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7-16 오전 07:28:23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고성문학회 회원작품 릴레이특집여성-여당당노인-노년시대청소년-1318종교-더소울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최종편집:2026-07-16 오전 07:28:23
검색

전체기사

고성문학회 회원작품 릴레이

특집

여성-여당당

노인-노년시대

청소년-1318

종교-더소울

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기획/특집 > 특집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간성 명태를 간태(杆太), 강원도 명태를 강태(江太)로 불러

고성명태傳 ③ 간성명태(杆太) 이야기

2026년 05월 13일(수) 08:52 [강원고성신문]

 

↑↑ [그림1] 원산매일신문, 1936.10.13.일자, <조선명태어>(3)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 강원고성신문


1. 간성명태의 기원

명태 이야기는 ‘명천(明川)의 어부 태(太) 모씨가 낚시로 잡은 물고기’라는 설화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조선의 명태어업이 시작된 곳도 명천지방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러한 주장은 나름의 문헌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민간에 전승되는 이야기를 학자들이 수집하여 기술하는 정도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하나의 이야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변주하여 만든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내용은 다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일제강점기 수산 전문가로 활약한 정문기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지금으로부터 약 6백 년 전, 즉 고려시대에 강원도 간성군[지금의 양양군(원본 오류, 고성군) 간성면] 연해에서 상당히 많이 어획되어 북어(北魚)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려 왔으나, 그 시대에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다지 인기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함경북도에서 어획되어 명태어(明太魚)라고 이름을 짓게 되었으며, 세상에 널리 퍼져 일반인에게 유용한 어류가 되어 오늘날과 같이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원산매일신문, 1936.10.13.일자 <조선명태어(3)>](그림 1 참조)

명천의 태 모씨 이야기를 모태로 하는 명태(잡이)의 기원은 조선 초기(태조 등)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이미 명태잡이가 성행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즉 고려시대부터 강원도 간성군에서 ‘북어’라는 이름의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것이고, 나중에 함경북도에서 어획되면서 ‘명태어’라고 이름을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문헌적인 근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36년 당시 정문기는 민간에서 구전되는 이야기를 수집하여 기록한 것인지, 혹은 다른 출전을 토대로 한 주장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문기의 글이 품고 있는 가치는 ‘북어’라는 개념이 고려시대 간성군에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한편, 실학자 유득공(1748-1807)은 『고운당필기』의 <北魚>라는 글에서 북어와 명태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필자는 유득공의 주장을 논거로 정문기의 글을 해석해 보려고 한다. 앞 회에서도 소개한 유득공의 주장은 이렇다.

↑↑ [그림2] 『한글』(1936), <명태의 이름과 어원> 국립중앙도서관.

ⓒ 강원고성신문

한 곳에서 생산된 뒤에 팔도로 두루 퍼지는 것은 바로 북해의 명태다. 이 물고기는 수가 매우 많은데 북어라고 불린다. … 이 물고기는 함흥 이북에서 나니 고려인들은 그 맛을 보지 못한 듯한데, 여진이 독점한 탓이다. 성조(태조)에 이르러 함경도를 개척하면서부터 백성들이 그 이로움을 누리게 되었다. … 또 들으니 북쪽 지방 사람들이 명태라고 하는 것은 여진 말이라고 한다.(『고운당필기』 한국고전번역원, 2020)

유득공이 명태를 함흥 이북에서 나는 물고기로 규정하고, 고려인들은 그 고기 맛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함흥 이북은 조선의 6진 개척 이전인 고려시대에는 여진족이 지배한 땅이었다. 또한 나중에 들으니 명태라는 말은 여진 말이라고 하더라. 고려시대에는 함흥 이북에서 여진족이 명태라는 이름의 물고기를 잡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로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여진문자가 새겨진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보면, 고려시대 강원도 특히 간성군에서도 (명태가) 북어라는 이름으로 많이 잡혔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다. 또 하나, 명태라는 말은 여진 말이고, 함경도에서 먼저 사용되었을 것이란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다. 일반적으로 함경도가 명태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유득공의 주장처럼 그곳은 한때 여진족의 지배를 받던 지역이다. 따라서 함경도의 명태가 우리 민족의 물고기로 인정받은 것이 조선시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간성명태는 고려시대부터 민족의 물고기였다’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2. 간태(杆太)와 강태(江太)

