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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진실보다 먼저 찾아온다

‘살기 위해 죽음을 보러 길을 떠나다’ ②
루트비히 볼츠만과 오스트리아 빈 중앙묘지

2026년 03월 06일(금) 09:43 [강원고성신문]

 

↑↑ 빈 중앙묘지에 있는 볼츠만의 무덤 앞에서 나는 절망보다 차분함을 느꼈다. 묘비 상단에는 볼츠만의 엔트로피 공식인 S=k log ω가 적혀 있고, 그 아래로 가족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 강원고성신문


본지는 전상희 씨의 기행문 ‘살기 위해 죽음을 보러 길을 떠나다’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상희 씨는 충남 논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생활하다 2025년 고성군 거진읍에 정착해 ‘숨은 책방(Breathe&Books)’을 운영하며 여행과 사유를 통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탐색하고 있다. 그녀는 이번 여행을 통해 유럽의 화가와 물리학자, 작가 등 3명의 흔적을 돌아보며 삶의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바란다.


#세상 만물의 모습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비엔나)은 지리적으로 알프스 산맥과 카르파티아 산맥이 만나는 지점이자, 도나우강이 흐르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빈은 지질학적으로 빈 분지(Vienna Basin)라 불리는 독특한 구조 위에 세워졌다. 약 2,000만 년 전(신생대, 마이오세) 알프스와 카르파티아 산맥이 충돌하며 지각이 잡아당겨져 형성된 풀어파트(Pull-apart) 분지다. 최대 5,000m 두께의 퇴적층이 쌓여 있다. 약 1,000만 년 전 이 지역은 거대한 내해(또는 호수)였던 파노니아 호수의 서쪽 가장자리였다. 이때 쌓인 찰흙(점토)층은 훗날 빈의 유명한 벽돌 산업의 기반이 되었다. 도나우강은 오랜 세월 흐르며 계단 모양의 지형(단구)을 만들었다. 빈의 구시가지는 홍수로부터 안전한 높은 단구 위에, 현대식 건물들은 강변 저지대에 위치하게 된 이유다. 시 서쪽을 감싸는 빈의 숲(Wienerwald) 산지는 주로 사암(Flysch)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알프스의 동쪽 끝자락에 해당한다.

빈은 고대 로마의 요새에서 시작해 세계 대제국의 수도로 성장했다. 고대 및 중세(기원전~15세기) 빈도보나(Vindobona)는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도나우 강변에 세운 군사 요새다. 바벤베르크 가문이 12세기 오스트리아 공국의 수도가 되면서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급성장했으며 1155년 하인리히 2세가 이곳에 거처를 정했다. 합스부르크 제국 시대(15세기~1918년)에 수도로 1440년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의 거점이 되어 신성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했다. 1529년과 1683년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막아내며 유럽 기독교 세계의 방파제 역할을 했다. 이후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궁전(벨베데레, 쇤브룬 등)들이 건설되었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이 활동하며 음악의 도시로 명성을 떨쳤고, 19세기 말에는 프로이트, 클림트 등 혁신적인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 벨베데레 궁전 정문.

ⓒ 강원고성신문

오늘 나의 목적지 비엔나 중앙묘지(Wiener Zentralfriedhof)는 1874년 개장했다. 약 2.5 ㎢ (약 330만 명 안장) 규모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묘지이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 유대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 구역과 위대한 음악가들(Musikergraber, 32A 구역)을 만날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며, 숲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공원 역할도 한다.

시내에서 71번 트램을 타고 ‘Zentralfriedhof 2.Tor’(제2문)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드디어 그를 만나러 가보자. 죽음 앞에서 위계는 사라진다. 볼츠만의 묘는 의외로 소박하다. 장식도, 설명도 많지 않다. 돌 위에 새겨진 것은 찬란한 업적의 나열이 아니라 단 하나의 식이다. S=k log ω. 나는 그 식 앞에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살아 있던 시절, 이 식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원자, 확률로 설명되는 세계는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비웃었고, 강단은 등을 돌렸으며, 그의 설명은 철학에 가까운 추측으로 밀려났다. 죽음은 진실보다 먼저 찾아온다. 볼츠만은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받지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의 생각은 살아남았다. 엔트로피는 교과서가 되었고, 확률은 자연의 문법이 되었으며, 원자는 더 이상 가설이 아니다.

#혼돈 속의 질서

질서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몸과 삶 전체로 견뎌낸 사람이 루트비히 볼츠만이다. 그가 마주한 세상은 늘 어긋나고, 섞이고, 흩어졌다. 열은 식고, 구조는 무너지고, 모든 것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 흐름을 사람들은 혼돈이라 불렀지만, 볼츠만은 그 혼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들여다보았다.

↑↑ 벨베데레 궁전 안에 있는 크림트 전시관.

