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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경기 파주 임진각까지 350여 km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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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담 작가의 ‘2026 통일걷기’ 체험기
<평화로 이어온 10년, 함께 걸어갈 통일의 길> 주제
8월 2일 통일전망대 출발, 14일 임직각에서 해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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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5일(토) 09:02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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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026년 8월 2일,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경기 파주 임진각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멀리는 금강산 채하봉에서부터 낙타봉 그리고 양사언의 글씨 이야기가 전해오는 감호를 비롯하여 군사분계선(MDL,휴전선)이 지나는 작은 섬 송도, 말무리반도라고도 불리는 해금강 만물상 구역과 가까이는 금강산으로 향하는 육로와 동해북부선 철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 ⓒ 강원고성신문 | | 화평할 날 없는 2026년 8월 2일(일),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경기 파주 임진각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맑고 뜨거운 날씨 덕분에 십 년 전인 2017년 8월 3일(목) ‘통일걷기’ 첫걸음을 떼던 그날처럼 멀리는 금강산 채하봉에서부터 낙타봉 그리고 양사언의 글씨 이야기가 전해오는 감호를 비롯하여 군사분계선(MDL,휴전선)이 지나는 작은 섬 송도, 말무리반도라고도 불리는 해금강 만물상 구역과 가까이는 금강산으로 향하는 육로와 동해북부선 철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저 바라다볼 뿐. 어쩌면 2019년 세 번째 통일걷기에서 처음으로 비무장지대(DMZ) 금강산전망대(717OP)에서 자동차로 이동 금강통문에서부터 통일전망대를 향해 바다를 곁에 두고 해안 철책 곁을 걸었던 일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첫날 금강산 건봉사에서 평화와 통일 기원 법회를 열고 전영일 작가가 만든 종이비행기 모양의 등에 휴전선을 넘나드는 통일의 꿈을 담아 건봉사 대웅전에 헌등했다.
옛 간성군의 진산이었던 금강산 향로봉을 멀리 두고 적계삼거리까지 걷는 길섭에는 산꽃들이 피고 졌고, 그 기다림과 설렘은 구불구불 휘돌아가는 안개 낀 산길을 헝겁지겁 걷게 했다. ‘향로봉·건봉산 천연보호구역’인 향로봉은 혼자서는 출입은 물론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민통선이면서 주요 군사기지였고, 향로봉지구 전투 전적비에는 숱한 생명들의 죽음이 아로새겨졌으며 그곳에서 발원한 물길은 북쪽 남강으로 흘러 동해로, 남쪽 인북천으로 흘러 서해에 다다르며 인제와 양구는 물론 금강산과 동해까지 한눈에 넉넉히 들어왔지만, ‘통일걷기’에서는 적계삼거리까지 걸었고, 그곳에서 인제 방향으로 내려섰다. 철망 속에 핀 샛노란 곰취꽃과 주황빛 동자꽃, 도깨비부채 그리고 꿈에 그리던 고산식물이면서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로 일본인에 의해 금강산에서 발견된 보랏빛 금강초롱꽃과 마주쳤다. 내려오는 길에는 비탈에 이식한 왜솜다리 떼판을 만났다. 어쩌면 곰딸기는 덤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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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옛 간성군의 진산이었던 금강산 향로봉을 멀리 두고 적계삼거리까지 걷는 길섭에는 산꽃들이 피고 졌고, 그 기다림과 설렘은 구불구불 휘돌아가는 안개 낀 산길을 헝겁지겁 걷게 했다. 사진은 곰취꽃. | ⓒ 강원고성신문 | | 인제군/양구군 대암산 용늪에 올랐다. 국내 최초 람사르 등록 습지로, 휴전선 이남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해발 1304m 산마루에 형성된 고층습원으로 큰 용늪, 작은 용늪, 애기 용늪으로 이뤄졌으며 이곳은 북방계 식물이 남하하다가 남방계 식물과 만나는 곧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이번에는 미처 꽃 피지 않아서 볼 수 없었던 북방계 식물인 기생꽃과 닻꽃을 볼 수 있는, 그리고 모처럼 검붉고 날렵한 제비꼬리 같은 제비동자꽃을 떼판으로 만났다. 멸종위기 종들이다. 만질 수도 향기를 맡을 수도 없었지만 ‘데크’에서 허리를 굽혀 내려다보았다. 손을 흔들고 발을 동동거리며 반가움을 전했지만 무심한 꽃들은 그저 붉고 붉었을 뿐. 얕은 물속엔 개통발이 숨쉬고, 미처 다 만날 수 없는 숨탄것들 사이로 노루가 뛰어 달아나고, 은점표범나비는 쉬땅나무 꽃을 희롱하고, 눈길 끝에는 향로봉이 바라다 보이며 아랫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꽃들이 피고 져도 혼자서는 오를 수 없는, 하늘로 오르는 용도 쉬었다 가는 용의 늪.
