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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학교 앞으로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오갔다

김담 작가의 ‘옛 동해북부선 철길을 걷다’ <1> 천진리역

2025년 04월 13일(일) 11:50 [강원고성신문]

 

↑↑ 천진리에는 간이정거장인 ‘천진리역’이 천진초등학교가 천진공립보통학교였던 일제강점기 때 생겼다. 천진초등학교 테니스장과 학사촌길 사이에 밭이 천진리역사터다.

ⓒ 강원고성신문

“송전(松田) 정거장은 간이역(簡易驛)이다. 플래폼 위에, 표를 찍고 들어간 손님들이나 잠깐 앉아있으라고 지어 놓은 것 같은 바라크 한 채가 일반 대합실이요 역원실(譯員室)의 전부다.”

소설가 이태준이 1936년 발표한 「철로」를 읽을 때마다 1937년 12월 1일 열렸던 간성-양양 간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공현진역, 천진리역 그리고 대포역의 풍경을 떠올렸다. 동시에 왜 천진역이 아니고 천진리역이었을까 하는 궁금함과 함께.

왜바람이 불었다. 어둠이 내리는 속도를 가늠할 수 없었듯 꽃이 피는 때를 어림짐작할 수 없었다. 중춘(仲春)에도 한여름에 다가붙듯 기온이 올라 땅 밑 꽃들이 피어나더니 또 어느 순간 한겨울처럼 소나기눈이 쏟아져서 꽃들이 까맣게 얼어붙었다. 꽃부꾸미(花煎)는 그만두고 봄꽃 구경도 쉽지 않았다.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온 나라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은 내란 우두머리에 대한 탄핵심판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한반도 아랫녘에서는 산불이 도깨비불처럼 옮겨다니며 인간의 목숨과 터전, 숨탄것들은 물론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살아왔을 수풀들을 불태웠다. 2019년 고성 산불을 겪은 뒤에도 산불은 걷잡을 수 없었고, 비만을 학수고대했다. 큰불은 잡았지만 잔불은 여전했다.

↑↑ 천진리역사터에서 굴다리를 지나면 석호인 천진호가 있고, 이곳에는 매년 7월 무렵이면 한국 고유종이면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각시수련이 꽃을 피운다.

ⓒ 강원고성신문

건진(乾津)이었던 마을 이름은 천재지변으로 마을이 곤경에 처하자 천진(天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천진리에는 간이정거장인 ‘천진리역’이 천진초등학교가 천진공립보통학교였던 일제강점기 때 생겼다. 천진초등학교 테니스장과 학사촌길 사이에 밭이 천진리역사터다. 보통학교가 심상소학교로 다시 국민학교로, 해방이 되어 인민학교로 개칭되면서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학교 앞으로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오갔을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발가락을 꼼지락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찻길 옆 오두막집처럼. 뿌앙 뿌앙, 먼 데를 꿈꾸며 기적을 울리는 기차라니.

옛 시절의 기차를 떠올리는 일은 마냥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옛 시절의 기차를 떠올리는 일은 마냥 낭만적이지 않았다. 기차가 부설되던 때에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더더욱. 대한제국 시절인 1899년 처음 경인선이 열렸고 이어서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이 개통되었다. 대륙으로 진출하려던 일제는 힘없는 정부를 으르고 닦아세워서 먼저 땅과 인민들의 터전과 묘지를 빼앗았고, 그 땅에서 살던 동·식물들 터전까지 앗았다. 이주민이 발생하고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보상은 물론이거니와 품팔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수탈당했다고 주저앉아서 울 수만은 없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그 때문에 또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 땅에 건설된 화륜거(火輪車), 기차였다.

↑↑ 지금은 멸종위기 야생 생물 2급으로 지정된 순채를 재배하기도 했다. 7월 어느 날 각시수련과 순채들 꽃을 보려면 하루 종일 호숫가를 바장여야 한다.

ⓒ 강원고성신문

천진초등학교 테니스장에서는 라켓을 든 이들의 고함이 들리고, 옛 기찻길 옆 빈터에서는 초로(初老)의 농부가 한창 농사준비 중이었다. 언젠가 그곳 가까이서 어릴 적 백촌인민학교 5학년 때 전쟁을 만났고, 전쟁 중에 가족이 흩어졌다던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은 무릎이 성치 않아서 한의원엘 가는 길이라고 했다. 전쟁 당시 서울에 살고 있었던 큰형님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을 것이라고 알려진 뒤 백방으로 큰형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여태도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어르신은 전쟁으로 인해서 이곳에 홀로 남았고, 사는 일이 고단하고 외로웠지만 가족을 이룬 뒤에 살만해졌는데, 이제는 또 몸이 말썽이라며 헛헛해하셨다.

조선총독부는 1927년 「조선철도12년계획」을 발표하였고, 이때 동해선 부설도 포함되었다. 동해선은 부산에서 원산까지 연결하고, 이 노선은 다시 함경선과 이어지는 동부의 종관철도로 계획되었다. 동해선은 동해북부선, 동해중부선, 동해남부선으로 나뉘어서 착공되었으나 끝내 연결되지 못했다. 동해북부선은 함경남도 안변에서 강원도 양양까지 개통되었고, 강릉까지는 노변공사가 진행되었다. 동해북부선은 1929년 9월 11일 안변-흡곡 간 개통을 시작으로 1937년 12월 1일 간성-양양 구간을 끝으로 더 이상 철도역 개통은 없었고, 그대로 해방을 맞았다. 간성-양양 구간에는 간성역, 공현진역, 문암역, 천진리역, 속초역, 대포역, 낙산사역, 양양역이 있었다.