ⓒ 강원고성신문

볼츠만이 발견한 세상의 비밀은 간단하다. 어지러운 상태가 정돈된 상태보다 경우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자연은 ω(상태 수, 경우의 수)가 가장 많은 쪽(무질서)으로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흩어지는 것이 모이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저 확률이 높은 쪽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놔두면 커피는 식고(열이 퍼짐), 향수는 날아가고(분자가 퍼짐), 방은 어지럽혀진다.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뜻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 나라는 존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건 엄청난 사건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놔두면 흙으로, 공기로 흩어지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는 밥을 먹고 숨을 쉬며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거대한 우주의 흐름을 거슬러 질서를 지켜내고 있는 기적적이고 숭고한 상태다.

그의 묘비에 적힌 위대한 공식는 말한다. 질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확률 속으로 숨어드는 것이라고. 컵에 담긴 뜨거운 물이 식어가는 것은 질서의 붕괴가 아니라 입자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많은 경우의 수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엔트로피란 무질서의 이름이 아니라 가능성의 개수였다.

#시간의 화살-생명, 사랑 그리고 죽음

여기서 시간의 화살이 생긴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자연은 움직인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고, 깨진 컵은 저절로 원래대로 붙지 않으며, 사랑도, 생명도 항상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시간의 방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질서한 세계 안에서 생명은 태어난다. 국소적으로 질서를 만들기 위해 주변의 엔트로피를 더 밀어내면서. 숨 쉬고, 먹고, 사랑하고, 기억하면서 자신만의 질서를 세운다.

↑↑ 빈 중앙묘지 정문의 꽃집.

ⓒ 강원고성신문

삶이란 엔트로피 증가를 거스르는 투쟁이 아니라 그 위에서 잠시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사랑은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결속 에너지다. 자연은 가만히 두면 멀어지고, 식어가고, 잊힌다. 관계를 유지하고, 누군가를 아끼고, 내 몸을 돌보는 행위는 저절로 허무해지려는 우주의 법칙에 맞서 나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하는 숭고한 투쟁이다. 죽음은 더 이상 에너지를 써서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상태다. 나를 구성하던 원자들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높은 확률)로 돌아가 다시 우주로 흩어진다. 치열하게 질서를 유지했던 긴장(생명)을 내려놓고 우주의 거대한 흐름에 온전히 맡기는 휴식이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에너지는 형태를 바꿀 뿐, 정보는 흔적으로 남는다. 볼츠만의 무덤에 새겨진 공식처럼 그의 생각은 죽음 이후에도 세계에 남아 여전히 우리를 설명한다. 혼돈 속에서도 질서는 우연처럼 태어나고, 의미는 흔들림 속에서 만들어진다.

볼츠만의 시간 위에 이제 나의 시간이 겹쳐진다. 돌아갈 수 없기에 지금은 단 한 번이고, 그래서 이 순간의 선택과 사유는 더없이 무겁고도 선명하다. 죽음 이후에도 남는 것들을 따라 나는 다시 나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무덤 앞에서 나는 절망보다 차분함을 느꼈다. 질서는 즉각 보상받지 않아도 되고, 의미는 살아 있는 동안 완성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배운다. 볼츠만의 삶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의 사유는 죽음을 지나 계속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나는 왜 지금 이 사람의 죽음을 보러 이 먼 길을 왔을까. 아마도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묻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볼츠만의 시간 위에 나의 시간이 겹쳐진다. 흔들리며 살아온 나의 선택들, 증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문장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까지도 모두 하나의 확률로서 세계 안에 놓인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질서가 다른 형태로 이동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묘지를 나선다. 그리고 다시, 살기 위해 나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다시, 살아 있는 시간으로

볼츠만의 무덤 앞에서 나는 오래 서 있지 않았다. 기념사진도 남기지 않았다. 이미 충분했다. 그의 공식은 돌에 새겨져 있었지만, 그가 끝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식이 아니라 태도였을 것이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으며, 설명되지 않는 시간은 반드시 존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까지 이해하려 시도해야 한다는 태도.

↑↑ 빈 중앙묘지의 음악가 묘지 구역에 있는 베토오벤의 무덤과 묘비.

ⓒ 강원고성신문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이 명제들은 냉정하지만 절망의 언어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알려준다. 볼츠만의 삶은 증명되지 않은 시간 속에서 너무 오래 홀로 버텨야 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유는 그 시간을 지나 우리의 현재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다. 죽음 이후에도 남는 것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와서 확인하고 싶었던 전부였다. 혼돈 속에서도 질서는 잠시 태어나고, 흔들림 속에서 의미는 만들어진다. 완성되지 않아도, 인정받지 못해도, 사라지지 않고 흐름 속에 남는다.

볼츠만의 시간 위에 나의 시간이 겹쳐졌다가 이제 다시 분리된다. 나는 묘지를 떠나 현재로 돌아간다. 되돌릴 수 없기에 더 신중하게, 그러나 두려움에 멈추지 않고 살기 위해. 죽음을 보러 온 길은 결국 살아야 할 이유를 다시 정렬하는 길이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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