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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지면(紙面)의 간성명태축제

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2025년 10월 15일(수) 14:20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곧 ‘제25회 고성명태축제’가 열린다. 명태의 대표 산지였던 거진항이 그 축제의 무대다. 어느덧 명태축제는 고성의 대표축제로 이름값을 얻었다. 축제를 공동 주관하는 고성문화재단과 명태축제위원회는 매년 축제의 전통과 현대를 잇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명태축제 이야기가 나오면 ‘명태가 나니, 안 나니’로 화제를 끌고 가려는 작은 목소리들이 소소했다. 하지만 고성지역의 명태는 ‘동해바다의 생선’에 국한해서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명태는 그 명태가 아니다. 오늘 고성명태는 옛 간성명태(杆太)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또 다른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고성명태의 서사가 다채롭게 표현되면서 예술적인 창조성을 가미한 이야기, 혹은 상징으로 거듭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이곳 지면을 통하여 간성명태(杆太)에 관한 아주 특별한 의미의 축제를 올린다. 모든 문명사는 야만의 역사를 품고 있다. 그래서 역사가는 이면(裏面)의 역사, 억압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삶의 흔적은 대체로 상처로 얼룩져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삶의 풍경은 상처를 숨긴다. 상처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삶은 그만큼 위태롭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억(기록)의 힘은 상처의 무게를 덜고 위태로운 삶을 견디며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상처를 기억하는 일에는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것이 상처의 기원을 살피는 일일 것이다.

아주 특별한 의미의 축제를 올린다

오늘 지면의 축제에 초대한 특별 손님들은 600여 년 전부터 간성(군)의 거친 바다에서 명태잡이로 고단한 삶을 살아온 수많은 어부들 가운데 침묵이 강요된 삶을 살아온 납북어부들(1957년 이후)과 명태잡이가 한창인 때 강제이주의 아픔을 겪은 마차진리 집단이주민(1969), 그리고 명태잡이 어선을 보호하려다 북한의 무력도발로 희생된 ‘56함’ 해군장병들(1967)이다. 축제의 대미는 동해안풍어제(동해안별신굿, 마을풍어제, 용왕제, 서낭굿)의 이야기로 풀어가려고 한다.

1950년대 말,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바다는 무수한 생명들로 넘쳐났고, 어촌은 상대적으로 풍성한 편이어서 헐벗은 피난민들이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겨울철이면 명태잡이로 한때의 시름을 잊고 여기저기 흥성거렸다. 거진항은 전국 각처에서 남바리 온 어부와 명태잡이 배들로 빼곡했다. 명태소식이 들리면 꼭두새벽부터 어부들이 분주했고, 경비정을 앞세워 물결을 헤쳤다. 그렇게 배질해서 닿은 곳은 명태의 황금어장(한류성 어류이니 어장은 북쪽으로)인 어로저지선 근처다. 여기가 어부들의 ‘전방작업’의 장소였다. 이러한 명태잡이의 취약성을 포착하여 북한은 우리 어선을 납치하기 시작했다. 1957년 11월 8척(48명)의 어선이 동해안에서 처음 납북되었다. 이어 1967년부터 1972년 사이 집중적으로 납북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1968년 납북사건이 급증하자 정부는 국가적인 현안으로 삼고 강경조치를 발표하였다. 납북어부에게 수산업법이나 국가보안법, 반공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따라서 1968년 말부터 납북어부들은 귀환 직후 일상으로의 복귀나 가족과의 만남도 자유롭지 못했다. 나아가 당국의 조사나 심문과정에서 불법적인 감금이나 고문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심지어 간첩혐의로 투옥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였다. 한때는 연좌제로 인하여 가족까지 고통을 당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납북어부들은 일상적인 감시는 물론 자신의 체험조차 말할 수 없어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삶을 살아왔다. 납북되고 귀환하지 못한 어부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심지어 2번이나 납북된 어부도 있다. 최근 이들에 대한 사회, 정치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억울한 옥살이와 피해에 대한 법원의 재심 무죄판결도 증가하고 있다.

1967년 1월, 동해안 경비를 담당했던 해군 ‘56함대’가 명태어선을 보호하려다 북한의 무력도발로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병사 11명 사망, 28명 실종, 14명 중상을 입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당시 남북긴장을 최고조로 올려놓았다. 이어 1968년은 명태 배의 풍어 깃발이 나부끼던 해이면서 북한의 어선납치가 더욱 극심했던 시기다. 이에 대하여 정부는 그해 11월 23일 ‘북괴의 어부 납북과 공비 남침 저지’를 목적으로 어로저지선(지금은 어로한계선)을 5마일 남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것은 제진 인근해역에서 대진항 등대로 어로저지선을 하향함으로써 그 사이의 항구인 마차진 어민들은 출입항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선언한 것이다. 또한 전체 명태어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면서 어민들의 반발도 있었다.

누군가를 살리는 축제의 장으로

마차진 주민들은 다음 해 10월 토성면 사진리(지금 장사동)로 집단이주의 길을 떠나야만 했다. 당시 이주 대상은 마차진리 주민 중 ‘어업을 희망하는 사람들’로 하였다. 전쟁 이후 터전 없이 바다만 보고 살아온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시 대상자는 무려 164세대 800여 명이었다. 그들에게 적용된 지원(주택 및 어선)은 모두 융자지원이었다. 이들이 이주한 삶터 사진리는 고향 마차진 바다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다. 마차진의 바다는 해산물이 풍부하였으나 사진리 바다는 그렇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융자해준 발동선조차 그 빚을 감당할 수 없어 처분하고 고향 마차진으로 되돌아온 가구도 여럿 있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마을에 어떤 변고가 있거나 안녕을 해치는 경우 기원과 치유를 위한 집단적인 의례가 있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어촌마을에서는 풍어제라는 형태의 마을축제를 열었다. 이러한 축제는 60-70년대의 부흥기를 거쳐 현재는 대진, 거진, 아야진, 문암 등의 일부 어촌에서 그 전통을 잇고 있다.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가호로 지정되면서 정식 명칭은 ‘동해안풍어제’라 하지만 ‘동해안별신굿’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낭굿, 마을풍어제, 용왕제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과거의 무속전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그 영향력이 대폭 감소하였으나, 최근 무형문화재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일부의 노력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초기 명태축제에는 풍어제가 공연문화의 큰 축을 이루기도 했다. 실제 명태어업이 발달하던 60-70년대에는 마을풍어제가 가장 큰 잔치였으며 이웃마을에서 구경꾼이 모여들었다. 동해안풍어제는 산자의 고통은 물론 사자의 넋을 위무하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로 통합되는 무대이고 연극이었던 셈이다. 여기에는 남녀노소 다층의 청중과 10여 명의 무녀들의 굿거리 서사, 그리고 화랭이들의 장기가 어우러져 2박 3일은 짧은 듯했던 필자의 기억이 새롭다.

이처럼 납북어부의 고통과 마차진리 집단이주민들의 아픔, 56함 해군장병들의 희생, 그리고 이들의 삶과 영혼을 위무해온 동해안별신굿이 고성명태라는 하나의 주제로, 공동체의 집단기억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도 필자에게는 특별한 체험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의 호명만으로 그는 주체로 설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고통을 겪는 자, 소외된 자, 배제된 자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다시 환기하고 싶다. 이 작은 지면이 누군가를 살리는 축제의 장으로 읽혀지기를 희망한다.


※이 글은 『고성과 나』(고성문화재단, 2020)의 <간성의 명태, 풍경과 기원>의 일부 내용을 참조하였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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