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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가치와 정치인의 수사

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2025년 02월 13일(목) 11:36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넘은 시각에,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12월 4일 새벽 국회의 계엄해제요구안 가결/12월 14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12월 31일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25년 1월 15일 대통령 체포/1월 19일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일부 폭력적인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 점거함/1월 26일 검찰의 대통령 내란죄 혐의 구속 기소.

이것은 우리 헌정사에 있어 초유의 일대 사건에 관한 주요 일지다. 현재까지 이 사건은 국내외의 주요 이슈들을 빨아들일 정도로 국가적인 블랙홀이 되고 있다. 그래서 평소 무심하고 외면했던 정치적인 것들이 새삼 주요 관심사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과서 밖으로 튀어나온 계엄!

계엄이라는 단어는 우리 역사에서 이미 몇 차례 등장했던 개념이다. 아픈 역사를 돌아보면서 역사적인 교훈으로 성찰하거나 헌법적인 지식을 위한 교과서 속의 용어다. 그런데 갑자기 교과서 밖으로 튀어나온 계엄! 모든 국민이 평온한 일상에서 맞닥뜨린 ‘12·3계엄’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줄 정도로 정상범위를 벗어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비록 실패한 계엄이지만 그 계엄행위로 인한 국가적인 파급력은 정치와 경제는 물론 사회적인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면서 무질서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문제에 우리 모두의 지혜가 모아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계엄선포의 주체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정과 내란죄의 처벌에 관하여는 사법적인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그 결과는 차분히 지켜볼 일이다. 다만, 그 결과가 어떠한 것이든 계엄사태로 인한 후과는 어두운 전망과 더불어 새로운 갈등의 국면으로 나타날 것이다. 계엄사태와 관련하여 표면적으로는 대통령 탄핵의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화된 여론으로 표출되고 있지만, 심층적으로는 단순한 의견 표출을 넘어 기본적인 법질서와 공존의 가치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주장과 행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번 계엄사태에서 발생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습격 및 점거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 사건은 민주적인 사법질서를 부정하는 초유의 헌정파괴행위이다. 그럼에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애국적인 행위’로 포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극단주의의 징후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2030 남성들의 일부가 극우화 경향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이 믿는 신념을 위해서는 기꺼이 행동한다. 특히 하나의 믿음에 모든 걸 바치기도 한다. 이들에게 사유는 금기다. 따라서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타자는 세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들의 신념에 어긋나는 존재는 인정 가치가 없는 대상이므로 울타리에서 밀어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에게 혐오감정을 투사하여 공격하려는 욕망을 자연스럽게 분출하기도 한다.

정치적인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는 다양한 층위로 나타나고 있다. 소위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인 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노사갈등, 빈부갈등, 세대갈등 등등. 최근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사회갈등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인 갈등으로 나타났다. 이미 우리 사회는 정치적인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정치구조는 ‘적당한’ 보수와 진보의 경쟁관계가 아니라 정치적인 극단주의로 치닫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여당과 야당이라는 정치적인 경쟁관계가 아닌 상대방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듯한 주장들은 최근 일부 정치인의 기본 수사(修辭)가 되었다. 이것은 공존의 가치를 부정하는 극우정치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한 사회에서 건강한 보수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정치가 본래의 기능을 하려면 우선 정치인의 수사가 주체적인 양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존의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인의 타락한 수사야말로 정치의 부재를 스스로 증명하는 꼴에 불과하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거나 다양한 공존의 가치를 부정하면서 궤변과 허언을 일삼는 정치인들, 기회주의적이고 무책임한 정부 관료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지배 엘리트들의 모습이다. 물론 이런 비평이 전부가 아니다. 내 안의, 우리 안의 괴물(파시즘, 독재, 인종차별, 혐오 등)을 들여다보는 것은 더없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운동도 독단(도그마)에 빠지면 타자를 살해한다. 그래서 정치의 종교화는 경계할 수밖에 없다. 미국 흑인운동이 성공한 것은 그들이 백인 혐오를 경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된다. 계엄사태에 직면하여 정치인들의 혐오적인 수사가 정화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세계를 너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선언적 인식이 널리 공유되길 희망한다. 날마다 계엄소식을 전하는 TV 앞에서 가족끼리 작은 충돌을 겪고 있을 이웃들에게, “어느 순간, 고요한 진리를 향한 충동이 우리 안에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칼 야스퍼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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