양구와 인제를 잇던 먼맷재길, 멧돼지가 많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만 아리랑고개를 넘은 뒤 길섶에는 가시철망에 매단 지뢰 표지판이 뒤룽거리고, 숲은 메숲졌지만 들어설 수 없으며 다만 오래전 사용했을 돌에 새긴 길 안내 표지석을 구경하면서 터벅터벅 걸었다. 양구에서 인제를 오가야 했던 거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애환은 길바닥에 묻히고, 지나가는 행인이 되어 DMZ자생식물원에 닿았다. 새롭게 만든 북방계식물과 북한식물을 만났다. 대청부채도 보았으나 오후에나 꽃이 핀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름도 재미있는 주저리고사리며 백두산떡쑥과 꼬리까치밥나무, 금강애기나리, 시베리아용머리와 같은 식물들을 만났고, 우리 마을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삼지구엽초가 희귀식물이라고 하여 놀랐다. 양구군 동면과 해안면을 잇는 돌산령지게놀이로 남은 돌산령을 넘는 대신 3km에 이르는 터널, 어둡고 컴컴한 굴을 지났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가칠봉 능선에 있는 을지전망대에 올랐다. 해안분지는 물론이거니와 금강산이 바라다보이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약 1km 남쪽 지점에 위치한 다시 말하면 비무장지대에 있었고, 이곳은 우리 땅이지만 유엔사 관할로 10번의 통일걷기 가운데 처음으로 미군이 통역관을 데리고 나타났다.
양구군 동면 월운리 민통선인 비득 초소를 넘었다. ‘금강산 가는 길’ 표지판 앞에서 마음은 울퉁불퉁하고, 발걸음은 무겁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32km 저쪽에 오갈 수 없는 금강산이 있었다. 불교 화엄경에서 유래했다는 금강은 입산하였으면서도 입산하였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많은 이야기와 시문, 그림으로 남았으나 여전히 먼먼, 그립고 애달픈 2007년 어느 달에 천길 같은 구룡폭포, 새롭게 지은 신계사, 금강송 그야말로 낙락장송을 보았으나 그저 꿈같고, 슴슴하여 입이 달았던 섭국이며 소고기꼬치들은 언제 다시 맛볼 수 있을지 그리고 노천 온천은. 강원 양구에서도 가깝지만 고성에서는 그 옛날 거진역에서 동해북부선을 타면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온정리역이라고도 불리던 외금강역에서 내리면 기꺼이 금강산에 닿을 수 있었다. 금강산은 언제나 큰 유혹이었으니 발을 구르다, 그러다 보았다. 두타연 계곡에서 살아 숨 쉬는 산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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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고성에서는 그 옛날 거진역에서 동해북부선을 타면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온정리역이라고도 불리던 외금강역에서 내리면 기꺼이 금강산에 닿을 수 있었다.금강산은 언제나 큰 유혹이었으니 발을 구르다, 그러다 보았다. 두타연 계곡에서 살아 숨 쉬는 산양을. | ⓒ 강원고성신문 | | 화천 평화의댐을 지나 안동철교에 다다랐다. 민통선에서 해제된 군부대 초소를 거리낌없이 통과했고, 길가에 무더기무더기 쌓여 있는 산양 똥을 구경하면서 북쪽을 향해 사진을 찍지 말라던 군인들 목소리도 사라졌다. 그러나 화천과 양구를 잇는 오작교로 가는 길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휴대폰에 촬영금지 스티커를 붙였고, 어디에서도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주의 사항을 다시금 들었다. 그렇더라도 남방한계선 역할을 하는 오작교 아래는 북한강이 흐르고 위로는 금강산댐으로 알려진 이북의 임남댐, 아래로는 평화의댐이 있는, 수십 미터까지 수위가 올랐다는 군 장교의 설명을 들으면서 좁고 가파른 산등성이를 따라 철책이 이어졌고, 한편으로는 북쪽 초소를 바라다보며 견우와 직녀도 일 년에 한 번은 만나는데, 오늘을 옛일처럼 이야기할 날을 꿈꾸면서 저녁에는 평화의댐 캠핑장에서 전북기상과학관에서 매해 오시는 이병철 선생님으로부터 별자리들을 배우며 구경했다.
