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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향로봉? 금강산 향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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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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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4월 10일(목) 06:33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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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현재 산림청은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을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2019년 6월, 산림청에서는 5곳을 추가로 선정하였다. 이때 우리 고성군에는 향로봉숲이 선정되었다. 그런데 선정된 향로봉숲의 공식 명칭이 ‘고성 설악산 향로봉숲’이었다. 향로봉 입구에는 100대 명품숲을 알리는 표지판도 설치되었다.
지난해 말 동부지방산림청 소속 직원이 고성문화원에 관련 사실을 알리고 정정을 요청하였다. 고성문화원부설 고성학연구소가 관련 자료를 첨부하여 동부지방산림청 양양국유림관리소에 ‘설악산 향로봉숲’을 ‘금강산 향로봉숲’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청원서를 제출하였으나, 산림청은 ‘고성 향로봉숲’으로 정정하고 말았다. 즉 ‘설악산 향로봉’은 수정하면서도 ‘금강산 향로봉’은 인정하지 않았다. 고성문화원의 고성학연구소는 ‘고성 금강산 향로봉숲’이란 공식 명칭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공식 명칭을 되찾기 위한 노력
향로봉(香爐峯)이란 지명은 전국 곳곳에 존재한다. 금강산 주봉의 서편에도 향로봉이 있다. 심지어 경남 고성(固城)에도 향로봉이 있어, ‘고성 향로봉숲’이란 공식 명칭은 일반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지명의 유래는 시원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간성의 향로봉도 오랜 세월 우리 지역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 왔을 것이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의 <간성군> 기록에는 ‘마기라산(麻耆羅山)’으로 표기하고, 간성군의 진산(鎭山)이라 하였다. 또한 1631년 간성 현감을 지낸 택당 이식(李植)의 『간성지』에서는 마기라산의 봉우리로 ‘香爐’를 명기하고 그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왔다고 전한다.
향로봉(1,296m)은 이 고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그러니 가장 먼저 구름이 모인다. 하늘의 비로 농사를 짓던 시절이라 구름이 모이는 장소는 비의 원천으로 신성시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기우제를 여기서 지냈다. 이것이 진산(鎭山)의 의미다. 향로봉은 그냥 산이 아니었다.
특히 향로(香爐)는 향을 피우는 제기로 그것이 놓이는 장소가 곧 제단(祭壇)이다. 향로봉은 제단이라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정해진 날에만 오를 수 있었다. 또한 누구나 언제든지 세속의 때를 묻히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요즘이야 등산이란 개념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지만, 옛사람들은 산을 그냥 오르지 않았다.
이처럼 향로봉은 간성군의 진산이고 고을의 제단이었다. 금강산을 비롯한 모든 명산이 그렇듯이 향로봉도 오랜 세월 기도처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도 향로봉 밑에는 기도처들이 여러 곳 남아 있다. 향로봉의 여러 골짜기에는 ‘암자골’도 있고 ‘서낭골’도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향로봉을 오르는 여정은 예사롭지 않았다. 1962년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천관우는 향로봉을 오르면서 이렇게 회상했다. “그전에는 치성을 드리려고 여기에 오르자면 이레 양식을 짊어지고 와야 했다고 한다.” 천관우는 그 시절의 정성과 기도의 마음들을 읽으며 향로봉을 올랐다. 당시 천관우가 향로봉을 오른 것은 한국전쟁의 피어린 전투전적을 떠올리면서 남북분단의 현장을 답사하려는 의도였다. 진부령 정상에는 ‘향로봉지구 전투전적비(1957)’가 건립되어 있다.
금강산을 간성군의 ‘산천’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많은 지리지에서는 금강산을 간성군의 ‘산천’으로 포함하여 기록하고 있다. 즉 ‘금강산은 군의 서쪽 20리에 있다’거나 ‘건봉사의 뒷산’이라고까지 기록하고 있다. 또한 위당 정인보(鄭寅普)는 100여 년 전 <관동해산록>에서 “금강산은 고산인 동시에 거악(巨嶽)이라 그 반거(盤據)함이 北으로 흡곡 華藏寺, 南으로 간성 禾巖寺, 東으로 海金剛, 西로 회양 斷髮嶺이다.”라고 했다. 즉 금강산의 동서남북 강역(疆域)을 정확히 명기하고 있다. 오늘까지도 ‘금강산화암사’라든가 ‘금강산건봉사’라는 이름은 이러한 전거들을 가지고 있다.
1748년에 간성군수를 지낸 김광우(金光遇)가 편찬한 『간성군읍지』에는 “군내의 모든 산은 다 금강산에서 시작되었다(發祖)”고 기록하고 있다. ‘금강산건봉사’처럼 이 고장 사람들은 오랜 세월 ‘금강산향로봉’으로 불렀다는 사실도 억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금강산에는 1만 2천 봉이 있다고 전한다. 이익(李瀷)이 『성호사설』에서 “《화엄경(華嚴經)》에 말한, ‘동북쪽 바다 가운데 금강산이 있으니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이 1만 2천의 보살과 더불어 항상 《반야경(般若經)》을 설법(說法)했다.’한 그것이 바로 이곳이다. 1만 2천이라는 숫자는 곧 보살의 숫자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1만 2천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 그대로 인습하기 때문에 변경할 수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봉우리의 시작과 끝은 화암사의 ‘신선봉’이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또한 산림청 홈페이지의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 ‘고성 향로봉숲’의 소개도 “향로봉은 금강산 1만 2천 봉의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화나 전설이 역사적인 사실과 다르다는 인식만으로 배척하는 일은 인간사나 문명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하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금강산 1만 2천의 보살이 봉우리로 변신한다고 해도 그 종교적인 믿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또한 종교적 믿음이 탈색된 현대에도 금강산은 여전히 수많은 신화와 전설의 장소로 남아 우리의 문화적 원천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고성의 향로봉이 금강산 1만 2천 봉의 하나라는 믿음은 지역의 소중한 문화적 유산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따라서 ‘금강산 향로봉’이란 이름을 되찾는 일은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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