예로부터 우리 지역성(강원도, 간성)을 대표하는 명태의 고유어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강원도 간성 앞바다에서 잡히는 명태”라고 설명하는 ‘간태(杆太)’이고, 다른 하나는 “강원도에서 잡히는 명태, 품질이 좋지 않다”고 설명하는 ‘강태(江太)’다. 이처럼 간태와 강태라는 말은 다음 글에서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강태(江太)라는 것은 강원도 바다에서 잡히는 명태의 이름인데, 강은 강원도의 강(江)자, 태는 명태의 태(太)자를 취하여서 된 이름이다. 경경 지방에서는 보통 빛 검고 단단하고 좋지 못한 마른 명태어를 말함인데, <데덕북어>(더덕북어의 오류)의 반대의 뜻이다.
간태(杆太)는 강원도 간성(杆城) 바다에서 나는 북어로서, 원산(元山) 지방에서는 강원도에서 나는 명태를 강태(江太) 또는 간태(杆太)라고 한다.[『한글』(1936, 조선어학회), 「명태의 이름과 어원」에서] (그림 2 참조)

일제강점기 수산전문가로 알려진 정문기가 작성한 글이다. 이 글의 주장으로 보면, 간태와 강태는 ‘강원도에서 나는 명태’라는 뜻으로 혼용되고 있다. 우리말 사전이 최초로 출판된 것이 1938년의 『조선어사전』으로 볼 때, 정문기의 글이 출전(出典)이 되어 간태와 강태라는 말이 오늘날까지 국어대사전에 등재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말은 우리 간성지역에서 널리 사용된 말이라기보다 원산시장의 상인들이나 전국의 상인들의 입에 더 많이 오르내렸을 것이다. 이것은 아래 <시장매매상황>의 자료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강태는 ‘품질이 좋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자. 예로부터 얼려서 말린 북어로서 최고는 ‘더덕북어’였다. 더덕북어의 생산 조건은 날씨다. 처음 덕에 걸 때 명태가 추위에 꽁꽁 얼어야 육질이 팽창하고 바람에 건조되면서 노랑태가 된다. 강원도는 함경도보다 날씨가 따뜻한 관계로 더덕북어의 제품 생산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20년의 명태 시장가격을 보면, 더덕북어 한 쾌에 65전이지만 강원도에서 생산한 북어(강태)는 30전에 불과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강원도 명태가 전부 나쁜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1924년 다른 자료에 따르면, 간태가 경태나 신포태보다 비싼 편이었다. 또 다른 자료에서도 간성명태의 인기는 상당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동아일보, 1920.8.30.일자 <경성 종로 공설시장 가격표>(해물과 자반)= 장곽-한손 4원 50전/ 꼭지멱-한손 35전/ 전복-1개 20전부터/ 북어(더덕북어)-한쾌 65전 / 북어(江太)-한쾌 30전/
조선일보, 1924.12.8.일자 <원산해물의 매매상황>= 신건태(新浦乾太) 총수 153태 70급/ 가격 (上) 50원, (中) 40원, (下) 35원/ 경태(鏡太) 총수 520태 88급/ 가격 (上) 44원, (中) 35원, (下) 26원/ 간태(杆太) 총수 682태 6급/ 가격 (上) 59원, (中) 46원, (下) 36원/
조선일보, 1924.12.13.일자 <원산해물매매>= 북관각진 명태 총수 96태 6급/ 가격 50원 내지 71원 50전 경성명태 총수 164태 43급/ 가격 38원 내지 63원 간성명태 총수 63태 1급/ 가격 60원 내지 68원
동아일보, 1938.12.25.일자 <건명태신품 산지고로 반발>= 건명태는 강원도에서 상당히 대량으로 생산되는데, 신품의 출회出廻(시장에 나와 돎)를 본 후로 는 일반의 수요는 이곳에 쏠리게 되어 인기를 독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요는 각지에서 격증을 보이므로 산지에서는 주문의 쇄도로 품귀 경향이어서 가격의 인상을 보이었다.