화천 수리봉으로 향했다. 민통선이었으므로 군부대에서 나온 군용차가 앞장섰다. 그간 여러 일이 있었으므로 걸음이 어려운 이들은 미리 빠져달라고 안내했다. 수리봉이었으므로 날씨는 맑고 사방팔방 거칠 것 없는, 끝닿는 곳 없는 산천경개가 펼쳐졌다. 둥근이질풀, 각시원추리, 싱아 그리고 둥근 철망 안에 갇힌 금강초롱꽃을 다시 만났다. 화천댐을 확보하기 위한 수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던 역사는 가뭇없이, 꽃들은 피어서 한여름 불볕을 견디고 있었다. 화천 칠성전망대에 올랐다. 유리창 너머 이남에서 유일하게 북으로 흘렀다가 평화의댐으로 흘러드는 금성천을 볼 수 있었고, 군사분계선 이북의 산과 들, 나무 그늘 아래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도 유엔사에서 나온 미군이 있었다.
화천과 철원을 잇는 말고개를 넘었다. 금성지구 전투 전적비가 세워진 곳에 다리쉼을 하며 이제는 고인이 된 선친을 떠올렸다. 한국전쟁 와중에 철원과 김화에서 참전했던. 누구는 살아 집으로 돌아가고 누구는 영영 돌아갈 수 없었던, 또 누구는 불구로 남은 생을 살아야했던, 이산과 집산을 생각게 하는 말고개는 화천군도 마현리이고, 철원군도 마현리였다. 철원군 용양삼거리는 민통선에서 해제되어 무람없이 지날 수 있었고, 일제강점기 철원 지역 최초로 부설된 화강을 가로지르던 이제는 낡삭은 암정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2019년 통일걷기에서는 다리 위를 밟기도 했던. 남대천이라고 불리는 꽃의 강, 화강에 자리한 용양보를 찾았다. 비무장지대 경계근무를 서던 병사들이 오가던 출렁다리가 남아서 이제는 가마우지들 쉼터가 된, 닭 벼슬을 닮았다고 해서 계웅산이라고 했다던 그곳을 타고 오르는 남방한계선 철책이 눈앞에 있으며 일제강점기 금강산 전기 철도가 오갔던. 절벽에 자리한 분홍장구채도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사진을 찍었던 전례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깡그리 무시한, 안내 해설사의 거침없는 해설과 외침이 그나마 위안이었던. 휴전선 정중앙에 위치한 승리전망대에 올랐다. 비무장지대(DMZ)와 이북 지역의 오성산과 아침리 마을을 유리창에서 바라보았다.
