾀꼬리는 색깔만큼 맑고 거칠게, 호랑나비는 개망초를 찾기에 매바빴으며 기린초는 별 같은 꽃을 피웠고, 길섶 줄딸기와 뱀딸기는 빨갛게 익어서 초롱꽃을 찾느라 걸음을 멈추는 가운데 알을 품은 개개비는 목청이 쉬었다. 큰뜰천 다리를 만나기 전, 초도습지엔 하얗고 붉은 수련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이따금 자전거를 탄 이들이 지나가는 길섶에는 식재한 매실이 익어가고 있었다.

1935년 11월 1일, 현내역(고성군 현내면 철통리)은 역원 배치 간이정거장으로 고성역-간성역 구간 중 일부로 개통됐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 “양코들이 원산 명사십리 별장을 떠가지고 화진포 호변에 와서 게딱지같은 어촌을 쓸어버린 후 날아갈 듯한 층층집을 짓고 희희낙락거린다.”는 어느 기행문처럼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해 그곳에 있던 외국인 별장들을 화진포로 옮겨 짓게 했고, 이로써 화진포 언저리 마을, 장평리는 사라졌으며 관광객과 방문객들은 현내역에서 내려서 화진포 별장 지대로 이동했다. 갓 쓴 노인들은 ‘양코 남녀’가 길거리에서 입을 맞추는 모습에 놀라 왼고개를 틀었지만, 1941년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941년 적국인 외국인 선교사들을 추방했고, 이들의 별장을 적산가옥으로 등록, 당시 거진면장을 관리인으로 선임했다.

↑↑ ◇ 금강산로로 바뀐 옛 7번국도와 화진포길이 만나는 대진중·고 앞에는 철교 다리받침이 한쪽만 남아 있고, 기찻길은 둑으로 길게 남아 옛 현내역 터까지 거의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지만, 둑길은 풀이 무성한 곳도, 밭으로 경작되는 곳도 있었다.

ⓒ 강원고성신문

↑↑ ◇ 북한계선으로 알려진 순비기나무도 점점 쪼그라들어서 자취가 희미했으나 그렇더라도 갯메꽃(사진), 갯방풍, 갯씀바귀, 통보리사초들은 여전히 모래불에서 피고 졌으며.

ⓒ 강원고성신문

금강산로로 바뀐 옛 7번국도와 화진포길이 만나는 대진중·고 앞에는 철교 다리받침이 한쪽만 남아 있고, 기찻길은 둑으로 길게 남아 옛 현내역 터까지 거의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지만, 둑길은 풀이 무성한 곳도, 밭으로 경작되는 곳도 있었다. 기찻길이 생긴다고, 외국인 별장이 생긴다고 하루아침에 누대로 살아왔을 터전을 속수무책 빼앗겼을 이들의 심정은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그저 금강습지에 식재한 부채붓꽃을 떠올리며 화진포 해변, 거북섬이 보이는 모래불로 들어섰다. 화진(花津), 화담(花潭) 등 ‘꽃나루’의 기원이었을 해당화는 구석으로 밀렸고, 북한계선으로 알려진 순비기나무도 점점 쪼그라들어서 자취가 희미했으나 그렇더라도 갯메꽃, 갯방풍, 갯씀바귀, 통보리사초들은 여전히 모래불에서 피고 졌으며 어느 해 5월에는 솔숲에서 수정난풀을 만나기도 하였으나 해당화는 소갈병 즉 당뇨에, 갯방풍은 풍(風)병에 약효가 있다고 알려져서인지 해마다 개체수가 줄었고, 어느 날은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갯방풍을 뜯는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 ◇ 금강산로와 한나루로 나뉘는 초도삼거리에 서면, 통일의 길이라고 쓴 커다란 입석을 볼 수 있고, 공원으로 이어지는 끝에 현내노인회게이트볼장을 만날 수 있는 이 주변이 옛 현내역이었다.

ⓒ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금강산로와 한나루로 나뉘는 초도삼거리에 서면, 통일의 길이라고 쓴 커다란 입석을 볼 수 있고, 공원으로 이어지는 끝에 현내노인회게이트볼장을 만날 수 있는 이 주변이 옛 현내역이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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