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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파괴하는 힘, 휘브리스(Hybris)

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2026년 04월 08일(수) 09:03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얼마 전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항공사 기장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가해자는 한때 직장 동료였던 전직 부기장이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살해 동기는 퇴직 후 공제 보상금과 관련되어 있다. 경찰은 그가 사이코패스로 판정될 정도는 아니지만, 피해망상이 의심된다고 주장한다. 가해자는 언론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살해 목적을 밝혔다. 기자의 질문에 그가 한 문장으로 힘주어 세상에 던진 말은 섬뜩했다. “악랄한 기득권이 한 인생을 맘대로 파멸시켜도 된다는 그 오만함, 휘브리스가 네메시스, 천벌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이 발언의 가치를 평가할 이유는 없다. 다만, 필자는 그가 사용한 특정 개념을 오늘의 세계와 우리 사회를 비추는 반면교사로 삼고 싶을 뿐이다.

그리스어 휘브리스(Hybris)는 ‘오만’

그리스어 휘브리스(Hybris)는 ‘오만’으로 번역되는 그리스 영웅의 비극적 결함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만심을 넘어 신이나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인간의 오만함을 말한다. 네메시스(Nemesis)는 율법의 여신으로 징벌(복수)을 상징한다. 이 여신의 임무는 오만한 비극적 영웅을 파멸시킴으로써 흐트러진 것을 바로 잡아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오만은 그리스 비극의 구성요소이면서 그리스 철학자들이 가장 경계했던 말이라고 한다. 그리스의 신화를 보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영웅 오이디푸스는 오만으로 인하여 비극적 최후를 맞았고,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이카로스는 자신의 오만으로 인하여 날개를 잃고 추락했다. 이처럼 그리스 비극이 주는 교훈은 인간이 오만을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든 파국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이와 달리, 휘브리스를 오히려 예찬하는 철학자도 있다. 즉 어떤 한계나 끝은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는 것으로 해석하여 ‘끝까지 가보기’라는 의미를 추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휘브리스를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주체의 역량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므로 본 논지에서는 이를 생략하고, 휘브리스의 부정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한다.

인간이 경계해야 할 오만이란 악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황제(왕)의 오만, 귀족의 오만, 주인의 오만, 지배자(권력자)의 오만, 정치인의 오만, 엘리트(지식인)의 오만, 자본가(부르주아)의 오만, 언론(인)의 오만, 선생(가르치는 자)의 오만 등은 가능한 말이지만, 백성의 오만, 민중의 오만, 노예의 오만, 무학자의 오만, 노동자의 오만, 배우는 자(학생)의 오만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오만은 현실적으로 강자(기득권)의 덕목처럼 여겨질 정도로 특권적인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를 위협

세계는 지금 러시아와 미국을 중심으로 위험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푸틴과 트럼프, 그리고 네타냐후의 오만이 초래한 불행이다. 특히 중동 전쟁은 에너지 수급 문제까지 야기하면서 세계 경제가 위기 상황이다. 얼마 전 교황 레오 14세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피로 물든 손으로 올리는 기도는 거부당할 것이다.” 교황의 발언에 앞서 “우리 병사들이 자비를 베풀 가치가 없는 자들을 향해 압도적인 폭력을 가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위대하고 강력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를 간구한다”는 헤그세스 미국방장관의 발언(3.25 국방부 기도에서)이 있었다. 트럼프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26.1.8)에서 “나를 멈출 수 있는 것은 국제법이 아니다. 오직 나 자신의 도덕성과 판단뿐이다”라는 발언으로 패권자의 오만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왕권신수설을 연상할 만한 오만불손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목표로 전쟁을 일삼고 이민자를 비롯한 타국민의 생명을 유린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패권주의와 트럼프의 오만, 그 배후에는 기독교 복음주의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국내적으로 오만의 극치는 윤석열의 계엄이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계엄은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력의 오만이 낳은 폐해는 오롯이 국민적인 고통과 혼란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새로운 이재명 정부의 탄생으로 그 폐해가 극복되고 있지만, 아직도 ‘윤어게인’을 외치는 시대착오적인 기운들이 남아 있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를 위협하는 또 다른 오만의 사례로는 일부 유튜브 매체가 있다. 최근 대형 유튜브의 경우 구독자 수가 몇십만에서 몇백만에 이른다. 이들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책임성의 윤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사회를 혼란시키고 공적인 소통을 가로막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여과 없이 유포시키면서도 어떠한 사과나 겸손도 없다. 이들은 수많은 구독자를 매개로 자본과 사회적인 영향력을 키우면서 사적 이해관계를 위한 정치개입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은 소위 진보와 보수의 진영적 차원을 넘어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이들의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 유튜브 중독은 우리의 일상을 잡아먹고 있으며,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하여 사유의 능력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 없이 살아가면 언제든지 사회적 부정과 폭력에 가담할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 생각 없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위가 곧 공동체의 해악이 된다. 선과 악은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 일정한 역할수행과 함께 권한 만큼 책임을 지면서 살아가야 한다. 나의 사소한, 또는 사적인 일상은 공동체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보편적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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