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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오해와 진실

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2026년 06월 11일(목) 09:06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화진포는 자연 석호이면서 고성군이 보유하고 있는 고귀한 지역 유산이다. 1971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강원특별자치도 자연유산’으로 변경되었다. 화진포는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인하여 예로부터 명승지로 칭송받기도 했다. 화진포가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서양인 별장촌’(외인부락)이 들어서면서부터다. 당시 화진포의 변화를 바라보는 민심의 표정은 곱지 않았다.

1938년 여름 동해북부선의 열차가 ‘현내역’(간이역, 철통리 소재)에 이르자, 열차 안에서는 화진포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양코들이 원산 명사십리(明沙十里)에서 별장을 떠가지고 화진포 호변으로 와서 개딱지 같은 어촌을 씨러 버린 후 날러갈 듯한 층층집을 짓고 히히낙낙 거린다는 것이다.”[원문](동아일보, 1938.8.13.일자)

‘예배당’이 아닌 개인 별장

1937년까지 오대면(거진면) ‘장평리(長坪里)’라는 반농반어(半農半漁) 마을이 존재했던 화진포 해변에는 1938년이 되자 평화로워 보이던 작은 어촌을 쓸어버리고 원산 명사십리에서 이주해온 ‘서양인 별장촌’이 들어선 것이다. 해방 이후 ‘김일성 별장’으로 알려진 ‘화진포의 성’은 이때 셔우드 홀 선교사의 개인 별장으로 건립되었다.
그런데 현재까지 화진포의 성은 ‘선교사를 위한 예배당’으로 소개되면서 많은 오해를 낳고 있다. 필자는 셔우드 홀이 남긴 자서전, 『닥터 홀의 조선회상』(2016)을 근거로 ‘화진포의 성’이 ‘예배당’이 아닌 개인 별장임을 증명하여 지역의 잘못된 역사문화를 바로잡고자 한다.

1937년 가을, 화진포를 처음 방문한 셔우드 홀은 바닷가 언덕 위에 별장의 위치를 잡고 건축을 고민하던 끝에 히틀러의 공포정치를 피하여 망명한 독일인 베버라는 사람을 만나 그에게 건축을 맡겼다. 이후 셔우드 홀의 고민은 건축비 마련이었다. 건축비와 관련한 그의 회상을 들어보면, 건축의 목적과 용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돈이 없어서 궁지에 몰렸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내 개인적인 경우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근검 생활을, 선교사업과 관계된 일은 특별히 각처에 원조를 청하는 방법을 써왔다. 그러나 지금 내가 처한 이 곤경은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나는 더욱 난감했던 것이다. 아무리 근검절약을 해도 이 큰 계산서를 처리할 수는 없다. 선교사업과는 다른 별장 문제니 다른 이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청할 수는 없지 않은가.(같은 책, 617-18)

만약 그가 ‘화진포의 성’을 예배당으로 계획했다면 그것은 ‘선교사업과 관계된 일’로 원조를 청하여 건축비를 해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선교사업과 무관한 건축, 즉 개인 별장이므로 건축비는 오롯이 셔우드 홀 자신이 부담해야 했다. 그는 건축비용 마련을 위하여 자녀의 교육비로 투자해두었던 평양의 땅을 팔아야만 했다. 이렇게 탄생한 별장은 ‘화진포의 성’이라 이름하였다. 이후 셔우드 홀이 화진포의 성을 찾아 휴가를 즐긴 것은 몇 차례에 불과하였다. 1938년 건축하여 1940년 체포되기까지 그는 3번(?)의 여름휴가를 화진포에서 보냈을 뿐이다.

예배나 부흥집회는 해변에서

그럼, 화진포 별장촌에는 예배당이 따로 있었을까 하는 물음이 생긴다. 1940년 여름, 셔우드 홀은 영국 성공회 캐럴 신부를 화진포의 성으로 초대하였다. 그는 당시 화진포 해변의 모습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화진포의 회상> 해변에서는 현지 외국인을 위한 부흥 집회가 열렸다. 해변의 쾌청하고도 정상적인 생활은 멀지 않은 곳에서 세계대전이 곧 터질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게 했다.(같은 책, 662쪽)
<부인 매리언의 편지> (1940년) 8월 첫 주일, 남편과 손님인 캐럴 신부와 함께 화진포의 별장 뜰에 서서 호수와 바다에 반사되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7시, 누가 우리 집 주위를 배회하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평복을 입은 두 헌병이 와 있었다. 캐럴 신부를 체포하러 왔다는 것이다. … 헌병들이 조심스럽게 캐럴 신부를 체포해갈 때는 마침 아침 집회 시간이었다. 해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고, 그들은 그 사이를 지나가게 되었다.(같은 책, 663쪽)

이처럼 화진포의 별장촌에서 대중적인 (부흥)집회는 주로 해변의 야외 예배 형식으로 열린 것으로 기술하였다. 한편 선교사 셔우드 홀 자신이 밝힌 대로 ‘화진포의 성’은 개인 별장으로 건축되었으며, 선교사를 위한 예배당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자서전에서는 그것을 예배당으로 사용했다는 어떠한 근거도 찾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과 지난해 개관한 ‘화진포 셔우드 홀 문화공간’, 그리고 새로 단장한 ‘이승만 별장’ 전시관에서 소개하는 <김일성 별장의 유래> 중 ‘선교사를 위한 예배당’이란 표현은 삭제 수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작은 정보의 오류가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김일성 별장이 ‘선교사를 위한 예배당’으로 남아 있는 한 화진포는 언제든지 ‘선교의 성지’로 오해될 수 있다. 지역 문화유산을 역사적 자료에 근거하여 소개하는 것이야말로 지역 유산을 통한 관광문화의 튼실한 기초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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