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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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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안흥식(安興植)
1899년 9월 3일 ~ 1974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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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30일(월) 18:53 12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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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은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임남면(臨南面) 장전리(長箭里) 232번지이다. 1919년 3월초에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가 입수되자, 최상린(崔祥麟)·김두만(金斗萬)·우낙영(禹洛榮,得榮)·박성준(朴成俊)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당시 고성군(高城郡) 신북면(新北面) 면사무소에서 독립선언서 90여매를 등사하였다. 3월31일에는 태극기 250개를 만들었고, 4월 1일에는 장전리(長箭里) 기독교인의 집을 찾아다니며 2일에 있을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4월2일 기독교인 약 20여명을 모아 미리 작성한 태극기를 배부하여 주고 앞장서서 동리(고성읍) 다리까지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최상린·김두만·우낙영(득영)·박성준 장전 감리교회 목사인 유시국(劉時國) 등과 함께 동리에서 백여 명을 모아놓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경찰주재소까지 행진하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3일 매일신보에 따르면 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에서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판결이 있었는데 징역 1년 6월 최상린(당시30세), 징역 1년 3월 김두만(60), 안흥식(21), 우득영(18) 징역 1년 박성준(20), 징역 8월 유시국(44)이라고 보도하였다.
이해 7월 2일 경성 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혐의로 징역 1년 3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8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으며, 1990년에 애족장(愛族章)을 추서하였다.
出典: △『강원도항일독립운동사(江原道抗日獨立運動史』第 1卷, 光復會江原道支部,1991年, p.p.404~405. △『독립운동사(國家報勳處) 』2卷 p.502 △『독립운동사 자료집(國家報勳處)』 5集 p,p.970~972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제공>
(010-5373-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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