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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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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종화(金鍾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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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17일(수) 14:29 26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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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은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외금강면(外金剛面) 온정동(溫井洞) 출신이다.
일찍이 러시아 지역의 블라디보스토크(연해주)로 이주하여 1918년부터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강국모(姜國模)와 함께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며 활동하였다.
선생은 1919년 음력 2월경 시베리아 오호츠크 금광 부근에서 거주 한국인으로부터 러시아 화폐(약 1만루불)와 일화 3천 8백 원 상당하는 사금을 모집하여 상해임시정부에 보고하고 독립 단에 사용토록 하였으며, 동년 11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주홍익(株鴻益) 등과 함께 러시아인으로부터 권총 3천정, 장총 40정, 탄환 등을 구입하여 1920년 음력 3월경 노령 연해주에서 독립운동단체인 ‘혈성단(血成團)’을 조직하고 단원 300여명을 모집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또 동년 음력 4월경에는 중국 간도에서 ‘광복단(光復團)’으로부터 무기구입자금이 오게 되자 블라디보스토크에 체류 중인 체코군 장교로부터 권총 1천정을 구입하였으며, 또 음력 6월경에는 중국 간도의 독립군 ‘신민단(新民團)’에다 보낼 목적으로 동소에서 체코군 으로부터 1백정 탄환 십만 발을 구입하여 보냈다. 그 후 음력 8월경에는 무기를 구입하려다가 실패하였다.
음력 9월경에는 김좌진의 ‘의군단(義軍團)’과 상호 협조하였다. 그리고 1921년 6월경에 러시아 지역의 연해주 크로핀카에서 설립한 ‘노농군회(勞農軍會)’와 혈성단을 병합하여 ‘한인사회당(韓人社會黨)’을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그 후 체포되어 1922년 6월 19일 경성 고등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出典:
-고성군지(高城郡誌』고성군, 1998, 보정판, p.p140~141
-강원도항일독립운동사2권(광복회 강원도지부, 1992) p.p336~337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제공>
(010-5373-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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