↑↑ 통발, 가래, 부처꽃, 마름, 날짐승, 들짐승 등은 어쩌면 덤인지도 모른다. (사진은 마름.)

ⓒ 강원고성신문

천진리역사터에서 굴다리를 지나면 석호인 천진호가 있고, 이곳에는 매년 7월 무렵이면 한국 고유종이면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각시수련이 꽃을 피운다. 호수 언저리, 구석진 곳에 야금야금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갈대와 바람에 날아든 샌드위치 패널과 쓰레기들 속에서도 각시수련은 희디흰 꽃을 피웠다. 오래지 않은 어느 때는 어른들은 빨래를 하기도 했고, 아이들은 ‘빙구’를 타기도 했으며 또한 지금은 멸종위기 야생 생물 2급으로 지정된 순채를 재배하기도 했다. 7월 어느 날 각시수련과 순채들 꽃을 보려면 하루 종일 호숫가를 바장여야 한다. 순채가 꽃을 피우는 동안 각시수련은 잠을 자고, 순채가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면 그제야 각시수련은 기지개를 켜기 때문이다. 통발, 가래, 부처꽃, 마름, 날짐승, 들짐승 등은 어쩌면 덤인지도 모른다.

철길이 사라진 자리에 고묵은 소나무가 낙락하여 머뭇머뭇하던 걸음은 다시 철길을 따라 걷다가 바닷가로 향했다. 마을 한가운데 나무 우듬지만 간신히 보이는 곳을 향해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고성 산불이 지나간 뒤에 만났던 할머니서낭당이었다. 소주병과 실타래는 여전했지만, 이북 고성에서 시집오셨다는 이웃한 어르신의 안부는 미처 여쭙지 못했다. 좁디좁은 고샅길에 유아차 한 대가 길을 막고 있었고, 제사를 받는 상서로운 나무였을 서낭목은 새싹도 없이 깜깜했기 때문이었다. 이웃한 음식점 부엌에서는 설거지하는 소리가 창문 틈으로 슴샜다. 할아버지서낭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급해지는 마음과 느려지는 걸음 사이에서 시룽새룽했다. 바람이 어지러웠다.

↑↑ 좁디좁은 고샅길에 유아차 한 대가 길을 막고 있었고, 제사를 받는 상서로운 나무였을 서낭목은 새싹도 없이 깜깜했기 때문이었다

ⓒ 강원고성신문

아이들은 모래불에서 두꺼비집을 짓는 대신에 구덩이를 팠고, 어떤 이들은 사진 찍기에 바빴으며 또 어떤 아이들은 불꽃놀이를 하고 버려진 폭죽을 들고서 칼싸움을 흉내 냈다. 방풍림으로 심은 소나무들을 없앤 자리에는 빽빽이 건물들이 들어섰고,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파도가 모래를 옮기기도 하고 삼키기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을도 바닷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느 때 방파제에서 만났던 토박이 어르신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이제는 울산바위들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노라며 아쉬워하셨다.

봄이 오는 듯했던 하늘은 급작스레 컴컴해지기 시작했다

엄장한 바위 위, 소나무들 사이에 자리한 할아버지서낭당은 여전히 문이 잠겼다. 언뜻 보면 서낭당인지도 알아채기 어려웠다. 그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군부대 감시 초소와 키 높은 CCTV였다. 무속신앙과 첨단과학이 나란했다. 고성 관내 어촌에는 할아버지 서낭과 할머니 서낭이 흔했고, 어떤 곳은 작은 할머니 서낭까지 함께 있었으니 어쩌면 서낭은 세속을 옮겨 놓은 성소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파제를 발탄강아지처럼 삥삥맸다. 구경꾼인 내게 할아버지서낭당은 언제나 금단의 영역이었다. 낚시꾼은 방파제 끝에 텐트를 쳤다.

↑↑ 엄장한 바위 위, 소나무들 사이에 자리한 할아버지서낭당은 여전히 문이 잠겼다. 언뜻 보면 서낭당인지도 알아채기 어려웠다. 그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군부대 감시 초소와 키 높은 CCTV였다.

ⓒ 강원고성신문

봄이 오는 듯했던 하늘은 급작스레 컴컴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때 방파제를 타고 넘던 파도는 한층 숨을 죽였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방파제 이쪽 끝과 저쪽 끝을 걷던 사람들은 다시 할아버지서낭당 앞 자물쇠가 잠긴 울타리 앞에서 멈췄다가 도섰다. 아무런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으나 아니 그 울타리를 넘어서고자 망설망설하였으나 차마 그리하지 못했다. 어떤 기원은 그곳에 다다랐을 것이고 또 어떤 바람은 한낱 물거품처럼 스러지기도 했을 것이겠지만, 실낱같은 누망일지라도 가슴에 간직한다면 한여름 반딧불이처럼 반짝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람을 등지고서 해안 철책이 제거되고, 모래불에 위태롭던 감시 초소도 없앤 자리에 흔적처럼 탐해등(探海燈)만 남은 모래불에 우두커니 섰다. 사방팔방 길 아닌 곳이 없었으나 또 어느 곳도 내가 찾는 길은 아니었다. 옛 문암역사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람이 차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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