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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을 빛낸 호국인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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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석규(李錫圭), 당시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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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26일(목) 14:06 5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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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은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토성면(土城面) 백촌리(栢村里) 157番地이며. 호(號)는 삼호(三乎)이다.
선생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1919년 3.1독립운동이 전개되어 각처에 파급되자 독립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 이에 적극 호응하여 동지(김형석(金亨錫)·이근옥(李根玉)·김연수(金延洙)·문명섭(文命燮)등 규합하여 3월 14일 토성면 교암리(橋岩里) 장날을 기하여 태극기를 준비하고 주민 약 300여명을 동원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동향인(同鄕人) 이근옥(李根玉)의 권유로 동년(同年) 10월 중순경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에 가입한 이래로 동년(同年) 10월 하순 토성면 운봉리(雲峰里)의 이근옥(李根玉) 자택에서 김연수·문명섭 등과 함께 상해로 건너가서 가정부에 들어가 조선독립운동을 위하여 진력하자는 취지를 교사 받고, 동인 등으로부터 승낙을 얻어 각각 여비를 조달하여 동월 30일경에 동군(同郡) 간성(杆城)에서 이근옥·김연수·문명섭 등과 합동하여 동지를 출발, 철원에 이르러 이연수(李延洙)를 회견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경성(京城)에 나와서 애국단본부(愛國團本部)를 찾으려 하였으나 결국 이를 찾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김연수·문명섭 등과 다시 귀향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1920년 1월 철원애국단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피체(被逮)되어 동년(同年)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정치범죄처벌령 제1조에 각각 해당하는 범죄로 형사소송법 제167조 제2항에 의거 회부한바 있다.
선생은 그 이후 1940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의 군자금 모금에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으며,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出典 :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 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권9, p,p990~1008. 『강원도항일독립운동사(江原道抗日獨立運動史』第 1卷, 光復會江原道支部, 1991年, p.532. 『고성군지(高城郡誌』1998年, p.144. 『독립유공자공훈록(獨立有功者功勳錄)』권7, p.565.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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