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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봄

금강칼럼 / 박봉준 칼럼위원(시인)

2025년 03월 12일(수) 09:56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다시, 봄이다. 세상 만물이 움츠렸던 어두운 겨울이 가고 봄을 맞는다. 봄은 소생의 계절이며 희망의 계절이다. 봄은 따스하며 부드럽고 온유하다. 봄은 친절하며 상냥하다. 봄은 갓 시집온 새색시다. 그래서 봄이라는 말은 듣기만 하여도 생동감이 있고 설렘이 있다. 비단 계절적인 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봄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나 역사를 자주 떠올린다 “운현궁의 봄”이나 영화 “서울의 봄”이 그렇고 김유정의 소설 “봄봄”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국권 상실에 대한 울분과 그 회복의 염원을 그린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이 그렇다.

봄은 소생의 계절이며 희망의 계절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필자가 대학교 일 학년 가을학기 때다. 평화롭던 캠퍼스는 하루아침에 살벌한 기운이 감돌고 형사들의 날카로운 눈빛이 거미줄을 쳐놓고 기다리는 음산한 거미처럼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강의실에는 전단이 뿌려지고 수업은 연일 휴강이었다. 그 와중에 운동권 학생들 소식이 비밀리에 전해오고 내 동창의 행방도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유신(維新)헌법”이 공포되고 유신이란 용어의 뜻풀이가 일본 “메이지유신”에 빗대어 거창하게 퍼지고 있었다. 유신의 바람 속에 나라는 혼란스럽고 캠퍼스에 뒹구는 낙엽을 볼 때마다 김광균 시인의 “추일 서정”이 생각났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 포화에 이지러진 /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하게 한다.’ 필자는 결국 단축 수업과 조기 방학으로 고향에 내려오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우울하다.

“운현궁의 봄”은 김동인이 쓴 장편 역사소설이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집이자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이 태어나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던 곳이다. 소설의 내용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생존과 박탈당한 종친의 권력 회복을 위해 상갓집 개처럼 행세하며 김씨 일파로부터 받는 온갖 수모를 참아내며 파락호 행세를 하는 한편 아들 명복(命福)을 제왕으로 만들기 위해 철저한 이중적 생활을 하며 결국은 아들을 보위에 오르게 하는데 그가 바로 조선 26대 왕인 고종(高宗)이다. 생존하는 대원군 이하응은 왕의 위에 군림하여 수렴청정함으로써 그야말로 운현궁에 봄이 왔다고 아니할 수 없겠다.

“서울의 봄”은 2023년 11월에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한국 영화로 1979년 12월 12일에 발발한 12.12 군사 반란을 주요 소재로 개봉 전부터 좌우 이념적인 문제가 대두되어 사회적으로 커다란 논쟁이 되었던 영화다. “서울의 봄”이라는 용어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일시적으로 불었던 민주화의 바람을 가리키는 표현인 “프라하의 봄”을 빗댄 것이다. 결국 프라하의 봄과 마찬가지로 서울의 봄도 오래 가지 못하고 잠깐의 순풍으로 끝나 우리는 어둡고 긴 세월을 지내야 했다.

지금 오는 봄은 어떠한 모습인가?

김유정 소설 “봄봄”은 강원도 춘천 신남의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점순이네 집에 실상 머슴인 데릴사위 노릇을 하며 점순이를 아내로 맞이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주인공을 점순이가 아직 키가 작고 어리다는 핑계를 일삼는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긴 점순이가 주인공을 꼬드겨 어느 날 장인과 대판 몸싸움을 벌이는데 자신의 편을 들어줄 줄 알았던 점순이가 오히려 자기 아버지 편을 드는 황당한 촌극이 벌어지고 점순이와 꼭 성례를 시켜주겠다는 장인의 그 말에 또 감복하여 지게를 지고 일터로 나가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일제의 검열을 피하려고 고통받는 우리 민족의 삶을 희화화하여 표현한 시대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김유정의 “봄봄”의 제목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춘사불래춘(春似不來春)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뜻의 이 말은 중국의 절세 미녀 중의 한 명인 “왕소군”을 두고 “동방규”가 지은 시 구절이다. 왕소군은 전한 원제의 궁녀로 그녀는 절세의 미인이었으나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따라 흉노 왕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왕의 애첩이 되었으나 머나먼 타향살이가 쉽지는 않았을 터이기에 동방규는 그녀의 불운한 정경을 오랑캐 땅은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아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라는 시구로 표현했다. 원래는 살풍경한 북방 초원지대를 그대로 표현한 말이었는데, 이 시가 유명해지자 다른 비슷한 경우에도 이 말을 많이 인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2025년 지금 우리에게 오는 봄은 어떠한 모습인가? 봄이 오는 길목마다 시한폭탄이 매설된 것 같은 근래에 겪어보지 못한 불안한 봄을 맞이하고 있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텔레비전이나 각종 매체에서 임계점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말과 행동이 이제는 놀랄 일도 아니다. 각자의 이익에 따른 유불리와 진영 논리에 휩쓸려 법과 도덕과 일말의 양심마저 저버리는 현실이 필자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더구나 한 국가의 최후 보루인 헌법을 무시하고 체계를 흔드는 경향은 당장은 달콤할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어느 정권이든 암적인 존재로 특별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 화를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시인 변영로는 그의 시 “논개”에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다”라고 했다. 그런 분노마저 또한 갈라치기하고 선동하는 유튜버들과 그에 편승하는 정치인과 막장으로 치닫는 인사들을 볼 때 정말 다가오는 우리의 봄이 두렵다. 다행히 자연은 자정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고난을 극복한 예가 한두 번이 아니다. 더디더라도 정의와 진리는 자연의 이치와 같다. 절뚝거리며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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