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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金剛山, ‘바다에서 본 다이아몬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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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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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5일(수) 08:43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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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고성주민들은 18년 전 이맘때 큰 상실감과 불안감에 휩싸였던 기억을 되새긴다. 2008년 7월 12일 박왕자 피살사건을 계기로 금강산관광이 느닷없이 덜컥 중단되었다. 이후 남북관계는 급격히 경색되었고, 금강산은 ‘통일전망대의 시선’에 갇히고 말았다.
예로부터 금강산은 간성군과 고성군의 지역유산으로 종교적인 좌표이고 생활의 동경이요 문화적인 표상이었다. 금강산 향로봉, 금강산 건봉사, 금강산 화암사라는 고유지명들이 여전히 우리 지역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또 한편으로 금강산은 분단의 상징이요 평화의 상징이다.
이러한 금강산이 지난해부터 세계적인 명산으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강산의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되고 있으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짚어보려고 한다. 금강산의 가치를 더듬으며 삼복염천의 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역유산에서 세계유산이 된 금강산
북한은 2021년 금강산(金剛山 1,638m)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하여 202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복합유산(자연유산 및 문화유산)의 등록이 허가되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금강산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 기준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금강산-바다에서 본 다이아몬드 산’[Mount Kumgang-Diamond Mountain from the Sea]이라는 이름으로 등재할 것을 권고(해금강과 총석정 제외)하였다. 금강산의 장엄한 변신이다. 여기서 유산위원회가 금강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설명하는 내용을 대략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중략) 해발 1600m 가까운 높은 고지대에 훼손되지 않은 울창한 숲, 초원, 습지, 아고산(亞高山) 관목지대 속에 거의 흰색에 가까운 매끄러운 화강암 지형이 장관을 이룬다. 안개, 비, 햇빛, 구름 등 쉼 없이 변화되는 날씨 덕분에 이 산의 극적인 아름다움은 더욱 눈부시다. 이 유산의 인상적인 경관은 사계절의 계절마다 더욱 다채롭게 변화된다. 금강산의 능선 봉우리에서 해안선까지 막힘없이 펼쳐지는 전망은 이 유산이 바다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입증한다. 금강산은 독특한 지형 및 풍광과 한반도의 오랜 불교 역사, 순례, 산악숭배의 전통이 서로 복합적이고 긴밀하게 얽혀 있으므로, 이 유산은 이러한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보여주는 ‘연관 문화 경관(물리적 형태보다 그 장소와 연관된 가치가 핵심적인 문화 경관)’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 세계의 ‘동쪽의 수호신’으로서, 2개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이 연속유산은 수 세기에 걸친 한국 산악 불교문화의 특별한 면모를 입증하며, 많은 불교 신자들이 일생에 한 번쯤 꼭 방문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장소이다. …중략… 사찰, 석탑, 비석, 사리탑, 조각상 그리고 석등은 한국 산악 불교가 중단 없이 이어져 온 발전 과정을 입증한다. 또한 이 유산에는 중요한 석각 서예 작품과 유명한 절경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탐방로도 특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문화유산의 일부 속성들에는 산신령, 북두칠성(큰곰자리), 야생 동물을 섬기는 토속 민간신앙과 불교 및 도교 등이 혼합된 증거도 포함되어 있다. (중략)”
특히, 유산위원회가 밝힌 금강산의 등재 기준을 보면 이렇다. 금강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핵심은 신성한 산으로, 5세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산악 불교의 전통과 수행, 그리고 역사적인 장소로서의 기능이다. 또한 예술가, 시인, 종교 지도자, 순례자, 그리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영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 등록 허가
한편 일제강점기 금강산과 자주 대비되었던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富士山 3,776m) 역시 2013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후지산은 ‘후지산, 성스러운 장소 그리고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란 이름으로 등재되었다. 일본은 후지산을 자연유산으로 신청하였다가 탈락되자 문화유산으로 재신청하여 인정받은 사례다. 중국 역시 비슷한 전례를 지니고 있다.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 산시성의 우타이산(五台山 3,058m?)도 처음에는 복합유산으로 신청했다가 탈락되고 사찰과 탑 등 문화적 경관만 인정받아 문화유산이 되었다. 그만큼 자연유산의 기준은 엄격하다. 그런 점에서 금강산의 복합유산 등재는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금강산은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이루고 있으며, 종교와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서 한반도 최초 복합유산이다.
덧붙이자면, 1910년대 일제강점기 금강산 개발이 시작되면서 일본인들은 금강산을 후지산과 대비시키면서 탐승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 내부에는 금강산과 후지산 관련 내용의 벽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을 정도다.
이러한 금강산을 곁에 두고 살았던 고성주민들의 자긍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간성지역 주민들은 금강산에 바친 희생이 너무나 크다. 1914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전국적인 행정 통폐합을 단행하면서 간성군과 고성군을 간성군으로 통폐합시켰다. 당시 간성군의 군세(인구, 면적, 조세의 규모 등)가 고성군보다 월등히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5년 후 갑자기 간성군청이 (북)고성으로 이전되고 군의 명칭도 고성군으로 변경되었다. 이처럼 천년 읍지의 전통을 이어온 간성(군)이 하루아침에 군청을 잃고 면소재지로 강등되는 수모는 왜 일어났을까. 필자가 2023년 발표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1914년 경원선 철도의 개통 직후부터 시작된 금강산 개발이 단초였다. 여기에는 장전항(당시 통천군)과 금강산 일대에 거주하던 일본인 사업가들(‘제국의 브로커’)의 영향력이 작용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간성 주민들은 ‘금강산 개발’이라는 명분에 큰 저항 없이 희생을 감내한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의 백미는 역시 외금강과 해금강의 이어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계유산 금강산을 ‘바다에서 본 다이아몬드 산’이라 이름 지었듯이 금강산과 바다의 조화는 문화경관적 요소에서 으뜸이다. 또한 세계유산위원회가 금강산의 완전성을 평가하면서 “유산의 주변 지역은 대규모 개발의 영향을 비교적 거의 받지 않은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낮은 개발 압력과 오랜 기간의 엄중 보호 조치 덕분에 이 유산의 자연 생태계는 뛰어난 상태로 훼손되지 않은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힌 점은 우리에게 큰 울림의 성찰적 메시지로 들린다. 오늘날 ‘관광객 유치’라는 경제적·행정적 논리와 관광소비 욕구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기준 없이 허물어지는 해안 일대(섬과 호수, 해변)의 자연 및 문화경관의 원형적 가치 훼손은 심각하고 안타까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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