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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숙희 칼럼 / 산

2011년 05월 31일(화) 18:32 16호 [강원고성신문]

 

↑↑ 남숙희 칼럼위원(시인)

ⓒ 강원고성신문

내가 처음 산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시절이었을 것이다.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3월이나 4월이면 마을의 뜻있는 몇 친구들이 어울려 산에 산나물을 캐러가곤 했다. 취나물, 도라지, 참나물 등 또한 이름도 알 수 없는 나물을 캐어가지고 오는 길이면, 진달래를 한아름씩 꺽어가지고 돌아오곤 했었다.
손톱에는 흙이 거멓게 엉켜있고 손등은 가시에 찔린 채 선머슴 같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마냥 즐겁고 또 신났었다. 산속에는 문둥이가 있어서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어머니의 설득도 먼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중 3 때 설악산 수학여행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을 설악산엘 다녀왔다. 그때는 교통편이 불편했기 때문에 설악산 입구까지는 굉장히 먼 것처럼 느껴졌다. 그 때 백담사는 쓸쓸하고 고요하다는 인상밖에 남지 않는다. 봉정암에 올라갔을 땐 산사가 너무 협소하여 그 많은 일행은 밖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게 되었는데 짓궂은 남학생들이 잠자는 우리를 손전등으로 비추어, 깜짝감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훨씬 세월이 흐른 후에 나는 산에 ‘미치게’ 되었다. 글쎄, 미친다는 말은 그 상황에 따라 뉘앙스가 다르겠지만 주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그 시절은 ‘미침’의 계절이었다.
산은 무엇보다 나에게 인생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기다림에 대해서, 고독에 대해서, 살아 있음의 확인에 대해서- 다른 어느 것보다 산은 신(神)이 인간에게 선물해 준 최상의 것이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가을이면 가을, 겨울이면 겨울, 계절에 따라서, 시간에 따라서 산은 다양한 몸짓을 하고, 또한 몸짓된 언어로 삶을 형상화시켜 준다. 산의 언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를 초월하는 피안 저 편의 또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산에 오르면, 산새의 지저귐도, 돋아나는 푸성귀의 새싹들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일상의 틀에서 한 발 물러서서 돌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날들을 준비하게 된다.
어느 해 겨울 정초 때였다. 산악회의 인솔로 설악산엘 가게 되었다. 서울을 출발하여 그곳에 도착했을 땐 벌써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다. 배낭을 풀고 삼겹살에 보글보글 끓는 생선찌개를 먹고 밤새도록 디스코텍에서 율동으로 운동을 하고 보니 어느새 새벽 네 시, 눈을 붙일 사이도 없이 대청봉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자꾸 눈은 감기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입술을 깨물고 육중한 몸을 이끌고(?) 앞으로 향하여-전진, 전진-. 마음속으로 끝없는 구호를 외치며 정상에 도착했을 대의 희열감 ! 내려올 때는 눈이 내려 설악동에 도착했을 때는 무려 13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고통 뒤에 이상하리만치 산뜻하고 경쾌한 기분에 젖게 되는 것은 왠일일까?
그리고, 지리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정상에 거의 도착할 때는 완전 기진맥진, 준비해 간 간식도 바닥이 나 있었다. 그때 마침, 어떤 중년의 신사가 초등학교 5·6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그곳을 등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커다란 소시지를 먹고 있는 것이었다.
“얘, 나 좀 조금 줄래?” 그 아이는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 중년의 신사가 아들이 맛있게 먹고 있던 소시지를 반쯤 잘라서 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반가와 빼앗다시피 하여 인사도 없이 입에 넣고 우적우적 정신없이 먹어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 소년의 눈동자! 하산하여 마을 어귀의 정류장에 오니 산더덕을 파는 무막집이 있었다. 참기름에 소금과 후추가루를 곁들여 양념을 만들었는데 그 산더덕 맛이란…….
그리고 소백산의 철쭉꽃을 잊을 수가 없다. 풍기의 희방사에서 하룻밤을 자고 출발한 이른 새벽 등산은 정말 신선이 된듯 싶었다. 올라갈 때는 안개가 자욱했는데 정상에 도착하니 화창한 날씨에 그 화사한 꽃들의 향연은 과히 일품이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그 꽃의 자태 때문에 나는 그 후 또 한 번 그 곳을 다녀왔다.
수안보 온천을 지나 문경세재를 향하는 길목 왼편에 있는 조령산, 눈이 하얗게 덮인 산등성이에 앙상하게 메말라진 갈대 위에 설화(雪花)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처음 산행을 했던 동료 여교사가 얼음으로 덮인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서 “엄마, 엄마, 나 죽어!”하면서 엉엉 울던 일, 그녀는 지금 시집을 가서 손자를 둔 할머니가 되어 있다.

잊을 수 없는 소백산 철쭉꽃

대관령을 지나 오대산의 적멸보궁, 그 오대산에서 주문진의 내금강으로 향하는 곳에 노인봉(老人峯)이라는 봉이 있다. 늙어서 노부부가 손잡고 등산하면 꼭 알맞은 길, 오솔길이라 하기엔 좀 안 어울리지만 옛일을 이야기하며 쉬면서 쉬면서 정답게 소곤소곤대며 갈 수 있는 길이다. 나는 그 노인봉을 걸으면서 늙어서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주황산, 대둔산, 덕유산, 두타산, 한라산, 무등산, 가야산, 속리산,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그 때의 그 상황들은 추억의 여울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서울 근교로는 춘천을 향하여 가다보면 청평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유명산이 있다. 그 유명산은 여름이 등산코스로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백운대 등.
백운대는 한동안 매주 빠짐없이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는 병풍바위 근처에서 일행을 놓치고 말았다. 뒤에서 앞을 향해 따라갔는데 어떻게 된 노릇인지 찾을 길이 없었다. “야 - 호” “야 - 호” 아무리 소리쳐 목메이게 불러 보았지만 대답은 여전히 되돌아온 메아리뿐이었다.
남은 일행은 시집간 내 여동생, 어느 중학교에 계시는 서무과장님, 우리 셋은 완전히 고도(孤島)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벌써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목이타고 가슴이 뛰었다. 정말 울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저 아래서 건장한 남자 셋이서 자일을 어깨에 거머쥐고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우린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병풍바위는 처음 가 본 곳인데 자일을 타고 25m쯤 내려가는 곳도 있었다. 정말 험한 산이었다. 우리를 무사히 하산시켜 준 그들은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산사나이들이었다.
“앞으로 절대 이런 산행을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구세주였다. 차분차분히 자일타는 법을 설명해준 그들의 다정한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넉살좋은 우리 일행중의 서무과장이 막걸리 대접은 하였지만, 가끔 그 친절했던 청년들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산행은 절대 아무나하고 함께 가서는 안된다는 걸 터득했다.
자연은 사람의 영원한 고향이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인생이다. 그 자연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이 곧 산일 수도 있다. 산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산의 무한한 침묵이 인간으로 하여금 겸손한 삶의 자세를 갖도록 해 준다. 나는 산을 사랑한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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