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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건봉사의 사명대사 유품과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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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16> 고성팔경(高城八景)⑥ 건봉사(乾鳳寺) 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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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15일(수) 09:54 18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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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 ⓒ 강원고성신문 | 건봉사를 들어서면 왼쪽으로 사명당(四溟堂, 惟政, 松雲) 동상이 있는데, 금강산 등 명산에서 수행하였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 시 승병을 모집한 승군도총섭(僧軍都摠攝)이었다. 탁월한 외교가이기도 하였던 사명당의 업적을 기리고자 높이 1.2m, 둘레 3m의 동상을 세웠다. 또한 승병 봉기처이기도 했던 것을 기념하여 2003년 9월에 사명당 의승병 기념관도 건립하였다. 그 밖에 건봉사는 1464년(세조 10)에 임금이 행차하여 원당(願堂)을 삼은 뒤 어실각(御室閣)을 지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 및 중건사업이 이루어졌다. 그 중 왕실의 후원도 3차례나 있었다.
『건봉사본말사적』에 따르면 건봉사의 보물로는 도금원불(鍍金願佛)·오동향로(烏銅香爐, 小型)·철장(鐵杖)이 세 가지는 사명대사의 유품이며, 대종(大鍾)은 불기 2700년 조선 1673년(현종 14)에 만들어졌다. 어제절함도(御製折檻圖)·차거다반은 숙종(肅宗)의 유품을 영조(英祖)가 하사한 물건이다. 또 하나의 오동향로(烏銅香爐)는 순조(純祖 4)에 대비(大妃) 김씨(金氏)의 하사품이다. 현재에 이르러 아쉽게도 남아있는 유물은 하나도 없다. 다만 『조선고적도보(명저출판사 펴냄, 1915년)』에는 건봉사의 보물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도금원불(鍍金願佛)·오동향로(烏銅香爐, 小型)·철장(鐵杖)= 앞에서 언급한바 『조선고적도보』에는 1912년에 사명대사 유품을 촬영한 사진이나마 전해지고 있다. 8.15 해방 후 건봉사 유물보관소에 있었던 것이 한국전쟁 시기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는데 포항 모 언론매체가 2007년 04월 27일(금) 보도한 자료에 의하면 “포항시 북구 용흥동 대성사의 금동여래좌상은 『건봉사사적』에 보이는 사명대사의 도금원불로 추정된다. 고려 말 라마계의 불상양식을 취하고 있는데 원만상(圓滿像)일 뿐만 아니라 완형이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며, 연화대좌 위에 편단우견(偏袒右肩)의 대의(大衣)를 입고 결가부좌하였다.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높이 솟았으며, 육계 정상에 연꽃봉오리 모양의 계주가 표현되어 있다. 왼손은 선정인(禪定印) 모양을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촉지인(觸地印)을 결하고 있다. 대좌는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이 연접한 연화좌인데 꽃잎 가장자리는 선각하여 사실감을 강조하고 있고 꽃잎 사이에 다시 둥근 꽃잎무늬를 양출하여 입체감 있게 표현하였다. 비록 높이 9.4㎝의 소규모 불상이나 안정적인 비례감을 지니고 있고 세부표현도 매우 치밀하게 이루어져 있다.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이 사명대사의 친필로 추정되고 있어 주목된다. 따라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신청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대종(大鍾)= 조선 1673년(顯宗 14)에 수흡(修洽)·도율(道律)스님이 화주(化主)가 되어 큰 종을 주조(鑄造)하니 무게가 1,700근(斤, 1.02톤)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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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명당의 유품인 도금원불(1912년 촬영 당시 조선고적도보 수록). | ⓒ 강원고성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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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포항시 북구 용흥동 대성사에 소장된 도금원불. | ⓒ 강원고성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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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동항로(소형, 1912년 촬영당시 조선고적도보 수록). | ⓒ 강원고성신문 | |
절함도(折檻圖)와 차거다반= 두 개의 유품은 조선 숙종(肅宗)의 유품이다. 1754년(영조 30) 8월에는 영조가 숙종의 손수 제작한 어제절함도(御製折檻圖)와 친필 서문(序文, 御筆書)을 하사하자 어실각(御室閣)에 봉안하였다. 차거다반(인도지방의 바다에서 나는 조개껍질로 장식하여 만든 찻반으로 백색 광택이 나는 칠보의 한 종류임)
오동향로(烏銅香爐)= 조선시대 1804년 순조(純祖 4)에 왕대비(王大妃) 김씨(金氏)가 금(金) 천금과 오동향로(烏銅香爐)·오동화준(烏銅花樽)·양산(陽傘) 등을 하사하고 순조 임금의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다. 1805년 순조(純祖 4) 대비(大妃) 김씨는 나라를 위한 재(齋)를 올리고 병풍과 화엄경(華嚴經) 1부를 하사하였으며, 1828년 유정(惟政)의 영각(影閣)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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