↑↑ [그림3] 승정원일기[1652년 음력 9월 10일]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 강원고성신문


3. 명태의 최초 공식기록에 나타난 간성명태, 그리고 명란

명태에 관한 최초의 공식기록물(국가기록물)은 『승정원일기』다. 1652년 음력 9월 10일에 사옹원에서 승정원에 올린 장계에 ‘명태란(明太卵)’이란 말이 등장한다. 또한 장계에서는 ‘선장(膳狀)대로 대구알젓을 봉진하지 않고 명란젓을 봉진한 일에 대해 강원도에서 조사하여 해당 봉관(封官)을 문책(從重推考)할 것’을 청하고 있다. 장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옹원 관원이 도제조의 뜻으로 아뢰기를, 강원도에서 궁궐에 올릴 진상품 가운데 연어알젓을 대구알젓으로 대납하라고 선장(膳狀)에 써놓았는데 명태알을 보내어 일이 혼란스럽습니다.( 그림3 참조)

위의 내용에 따르면 이미 강원도에서는 ‘명태알젓(명란)’을 고급 식품으로 여겼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강원도에서 명태의 주산지는 어디였을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후대 자료를 살펴보면, 『여지도서』(1757)의 강원도 영동 9군(흡곡, 통천, 고성, 간성, 양양, 강릉, 삼척, 울진, 평해) 중에서 <간성군 토산(土産)>에서만 ‘명태’가 등장한다. 이처럼 100여 년 전 강원도 명태알(젓)을 진상품으로 올린 사실이 기록되었다는 것과 100여 년 후 강원도 영동 9군에서 간성군 읍지에서만 명태가 등장한다는 것을 상호 연관성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 정문기의 주장처럼 강태가 곧 간태인 점을 고려할 때, 『승정원일기』(1652)에 등장하는 ‘강원도의 명태알(젓)’은 주로 간성군에서 잡은 명태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명태 최초 공식기록은 간성군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 [그림4] 水城歌 『곤륜집권2』 한국고전종합DB 제공.

ⓒ 강원고성신문


4. 명태의 고장, 명태의 노래 : 수성가(水城歌)

수성가는 최창대(1669-1720)가 1691년에 지은 노래(시)다. 수성(水城)은 조선시대 간성군의 별칭으로 널리 애용되었던 지명이다. 노래는 관아 인근에 있었던 영월루, 문암2리 능파대, 옛 열산현의 화진포, 청간정과 만경대, 북천 등을 소재로 삼고 있으며, 송어, 연어, 은구어, 명태를 노래했다. 이 노래는 명태라는 최초 공식기록인 승정원일기(1652)와 거의 동시대의 작품이란 점에서 그 사료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간성이 예로부터 명태의 고장임을 증명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그 역사성이 높은 작품이다. 간성의 명태를 노래한 가사 중 <기6>의 내용은 ‘어부가 매일 명태어를 잡으니 산더미처럼 쌓여 셀 수가 없네 삼백 냥에서 오백 냥으로 날마다 영서의 장사꾼에게 팔린다네’이다. (그림4 참조)

5. 개명태(開明太)의 발견

그동안 명태에 관한 수많은 자료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은 낯선 단어 하나가 있다. 그것은 개명태(開明太)라고 하는 존재다. 개명태가 무엇이며, 그것이 간성명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자.

현재 개명태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다. 일제강점기 언론에서 수산물시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나 당시 수출 품목에 등장하는 정도다. 따라서 개명태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제한적인 자료를 통하여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개명태를 직접 설명하는 자료에 따르면, “북녘에서 짝태와 같이 쓰이는 말로, ‘짝명태, 짜개명태, 개명태’가 있다. ‘짜개다’와 ‘명태’가 결합한 ‘짜개명태’에서 ‘짝명태’, ‘개명태’로 줄었다가 ‘짝태’로 전화되었다.”[한겨레신문, 2008.1.30.일자 <짝태>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이 설명은 짝명태, 짜개명태, 개명태가 짝태와 동일한 존재로 본다. 한편 북한의 『조선말대사전』(1992)에는 ‘짝태’와 ‘짝명태’는 등재되어 있으나 ‘개명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전에서 짝태의 설명은 이렇다. “명태의 배를 쭉 째서 밸을 꺼내고 소금에 절구어 넓적하게 말리운 것” 그리고 “짝명태와 짝태”는 동의어다.

조선일보, 1931.8.19.일자 <조선수산업>(3)= 경기의 건은(乾銀), 평북의 백어(白魚, 뱅어), 평남과 충남의 석수어, 경남과 전남의 건해태(마른 김), 강원의 개명태(開明太), 함남의 건명태와 명본간유(明本肝油), 함북의 유곤포(乳昆布, 다시마)는 동양적으로 저명(著名)하다. 동아일보, 1940.6.11.일자 <염건어 저하>= 건명태 1태(서호진산), 80원 내지 90원에서 70원 내지 80원으로, 개명태 百斤(100근)당, 20원 내지 25원에서 18원 내지 23원으로, 개설(대구) 百斤당, 45원 내지 47원에서 43원 내지 45원으로 저하.