일제강점기에 금강산 구경은 물론이거니와 지하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한탄강을 가로지는 금강산전기철도, 그 다리에 서서 ‘화이통’을 외쳤다. 누구는 다리 옆 전선휴게소 식당에서 먹은 메기매운탕을 떠올렸지만 단체 사진을 찍고 돌아서기 바빴다. 철원역과 내금강역을 오갔던 전기철길은 해방 전에 폐선이 되었지만, 다리는 그대로 남아서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소설가 이태준의 고향으로 의미 있는 철원은 또한 두루미의 고장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월정리역 방문을 취소하고 평화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 안에서 가수 손병휘가 부르는 ‘임진강’을 들으며 유리창 밖으로 저 멀리 인공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퍽 기괴했다. 저녁에는 두루미평화관에서 전직 통일부장관 시민단체 대표 등이 패널로 나서 「두국가론을 너머 바라보는 통일담론」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다음날엔 철원 국경선평화학교에서 밥을 먹고, 화해와평화의교회에서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에서 참석한 종교인들과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좌담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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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일제강점기에 금강산 구경은 물론이거니와 지하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한탄강을 가로지는 금강산전기철도, 그 다리에 서서 ‘화이통’을 외쳤다. 누구는 다리 옆 전선휴게소 식당에서 먹은 메기매운탕을 떠올렸지만 단체 사진을 찍고 돌아서기 바빴다. 철원역과 내금강역을 오갔던 전기철길은 해방 전에 폐선이 되었지만, 다리는 그대로 남아서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 ⓒ 강원고성신문 | | 연천군 임진강 연강나룻길이 만들어지면서 옥녀봉에 설치된, 북쪽을 향해 인사하는 그리팅맨, 양구군 통일관 앞에 이어 두 번째 만나는 그리팅맨 앞에서 해돋이를 기다렸다. 근처에서 노숙을 한 사진가는 무리지어 우리들이 모여들자 못마땅한 듯했지만 우리들 또한 매일 꼭두새벽에 잠을 깨고 새벽 5시부터 때로는 그보다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고, 이날도 해돋이를 보기 매우 이른 시간에 걷기 시작했다. 저마다 휴대폰을 들고 먼산주름으로 다가오는 산하, 동살이 비치고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보이는 해님을 맞이하기에 매바빴다. 어스름 속에서 드러나는 산천경개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경이로웠으나 더는 북쪽으로는 갈 수 없는, 가야할 길이었지만 걸음을 돌려야 하는. 군남댐홍수조절지를 지나고 백학면 경순왕릉 근처 삼립슈퍼에서 10년 동안, 열 번째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2019년에는 경로에 없는 신라의 마지막 왕이자 고려에 투항하여 여생을 보낸,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경순왕의 능을, 2024년에는 임진강변에 자리한 고구려 유적인 호로고루성을 둘러보았다. 길동무인 윤 아무개는 함경도 영흥이 고향인 아버지께서 고랑포를 건너 피란했다고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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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연천군 임진강 연강나룻길이 만들어지면서 옥녀봉에 설치된, 북쪽을 향해 인사하는 그리팅맨, 양구군 통일관 앞에 이어 두 번째 만나는 그리팅맨 앞에서 해돋이를 기다렸다. | ⓒ 강원고성신문 | | 12박 13일의 대장정, 「평화로 이어온 10년, 함께 걸어갈 통일의 길」이라는 화두를 품고 마지막 날(2026년 8월 14일) 또한 새벽밥을 먹고, 파주의 관문 전진교를 건넜다. 율곡습지공원에서 다리쉼을 하고서 올해 처음 열리는 ‘임진강 생태 탐방로’를 걸었다. 해설사들과 군인들이 그토록 많은 것도 처음이었고, 어디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거듭 경고한 것도 전에 없던 일이었다. 임진강 철책을 곁에 두고 풀숲을 걸었고, 초평도 쉼터에서도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저어새가 오가던 논들이 이제는 밭으로 변했다며 앞장섰던 해설사는 수해 복구 끝나고 올해 처음 걷는 것에 의미를 두라며 겸연쩍어했다.
파주 임진각에서 해단식을 했다. 10년 동안 통일걷기는 ‘통일행동’, ‘평화행동’, ‘생명행동’으로 걷고, 마주하며 실천했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걷는 내내 한 번도 비를 맞지 않은, 누구는 물집으로 누구는 햇볕 알레르기로 누구는 무릎 통증으로 그렇지만 우리는 십 년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7번 국도, 5번 국도, 3번 국도, 1번 국도를 걷고, 스쳤다. 십 년쯤 걸으면 금강산은 물론이거니와 개마고원을 거쳐 백두산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어쩌면 낙관하지만 희망하지 않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법인지도 몰랐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를 부르며 지난 10년 동안의 통일걷기를 회향했다. ‘녹슬은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그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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