↑↑ 거진항의 명태 따기 작업(1994, 남동환 제공).

ⓒ 강원고성신문

한편, 위의 자료를 종합하면, 개명태는 시장에서 건명태(북어)처럼 ‘두름’(급級, 20마리), 혹은 태(100두름)가 아니라 ‘100근(斤)’ 단위로 거래되었다는 점, 동건명태(凍乾明太, 얼려 말린 북어)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00근 단위로 거래되었다는 것은 완전한 건조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배를 갈라서 내장을 제거하고 염장한 것이거나 살짝 말린(半乾) 정도의 명태가 아닐까 추정된다. 그렇다면 앞서 김태훈이 설명하는 ’개명태가 곧 짝태‘라거나 개명태는 북녘에서만 생산된 제품이라는 주장과는 결이 다른 개명태의 설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참고자료를 살펴보면, 『강원도간성군읍지』(1884)의 진공(進貢)에는 ‘반건소염지품)’이란 단어와 더불어 반건대구어(半乾大口魚)가 등장한다. 여기서 반건소염지품은 ‘약간의 소금에 절인 반건조한’ 물건을 의미하고, 반건대구어가 그러한 진상품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전거에 비추어보면, 반건대구와 함께 반건명태의 제품도 간성군에서 생산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 개명태가 간성명태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를 살펴보자. 위의 자료에서 ‘강원의 개명태가 동양적으로 저명했다’는 것은 1930년대 강원도에서 생산된 개명태가 상해, 대만, 만주 등으로 수출되는 상품이었다는 의미다.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건대구(말린 대구)가 강원도를 주산지로 하여 삼척, 주문진, 거진 등에서 생산되고, 수출까지 하고 있었다.(조선일보, 1928.12.3.) 강원의 개명태가 수출 품목이었다는 점과 건대구의 주산지로 거진도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간성지역에서 개설과 개명태(開明太)의 제품도 가능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명태는 약간의 소금에 절인 상태의 물건으로 상당한 정도의 무게감이 있어 타 지역으로의 이출이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이 무게감으로 인하여 시장거래에서 100근 단위로 가격을 설정했다고 추정된다. 그런 점에서 개명태는 반건명태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러한 개명태가 강원도에서 생산되어 수출되었다는 점에서 간성지역의 어부들이 잡은 명태(杆太, 江太)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고래로 어부 중에서 가장 힘찬 어군이 명태어군(明太魚軍)이라고 한다. 필자가 누리는 개명태의 발견의 기쁨도 이들의 고귀한 삶에서 비롯되었다. <계속>

------------------------------------------------------------------------

ⓒ 강원고성신문

본지는 ‘고성명태傳’이라는 제목으로 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이성식 연구원의 글을 연재한다. ‘명태의 고장’으로 유명한 고성지역의 명태 관련 풍속과 명태의 기원을 살펴보고, 해방 전후부터 6.25 한국전쟁과 분단 이후 현재까지의 명태 조업 관련 이야기 등을 각종 사료를 바탕으로 심도 있게 다루며 명태를 통해 우리의 삶이 더 확장되는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반도체와 깐부 회동..

“잠시 쉬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

민선 9기 고성군정·제10대 군..

정년·명예 퇴직공무원 공로패 수..

관광지와 특산물 담은 이모티콘 ..

해양심층수산업 고성진흥원 해변 ..

고성군가족센터 결혼이민자 14명..

고성소방서·군청 소방안전물품 지..

금강농협 ‘위더스(WITH US..

2027년 산림소득분야 보조사업..

최신뉴스

토성면 7월부터 의약분업 시..  

군청 기자단 송지호 대섬 정..  

어린이 안과 검진을 통해 이..  

고성군 하반기 노인 목욕비·..  

북고성 실향민의 삶 기록으로..  

일상 속 복지로 사회적 고립..  

언어와 문화를 이어주는 한국..  

간성전통시장 안전하고 쾌적하..  

대화와 소통, 타협과 협력으..  

한성희 연구원 우수상 수상..  

고성군자원봉사센터 상반기 고..  

북쪽의 침묵..  

구상미술 대표하는 112명 ..  

원니스밴드와 함께하는 마을콘..  

장애인 평생교육 지원 체계 ..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daum.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